[영화 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 사랑에 모양따윈 없다

in #shapeofwate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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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2017)는 1962년 냉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구 소련과 미국의 체재경쟁이 치열한 시절 미국의 비밀 연구소에서 주인공 엘리자(샐리 호킨스)는 청소부로 일한다. 작고 왜소한 체형의 여성은 일상에서 주목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곱상하지 않은 외모탓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볼품없는 여성에게 심지어 장애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엘리자는 청각장애인이자 고아로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적이 없다. 여성으로 가능한 일은 청소부와 같은 초라한 일뿐이다. 아침 시계 알람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는 엘리자의 일상은 정확한 시계추와 같다. 샤워를 하며 자위를 하고 가정부로 돌봐주는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를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족과 같은 자일스와 직장 동료인 젤다(옥타비아 스펜서)가 있다. 그들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소개되는 친구로 조력자로 갈등을 해결하는 동료이다.

청각장애라는 결핍은 엘리자를 자칫 잘못하면 고립속에 묶여 놓을 법하다. 수화로 전달되는 언어는 그녀의 친밀한 주변만 알아 듣는다. 침묵의 내면으로 침잠할법하지만 주인공은 전혀 그 세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물의 투명한 막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게다가 극중에서 수화로 전달되는 엘리자의 대사는 재미를 낳는다. 스크린으로 전달되는 엘리자의 언어는 그녀와 관객 사이에 어떤 친밀성을 낳고 비밀을 공유한 듯하다.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엘리자를 취조할 때 그 효과를 특히 발휘한다. 성적 모욕과 인격 모독을 남발하는 책임자 남성 앞에서 퇴장하며 그녀는 수화로 ‘Fuck You’를 날린다. 수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트릭랜드는 모욕감을 느끼지만 정확히 실체를 모른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통괘한 기분을 느끼고 박장대소한다. 결여로 간주될 법한 장애를 역전하는 대목에서 여성이자 청각장애인인 엘리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행위의 정당성을 선언하며 적대자인 남성에게 일격을 가한다.

소수자의 연대
물고기 인간(더그 존스)는 연구소 내에서 자산으로 취급된다(영화의 크레디트 소개에서도 그는 자산으로 명시된다). 인공위성 발사로 소련이 미국을 따돌리고 체제선전에서 앞서갈 당시 연구소는 무기개발에 심혈을 기울인다. 아마존 어디선가 포획되어 끌려온 물고기 인간은 침묵의 존재이다. 인간의 언어를 알지 못하기에 소통은 처음에 불가능하다. 아마존 원주민은 신으로 받들었다는 이 생명체 앞에서 스트릭랜드는 난폭하게 행동한다. 길들이려 할 뿐 대화에 관심은 없다. 엘리자의 결핍은 오히려 빛을 발한다. 목소리를 잃었지만 수화로 모양을 그리며 소통을 시도하는 그녀 앞에 물고기 인간은 마음을 연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둘 사이 벌어지는 사랑은 판타지다. 물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와 땅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사랑이란 결국에 이뤄지지 못한다. 둘 사이의 사랑은 결말을 향한다. 욕조에서 사랑을 나누고 텔레비전 속 군무 속 주인공처럼 춤을 추지만 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오히려 제약이 있어 빛을 발한다. 물의 모양이 용기에 따라 결정되듯이 사랑에 처음부터 정해진 모양은 없다.

여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결핍뿐만 아니라 조력자들의 정체성은 특별하다. 이들은 모두 소수자이다. 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기엔 결함을 지닌다. 엘리자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자일스는 신문사에서 밀려난 삽화 화가로 독신남이다. 이야기 초반 새로운 미디어 사진에 밀려 역할을 상실한 남성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체성은 다른 곳에 있다. 케이크를 먹기 위해 방문하는 가게에서 자일스는 게이로 밝혀진다. 엘리자의 가장 친한 친구인 자일스는 어떨까. 흑인 여성으로 당시 상황에 비춰 흑백차별에 시달린다. 인종차별에 더해 가정에서 가부장의 권위에 핍박받고 있다. 하지만 자일스는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이를 전치한다. 영화에서 관객이 피식피식 웃는 장면의 상당수는 그녀의 농담에 빚진다. 비관을 낙관으로 바꿀줄 알아 상황은 절망스럽지 않다.

물거품으로 사라지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자일스의 독백이 차지한다. 보이스오버로 전달되는 나지막한 음성은 마치 어른이 들려주는 동화와 같은 아우라를 풍긴다. 총을 맞고 쓰러진 엘리자를 안고 물고기 인간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속으로 사라진다. 놀라운 치유능력을 지닌 물고기 인간은 엘리자에게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아가미를 만들어준다. 서로 포웅한 채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영화의 초반 장면을 떠올린다. 가구, 시계, 베게 등 온갖 잡동사니가 떠다니는 물속에서 엘리자는 잠을 곤하게 자고 있다. 그녀의 꿈처럼 보였던 장면은 실상은 끝을 예견한 이미지였다. 자유롭게 떠다닌 여주인공의 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바깥 세상은 온갖 적대로 여전히 넘쳐난다. 편견없는 세상은 물거품으로 사라져야 다가오는 현실일까. 주변 소수의 연대가 없었다면 이조차 이루지 못한 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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