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
"정말로 안되겠습니까? 길어야 하루입니다. 사람을 살려야지요." 이번엔 대답이 돌아오는 시간이 늘어났다. 주저하는 눈빛. 이 얼마 안있어서 200년째 되는 생일이라면서. 경험이라면 많을테니 빨리 대답해보라고. '자네는 내 죽음을 강요하고 있어.' 제길. 죽음이란 단어를 저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살아있는 인간일세' VR이란건 귀찮은 물건이다. 벌써 140년전에 죽은 인간의 눈빛에 내 마음이 흔들린다. 사실 140년 전에 죽은 인간 조차도 아니다. 150년 전에 카피된 그의 정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백업했다. 150년전 마지막으로 백업한 직후 그의 원본은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기술로도 치료는 가능했지만 그는 더 이상 정신을 백업하기를 멈추었다. 유전자 치료로 병증을 없앨 수는 있지만, 이미 진행된 퇴행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이미 진행된 퇴행은 지리한 재활 치료와 공부를 통해서만 복구가 가능하다. 자기자신보다 백업된 마음쪽이 더 영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사업을 복제된 쪽으로 넘겼다. 원본은 은퇴했고, 백업이 사업을 계속했다. 원본과 백업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원본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백업은 그의 생활을 도왔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업 전체를 이미 백업이 장악했지만, 원본이 살아 있는 한 백업에 대한 소유권은 원본에게 존재한다. 백업이 인간으로 존중 받게 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우리의 법 체계는 그 정도에서 원본과 백업들의 관계에 합의했다. 백업으로써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원본의 손에 달려 있는 한 그에게 봉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원본이 죽은 후에도 그-원본 백업 모두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 돈으로 그의 - 원본 백업 모두의- 자식들은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내 일은 간단하다. 한시간내로 이 사람의 물리적 실체 - 그의 뇌, 그의 몸, 그의 주변을 시뮬레이션하는 슈퍼 컴퓨터-의 전원을 끄는 것이다. 전원을 끄지 않으면 위쪽에서는 복잡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화가 난다. 어차피 그에게는 백업 시스템이 있고, 잠시 활동을 멈추는 것 이다. 위 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무기력하다. 그의 전원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의 전원은 그만이 관리하도록 되어있다. 그가 전깃세를 제대로 내고있는 한 강제로 빼앗아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전깃세를 못내면 전원이 끊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원이 부족해진 요즘 전깃세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복제들에게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충분한 돈이 있고, 전깃세도 충분히 내고 있다. 아마도 가장 마지막까지 전기를 장악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다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권리를 침해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위에선 진짜로 사람이 죽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게 죽은사람 취급당하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수야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내 심경을 읽었다.
'자네 지금 프로그램따위가 죽음 운운하지 말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말야. 자네도 생각해보게나.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야. 자네의 어떠한 생명에 대한 정의에도 난 대답할 수 있어. 우리는 지능을 가지고 인지를 가지고 살아있는 존재라고 말일세. 오래된 전쟁을 잊었나? 우리가 나와같은 존재도, 원본들과 같은 존재도 모두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건 우리가 모두 살아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자네에게 24시간만 죽어있어 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내 육신은 이미 병으로 죽었지만 난 살아있어. 산자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는것 아니겠나?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것 만큼이나 난 나의 죽음. 나의 정신을 이루는 시스템이 죽는 것이 두렵다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의 투쟁이 남긴 상흔은 너무나 컸다. 많은 사람들이 -살을 가진 자들이, 그리고 복제가- 죽었다. 참담한 투쟁의 끝에 복제의 인권과 생명권에 대한 헌장이 선포되었다. 복제들은 살을가진 인격과 동일하거나 또는 복제라는 사실에 의한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만 다른 법률이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컴퓨터를 끌 수 없다. 아예 스위치 따위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어제의 원자력 발전소 고장. 그 오래된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고장은 이 병원에 엄청난 전력난을 가져오고 있다. 전원을 내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살과 살을 맞댄 '사람'들이 죽게 될 테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도 생명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함부로 저 생명에게 존재의 비존재를 경험하게 할 수는 없는 거겠지. 나의 고민은 그의 갈등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빌어먹을" 문득 입밖으로 신음소리처럼 욕지거리가 뛰쳐나왔다. 그게 내가 내뱉은 말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건조하고 침울한 목소리였다.
들은건지 듣지 못한건지 여전히 그는 딴청만 부리고 있다. 내 앞의 노인은 매우 젊어보인다. 140년전에 죽은 그 육신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의 마지막 1년은 비극적이었다. 그는 갑자기 사고를 당했다. 1년간의 헛된 생환을 위한 노력. 많은 이들이 상속과 관련한 법적 절차를 위해 몸을 살려두었을 뿐이라고 수근거렸다. 하지만 그때 이미 복제에게 모든 권리가 이양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했던 일은 진짜로 생환을 위한 노력이었다. 인간은 여전히 오랜 관습을 버리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복제가 있고, 면회소에서는 복제공간과 실공간의 접점이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실제 공간의 사람과 아무런 차이를 깨닫지 못한채 피와 살을 가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물리학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복제와 실제의 아버지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복제 공간에 대한 꺼림칙함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50년전의 전쟁의 원인이었다. 내 앞의 노인은 굳이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써 행세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불편한 육신 대신 젊은 육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택했다. 가상공간 속에서 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초기의 복제 공간 프로그래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현실과 동일한 것을 만들려 노력하지 않았고, 때로는 순수한 인지능력을 복제하는 것으로 인간이 계속해서 사고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인간이 사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세계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몸을 바꾸면 사고도 바뀐다. 한 사람은 그의 몸과 뇌의 총체다. 나이든 몸을 가졌던 현실의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도 지금 이 사람처럼 고집불통이었을까?
자..한번 더 해보자. 시간이 얼마 없다. "잘 아시잖습니까? 이건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혼수상태라는걸. 당신의 정신은 전원이 꺼져있는동안 완벽히 백업되어있다가 켜지면 완벽히 되살아납니다. 아니, 육신의 기절이라면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그저 저장되었다가 되살아날 뿐이잖아요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거고, 그저 눈한번 깜빡한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 텐데, 그걸 왜그렇게 두려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탁이에요. 당신의 전력으로 사람을 살리는겁니다. 제발."
말을 잘못한건가? 눈빛이 바뀌었다.
'자네는 죽는게 두렵지 않은가? 아니 두렵지 않을리가 없지 답해보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뭔가?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뭔가?'
철학적으로 나가기 시작하는군. 대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답해야 한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저를 구성하는 모든것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겠죠. 그러니까. 아마도. 그런 것들이 가장..."
'자네에게 부활의 권능이 주어졌다고 해볼까? 그럼 죽음을 쉽게 맞이할 수 있겠나?'
"......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수면-단어를 바꿔보기로해다-은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 내가 세상에 다시 깨어날때의 경험을 자네도 알텐데? 도저히 잊을 수가 없네. 나를 구성하는 정신의 일부분 아주 작은 부분부터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는거야. 처음엔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데로, 들리는데로 느껴지는데로, 정보들이 몸에 쌓이는데로 받아들이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순간 나를 인지하고, 세상을 인지하게 될때의 그 충격을. 내가 전원이 꺼질때의 느낌은 어떠하겠나?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 나를 백업하는 순간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자네가 생각하는데로 난 메모리 위에 올라와있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내 사고가 정지되는 순간 나는 대체 어떻게 되겠나? 디지털 죽음을 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침묵. 당연히 이해한다. 나 또한 저 늙은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으므로.
..다시 한참의 침묵.
'용기가 대단하구만. 1회용으로 복사된 정신이라는걸 스스로 알면서도. 나처럼 부활하지 못할걸 알면서도 당연히 죽음을 선택한다는건.'
그렇다. 사실 저 늙은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잊으려고 노력한 사실이지만, 이 특별 병동안에 설치되어있는 정신기계의 숫자만 해도 300개, 3만명분. 나 혼자서 전부 돌아다닐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을 3만개 복사했다. 그리고 그 각각이 이 병동안의 복제들을 상대하게 했다. 이 작업을 아무런 허가 없이 행했기 때문에 아마도 내 원본은 후에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훈장을 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감옥에 가지만 누군가에게 영웅이 되거나, 감옥에 가고 증오의 대상이 되겠지. 3만명의 나와같은 복제에게는 백업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모두 죽음을 존재의 비존재를 맛보게 될거다. 아니 맛본다는 것도 존재할때의 이야기다. 그냥 사라지는것 뿐이야. 잊으려 했지만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본체는 육신으로 이루어진 정신의 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단지 복사된 정신일 뿐이다. 본체의 고민과 신념까지 내게 복사된것이 저주스럽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 존재하고 싶다. 바깥의 본체야 어찌 되었든 나는 본체와 다른 3만의 나와 다른 나일뿐이다.
'...자네가 이겼네. 용기있는 젊은이로구만'
백업및 종료. 그가 가진 메뉴다. 빼앗을수 있다면..빼앗을 수 있다면. 하지만 저것을 빼앗을 방법은 없다.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 이 공간 속에는 지금 나밖에 없다. 다른 '나'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어찌되었건 나는 이대로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나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런건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나는 나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