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알파치노, 크리스 오도넬-

in #sent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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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를 알고 있었다. 당 해의 아카데미 주연상 등을 싹 쓸었던 영화기도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편의점 새벽 알바를 할 때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영화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해주고 감동적인 장면을 실제로 음성만 틀어주는 그런 프로였다. 처음엔 무슨 영어 학습 프로그램인가... (오성식의 영어처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도 아닌 새벽 2시에 그런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 할 리 만무했다. 그 프로는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지고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새벽의 상담자’랄까? 나도 일하다 지쳐 카운터에 앉아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밖에서 벤츠 몰고 빵빵거리며 새벽에 여자 꼬시며 돌아다니는 애들도 많은데...”하는 따위의 투정을 하며 여성 진행자의 나른한 목소리에 취해 멍하니 앉아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도 기억하고 있는 영화는 이 것 하나뿐이다. 거기엔 물론 알 파치노라는 배우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이다. 대부와 데빌스 에드버킷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영화를 잘 모르는 나조차 격이 다름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영화의 줄거리에 알 파치노의 연기는 보이지 않으니까. 난 그 영화의 일상의 누구라도 겪을 수 있지만 특별한 그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작게 빛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의 감동들도.

찰리(크리스 오도넬)는 하버드대학을 목표로 시골에서 올라와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고, 프랭크(알 파치노)는 수류탄 사고로 눈이 멀고 퇴역 장교가 된 마초적이지만 자신의 철학과 교양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갈 차비를 벌기 위해 사람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찰리는 조카가 휴가를 떠나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프랭크와 만나게 된다. 둘의 첫 만남은 정말 끔찍했다. 프랭크는 말년 병장이나 가질 법한 근거 없는 권위와 장님의 히스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끔 “후아!~”하며 혼자 짧게 웃는 것을 좋아 하는. 찰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프랭크 조카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주말을 같이 보낼 것을 승낙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퇴역 장교인 장님을 돌봐야 한다는 건 약간 특별할 수 있지만, 노인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는 미국에서는 흔하다니. 그러나 프랭크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 놓았었다. 뉴욕으로의 여행.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을.

이미 1등급 비행기편과 최고급 호텔 그리고 최고급 양복 등을 준비한 프랭크는 찰리에게 같이 죽음을 준비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강요한다.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존심 강하고 인생을 즐기길 원하는 프랭크에게는 너무나도 큰 절망이었을까. 프랭크는 뉴욕으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다.

그저 마초적인 줄만 알았던 프랭크는 전혀 색다른 모습을 지닌 인물이었다. 제목이 ‘여인의 향기’이듯 여자를 좋아하고 프랭크 자신 또한 여자들에게는 세련되고 열정적인 매력으로 여자를 끌어들일 법한 남자다. 사람 가득한 식당에서 처음 보는 미인을 꼬셔 탱고를 멋지게 출 수 있는. 여자가 탱고를 잘 추지 못한다고 하자 “스탭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에요”라고 여자를 설득하는 프랭크는 누가 봐도 작업의 고수다. 나도 이 장면을 보고 춤을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을 정도로 그의 춤은 멋졌다. 프랭크의 이런 새로운 매력과 진솔함에 찰리는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찰리의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생들에게 호되게 당해 자신의 차와 함께 페인트를 뒤집어 쓴 일이 있었다. 찰리는 친구와 함께 전날 그 사건의 주모자 3명을 목격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교장은 찰리와 그 친구에게 주모자를 불 것을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학을 당하고 주모자를 불 경우 하버드 대학으로 장학생 추천을 받아 갈 수 있다고 유혹과 협박을 한다. 하지만 찰리는 친구를 팔아먹는 비겁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프랭크는 이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 했다. 하지만 결말은 다르게 난다. 그 결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죽음을 위한 여행이 어떻게 끝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여인과 탱고를 추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비싼 술을 마시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빨간 페라리를 운전해보기도 한 프랭크는 이제 죽음을 준비한다. 최후의 만찬은 이제 끝난 것이다.

찰리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프랭크는 자신이 가장 영예로웠던 순간인 장교 때의 복장을 차리고 죽음을 준비한다. 미리 프랭크의 죽음을 예견했던 찰리는 담배를 사려다 다시 돌아와 프랭크와 총으로 자살하려는 프랭크와 몸싸움을 한다. 프랭크는 자신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절규한다.

그러자 내내 프랭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크리스 오도넬(찰리)의 명대사가 작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대보라며 프랭크가 묻자 찰리는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 탱고를 잘 추고, 누구보다 페라리를 잘 몰아요”라고 답한다. 맙소사! 적절한 농담은 언제나 현답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 말이 진심이었고 농담이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농담의 힘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프랭크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라고 묻자, 똑똑한 찰리는 예전 프랭크의 대사를 고대로 갔다가 써먹는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라고. 휘청거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라는 선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찰리와 프랭크는 서로 친구가 되고 최후의 만찬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직, 찰리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제 학교로 돌아온 찰리는 교장이 마련한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히거나 친구를 옹호하거나 해야 한다.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연단에 선 찰리와 친구... 친구의 옆에는 부유한 그의 아버지가 있고 찰리는 혼자다. 그런데 집에 간 줄 알았던 프랭크가 와 연단에서 찰리의 옆에 앉는다.

찰리의 친구는 청문회에서 애매한 말로 그 세 명의 주모자의 이름을 분다. “어두워서 확실하진 않지만 그들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이제 모든 것은 찰리에게 달린 것이나 나쁜 친구 녀석... 결국엔 찰리에게 몫을 떠넘기려던 것이다. 하지만 찰리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교장은 찰리를 나쁜 녀석, 학교의 명예를 더럽힌 녀석으로 몰아가며 청문회를 마치려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두 번째 명장면이 등장한다. 프랭크의 변론.

“이아이의 영혼은 순수하고 타협을 모릅니다. 당신은 아시죠? 밝힐 수 없지만 누군가가 그의 영혼을 사려고 했어요. 그러나 찰리는 팔지 않았습니다.”... “난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난 언제나 바른길을 알았어요. 하지만 그 길을 뿌리 쳣어요. 왜냐면 그 길은 너무 어려워서죠.” 이렇게 프랭크는 찰리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감싸고 그의 침묵은 비겁하고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며 숭고한 정신이라고 변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교생의 기립박수. 여기에 감동한 배심원단?(결정을 내리는)은 찰리의 무죄를 선고한다. 찰리는 프랭크를 살렸고 프랭크는 찰리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의 제목을 배신하지 않고, 프랭크의 연설에 감동한 정치에 관심 많은 여교사를 프랭크가 꼬시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구성 된다. 그리고 그 두 줄기가 오묘하게 노인과 젊은이의 만남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눈이 먼 퇴역 장교의 삶에 대한 회의와 그에 대한 극복,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선 젊은이의 갈등. 나는 물론 후자에 많은 감동을 느낀 편에 속한다. 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에 할 수 있는 고민에 동감하기 쉬운 거니까. 때문에 프랭크의 연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내게 큰 과제로 다가온 것은, 프랭크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인생의 스승. 그것이 반드시 나의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꼭 나와 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내가 가진 신념을 같이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게 됐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살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협박과 유혹 둘 다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난 꽤나 우유부단한 편이다. 내가 믿는 것이라 하여도 전교생 앞에서 그것을 “이것이 나의 신념이오!”라며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 것이다.

제목과는 꽤나 괴리가 있는 나의 후기이지만 신념과 그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경험이 많은 동반자, 그것이 영화를 보며 내가 부러웠던 찰리의 모습이고 또 닮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농담을 즐기고 탱고를 배워보아야겠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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