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말하는 고교 서열화 이야기 3

in #sct5 years ago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개인적으로 고교시절 생활을 정리해볼 겸, 지난해 7월부터 자사고 관련 논란이 뜨겁기도 하고 해서 고교 서열화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지나면서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국 장관의 딸 조민씨의 출신 학교 한영외고는 제가 다녔던 ㄱ고등학교와 비슷한 분위기의 학교로 보입니다. 대학 친구 중에 한영외고 출신은 없었지만 대원외고니 명덕외고니 나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면 '어 우리도 그랬는데' 하고 공감했던 적이 아주 여러번 있었습니다.

조민씨가 한영외고에서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었어도 고려대는 갈 수 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ㄱ고교에서 시험만 보면 뒤에서 몇등 수준이었는데도 SKY대학으로 잘만 갔습니다. 조민씨는 '내 힘으로 고려대 입학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비난한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저는 조민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민씨가 대학을 진학하고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왜 그리도 많이 이상한 행동들을 했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유시민씨가 좋아하는 방법론대로, 조민씨에 한번 빙의해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조민씨의 고등학교 생활을 제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중앙일보에 나온 바에 의하면 조민씨의 고등학교 성적 특히 영어내신은 4~8등급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기사를 보니까 한영외고 내신 등급이 5등급 정도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내신에서는 반에서 중간도 못가는 성적이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저도 조민씨와 비슷한 고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교 서열화 이야기 1에서 제가 중학생 때 반에서 3~5등 정도를 했었다고 말했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ㄱ고교 입학생 중 저의 입학성적은 거의 최하위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보기 전의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중학생 시절의 성적을 유지하기는 어렵겠구나'라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봤습니다. 2000년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성적이 사실상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시간에 과목 선생님이 반 성적을 게시판에 붙여놓습니다. 대부분은 자기 점수만 확인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던 학생(누구는 중학교 3년간 어느시 통합 전교1등이었다더라, 누구는 중학교 3년간 경시대회 상장만 20개가 넘는다더라 등등 소문이 많은 학생)의 점수는 다같이 챙겨보지요.

시험이 끝나고 점수를 확인해 봤습니다. 영어 수학 등은 잘봤지만 가정 기술 등 전혀 흥미가 없던 과목에서는 반타작을 겨우 넘기기도 했습니다. 정식 성적표가 뜨기 전이지만 평균을 내보니 평균 91점 정도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중학교 때처럼 반에서 3등 정도는 못하겠지만 이정도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석차는 전체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의 최소한 인권(?)은 지켜줬던 거 같습니다. 석차는 자신의 성적표에만 적혀 나옵니다. 정식 성적표를 보니 평균점수가 제리 미리 계산했던 바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석차는 얼마였을까. 고1 때 같은 반 학생이 모두 47명(남23, 여24)이었습니다. 그런데 석차에 '44'라고 써 있는 겁니다. 처음엔 전교 등수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반 석차인 겁니다.

한편 성적표를 받은 짝꿍은 '와 진짜 ㄱ고는 무섭구나. 나도 나름 중학교 때 전교 1,2등 하다가 왔는데 여기선 중간밖에 안되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곁눈질로 살짝 그 친구의 성적표를 보니 평균 점수가 95점이었습니다. 전과목 평균 95점이 반에서 중간밖에 못가는데 평균 91점은 명함도 못 내미는게 당연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입시에 포함되지 않았던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제외하고 저는 내신은 항상 뒤에서 5등 이내였습니다)

다시 조민씨로 돌아가 봅니다. 조민씨가 한영외고 입학 자체는 정당한 방식으로 한 걸로 보입니다. 여러가지 썰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일반전형으로 합격한 게 유력해 보입니다.

조민씨의 정확한 중학생 때 성적은 모르겠지만 상당한 상위권이었을 겁니다. 못해도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정도였을 겁니다. 또한 조민씨는 미국 유학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한영외고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 하여도 학생의 대다수가 유학 경험을 갖진 않았을 겁니다. 중학생 때 공부도 잘 했고, 미국에서 유학도 다녀온 조민씨는 최소한 영어 과목에서만큼은 자신이 다른 학생들보다 뒤쳐지진 않을 거라고 믿었을 겁니다.

조민씨도 저처럼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봤겠죠. 그리고 성적표를 보고 당황했을 겁니다. 다른 과목이라면 몰라도 영어에서도 중간도 못가는 점수를 받고 '이게 뭐지?' 싶었을 겁니다. 절대적으로는 높은 점수였을지라도 석차로는 중하위권이었을 겁니다. 저처럼 90점 내외의 점수를 받았을 거로 짐작합니다.

저는 지금 조민씨에 빙의해서 왜 그가 논문 제1저자에 이름을 올리고 의문스러운 인턴 경력을 쌓았는지 생각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한영외고를 정당하게 입학했다면 본인이 조금만 노력하면 소위 말하는 인서울 명문대는 자기 힘으로 갈 수 있었을 거라 봅니다. 저도 그랬지만 고등학생 시절엔 불안했을 수 있습니다. '반에서 중간밖에 못가는데 내가 인서울 대학을 갈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는게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리고 선발 고등학교의 특성상 자신과 다른 친구들 사이의 간격은 잘 좁혀지지 않습니다. 위에 링크한 중앙일보 기사에서도 나옵니다만 모의고사에서 대부분 학생들이 영어과목 1등급을 받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겁니다. 제가 다닌 ㄱ 고등학교도 반에서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각 과목 1등급을 받는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영어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다 그랬죠. 당시 수능 5과목(언어, 수리, 사회탐구, 과학탐구, 영어)에서 그나마 석차가 갈리는건 언어영역과 사회탐구의 선택과목 두개 뿐이었고 나머지는 전교생 대부분이 1등급을 받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조민씨의 수능성적은 나온게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 모의고사 때는 1,2등급을 오가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학생 전원이 수능 1~2등급을 오가는 환경에서 석차를 올리는 것과, 1~9등급이 전부 있는 학생 사이에서 석차를 올리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요. 전자의 환경이 압도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둘다 서울대를 졸업한 교수님이고, 자신도 나름 중학교 때 공부도 좀 했고, 미국에서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일단 눈에 보이는 내신성적은 반에서 중간도 못가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 아마도 걱정이 됐을 겁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미국대학을 준비하거나 SKY대학, 못해도 서울에 있는 이름있는 대학교에 가네마네 하고 있었을 겁니다.

고려대에 합격하고 나서도 비슷했겠죠. 대학에서는 고교와 다르게 학생별로 수강과목도 다 다르고 나와 내 옆에 있는 친구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서열화해서 보여주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다 보면 대놓고 말은 안해도 느껴지는 수준이란게 있죠. 저도 대학 시절 언어영역 특기생(언어영역 만점자가 없던 시절 1개 틀려서 입학)과 친하게 지냈는데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압도적인 실력차를 절감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만큼 도전하고 실력에 맞는 학교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조민씨는 자신의 실력보다 조금 높은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시끄러운 표창장 위조, 논문 제1저자 등은 '엄마가 다 해줬어'라고 퉁치고 넘어갈 성격의 일이 아닙니다. 나이도 30살이 다 되어가는데 본인이 좀더 당당하게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나서는게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표창장이니 인턴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당시 봉사활동이나 인턴 하던 시절의 사진 한장이라던지 당시를 같이 지냈던 친구 한명이라던지 뭐든 적극적으로 했다면 지금보다는 비난을 훨씬 적게 받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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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동감합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특목고 나왔습니다. 다들 비슷했겠죠.
한가지 더 추가할 내용은, 물론 조민씨가 그리고 그 가족이 잘했다는 건 아니고요, 한 때 인턴/논문 스펙 부풀리기가 과외받듯 자연스러운 시기가 있었죠. 한영외고 정도면 인턴 경력을 쌓도록 학교에서 조직적인 도움을 줬을 겁니다. 각 부모들을 반 의무적으로 모아서 전략을 짠다든가 하는...
이게 참.. 그런거죠. 위장전입 같은거요. 당시에는 다들 별 생각없이 했는 데 지나고 보니 이거때문에 흠이 잡히고...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할까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어야죠.

제가 고등학생 때는 대입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어서 스펙관리를 미친듯이 할 필요는 없었죠. 서울대 준비하는 친구들이냐 스펙관리를 했지만(인턴 논문 수준은 아니고 내신관리나 경시대회 등) 아무리 선발고등학교라고 해도 서울대 가는 애는 반에서 한두명 많아야 서너명이었거든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다같이 명문대가자’란 분위기가 커서 모의고사 보고 나면 서로서로 모르는 문제 알려주는 분위기가 있었죠. 다음편은 그걸 주제로 좀 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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