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존재의 이유 - 초보 상담샘 이야기

in school •  6 months ago

얼마 전 퇴근 전에 겨우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선배교사가 말을 걸며 붙잡았다.

"우리는 집단상담 안해?"

순간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살짝 벙쪘는데 애써 웃으면서 침착하게.. 계획서 올려서 계속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 그러면 작년에 안한거야?"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작년에도 하고 있었노라고 말했더니 반마다 들어오는 건 하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해 너는 왜 수업을 하지 않냐는 말을 돌려 물으신 것이다.

교육부의 매뉴얼에 따르면 전문상담교사의 수업은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있다.

우리는 수업 대신에 그 시간을 활용해 상담을 하고, 언제든 일어날 지 모르는 학생의 자살, 자해, 학교폭력 등에 즉각적으로 개입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전문상담교사가 많이 배치되어있지 않은 초등학교에서는 저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과목별 구분이 뚜렷한 중,고등학교에 비해 초등학교는 담임교사 위주이기 때문에 전문상담교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중, 고등에 비해서는 부족한 편이다.

선배교사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 학교에 상담교사가 배치될 거라고 어떻게 생각하셨겠나?

모든 교사는 수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이제는 뭐 그러려니.. 싶으면서도 저 때는 살짝 울컥해서 집단프로그램은 목적이 있는 경우에 진행하고 있고, 수업시수처럼 고정하는건 원칙적으로 배제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다.

선배교사는 끝까지 '다른 학교는 하는 곳도 있던데.' 라며 출처 불명의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저 분에게는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겠지만, 초등에 근무하면서 저런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몇번이나 역할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불쾌하고, 이제는 스트레스가 심해 버거울 지경이다.

물론 전문상담교사의 역할을 인식하고 격려해주시며 지지해주시는 분도 많다. 그 분들이 있어 가끔 위로 받지만서도 하루종일 상담하고, 일지를 기록하고, 요즘처럼 정서행동검사 2차 연계까지 50명 이상 스크린하고 학부모님 상담까지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누구에겐 가벼운 질문일지라도 내 마음에는 큰 상처와 버거움으로 남는 것 같다.

어제도 긴급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교실에선 한시간도 못있겠다며 상담실이 떠나가도록 통곡하는 아이가 갑자기 상담실로 찾아왔다. 교실만 가면 불안하고 마음이 이상하다고 마음이 편한 곳은 위클래스 뿐이라고 숨넘어갈 듯 우는 아이. 내가 계속해서 수업을 들어가야했고 상담실을 비운 상황이었다면 불안했던 아이가 어디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나마 학교에서 마음붙일 곳이 있다는 점, 아이가 그 곳을 떠올려서 수업시간에 허락받고 용기내어 찾아온 점, 그리고 그 곳이 상담실이란 점.. 그 자체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아이들이 언제든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상담실이 되어야한다.

상담교사가 늘 바쁘게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니다보면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상담실=비어있는 곳 이라는 인식이 박히고 상담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상담실이 오롯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전문상담교사가 본인의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대해 높이 공감하며 전문상담교사가 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부 매뉴얼에 수업배제 항목을 포함시켜 놓았지만.. 몇몇 학교에서는 '관리자 재량에 따라 수업할 수도 있지 않냐?'라 물으며 수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관리자 재량이라는게 말만 바꾸면 갑질인 것이다. 관리자의 말에 그냥 따라라는 말이다.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관리자가 바뀔 때까진 늘 불편하고 업무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래서 주변에도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라는 마음으로 관리자의 부당한 요구에도 순응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

근데.. 내가 관리자에게 밉보이기 싫어서 수업을 그냥 하겠다고 한다면? 학교에 있기 싫어서, 집에가기 싫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서 뛰쳐오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고 그 순간의 힘든 마음은 어디에 털어놓을 수 있을까?
전문상담교사는 상담을 해야하고 상담에 전념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며 교육인 것이다. 교육이란건 수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모든 개입인 것이다.

선배교사의 한 마디로 인해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던 그 동안이었다.

요즘은 특히나 바쁘고 힘든 하루였기에 더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고군분투해봤자 뭐하나? 나의 어려움은 누가 알아주나? 비교과라는 것이, 상담교사라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어려운 자리었나? 나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나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그 막연하고 답답한 기분에 울적했다.

오늘 출근까지도 마음이 좋진 않았다.

그러다가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웃으면서 인사하고 '샘 놀러갈게요~' 이야기하는데 순간 마음이 사르르..녹아버렸다.

그래 내가 있는 이유는 이 아이들 때문이지..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지.. 누군가가 몰라준다해도 아이들이 찾아온다면 그걸로 충분한거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간의 기분들이 몽땅 상쾌하게 환기되는 느낌

앞으로도 내 역할에 대해 설명해야할 날들이 많을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상담이란게 대중화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특히 학교상담자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니까... 그런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도 내게 주어진 역할 중에 하나겠지..

앞으로 이 공간에 초보샘으로서, 초보사회인으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나갈까한다.

이 공간이 나의 성장일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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