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8일차.

in #santiago7 years ago

순례길 8일차 (2017.06.14)
로그로뇨 - 나헤라(Nájera) 31km.

오늘은 여태까지 일정 중 가장 긴 거리였던 31km를 하루에 걸었습니다. 출발은 늘 그렇듯 남들보다 늦게 7시가 되기 조금 전에 하면서 하나 둘 앞질러 갑니다. 걸음이 조금 더 빠른게 저희들의 페이스기도 했지만 다른 순례자들 보다 쉬는 시간과 횟수가 적었던게 더 큰 이유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아침 로그로뇨 끄트머리에 있는 공원에서 반가운 동물들을 봤어요. 먼저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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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먹고있는 저 모습과 똘망똘망한 눈이 참 귀엽지 않나요? 저는 어릴때부터 청솔모는 많이 봤어도 다람쥐는 거의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청솔모 보다 다람쥐가 웬지 더욱 귀여워 보입니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동물 가족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에 이 다람쥐는 스스로를 책임지고 먹고 살기 바쁜 우리 20대들의 모습과 많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이 산티아고 길을 걷다보니 하나의 버릇이 생기더라구요. 길위의 모든것들을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비추어 보게되는... 어찌보면 과대한 의미부여일지 몰라도 나름 그 속에 이치는 일맥상통해 느낀바도 많았기에 제법 괜찮았던 버릇이지 않나 싶어요 ㅎㅎ

아침식사를 하던 다람쥐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더이상 방해을 하지 않고 다시 가던길을 갑니다. 얼마 가지않아 이번엔 백조 가족이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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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백조 맞죠....? 그냥 큰 오리는 아니겠죠..? ㅋㅋ 엄마백조와 아빠백조 주위로 새끼백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풀을 뜯는 모습이 너무 이쁘네요. 사진을 좀 더 가까이서 찍고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한발한발 다가가니 뒤에 있던 아빠백조(?)가 벌떡 일어서더니 경계를 하더라구요. 행여나 새끼들을 헤칠까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였겠죠.
여기서 또 자식들을 위해 위험과 고통을 불사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모님이 보였고 벌떡 일어서 경계하던 아빠백조의 조급한 마음과 저를 응시하며 초조해하던 엄마백조의 눈초리와는 달리 천진난만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풀을 뜯고 장난치며 노는 새끼백조들은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ㅎㅎ
너무 의미부여를 했다 싶을 수 있겠지만 그저 매일같이 수십키로를 걸으며 혼자 생각에 잠기다 보면 이런 의미부여로 재밌어 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되실것 같아요.

이 길로 한시간쯤 더 걸었을까, 하나의 육교가 눈앞에 있고 서서히 올라가는 길에 돌바닥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눈앞에 움직이는 하나의 검은 선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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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개미떼 였는데 사진으로는 개미들 식별이 잘 안되네요 ㅠㅠ 분명 개미들이 엄청 커 보였고 돌바닥에서도 검은색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말이죠.. 자세히 보면 곡물을 나르고 있는데 이 개미들을 보니 아침부터 일사분란하게 식량을 날라대며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흔한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네요 ㅎㅎ 제가 직장경험이 없기에 공감은 백프로 할 수 없겠지만 주변친구들의 고충을 익히들어 알고 있기에 괜시리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자 개미들아 너흰 너네가 할 일을 해라 난 내 길을 가겠노라 오늘의 여정이 제법 기니 다시 힘을 내 개미처럼 저도 열심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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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지나 왼쪽편 와이너리 담벼락에 순례자들을 위한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데.. 아직 저희가 가야할 길이 576km나 되네요ㅋㅋ 그래도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마주했던 표지석이 비하면 무려 200km나 걸어왔다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해 하며 오늘의 목적지 나헤라 까지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걸어가다보니 먼저 출발했던 민성이도 만났고, 수민이도 형준이도 그리고 선생님까지도 만나 다같이 걷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데, 오늘의 목적지 나헤라에 알베르게가 여태껏 묵었던곳들에 비해 시원찮다는 말이 많더라구요. 가이드북에도 보니까 평점이 낮아서 그럼 처음으로 사설 알베르게를 한번 이용해 볼까 하고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가면서 다같이 오늘의 피로함을 달래기 위해 저녁을 해먹기로 하고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전에 샀던 고추장이 조금 남아 있었고 라면도 두봉지 써서 닭볶음탕을 하기로 했어요. 이 길을 걷다보면 한식 접하기가 함들고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이런 대화만으로도 힘이 나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그런지 오늘하루 긴 거리였지만 어느때보다 가뿐하게 걸어서 도착한것 같아요. 2시부터 알베르게가 문을 연다고 1시반에 도착했던 저희들은 30분간 기다려야 했고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보려 했으나 마찬가지여서 처음 정했던 알베르게 앞으로 돌아와 2시가 되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와서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 때까지도 아무도 오지 않아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시설이 낙후된 곳인가..?? 하지만 가이드북엔 분명 좋은 평점이었거든요ㅎㅎ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시설을 둘러본 후 결정하자 싶어서 2시가 된 후 들어갔는데.... 괜한 걱정을 했어요 ㅋㅋ 거의 뭐 펜션 수준의 아주 쾌적한 알베르게네요!! 역시나 사설답다랄까요. 숙박비는 인당 10유로오 요 며칠에 비하면 2~3유로 정도 비쌌지만 까짓거 ㅎㅎ 그리고 웬걸 오늘의 이용자는 저희들이 전부더라구요. 아주그냥 알베르게를 통으로 전세내고 쓰다보니 정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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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파도 있고 좁지만 정원도 있었고 주방기구들도 있어 요리도 가능했고 침대도 편했고 완벽합니다. 저녁에 닭볶음탕을 하기로 해서 빨래를 한 후 장을 보러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저녁거리도, 시원하게 마실 맥주도, 식사와 한잔 할 와인도,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과일과 빵, 쥬스도 사고 다같이 양손가득 장을 봐 와서는 또다시 휴식을 취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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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듯한 더위 속에 건물도 시원해서 낮잠도 편안히 잘 수 있었어요.
자 어느덧 저녁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늘 그렇듯 냄비밥을 한가득 하고선 오늘의 주 메뉴 닭볶음탕을 만듭니다. 어릴때 부터 요리를 엄마한테 배워서 변변치 않더라도 제가 원하는것을 어느정도 해 먹을 실력은 됐고, 사촌동생도 제가 알바로 있던 음식점 주방일을 하다 왔기에 요리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닭 손질부터 재료 손질까지 동생이 하면 제가 나머지 간 맞추기와 전체적인 요리를 담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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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사람수가 많고 냄비크기는 작은데다 인덕션은 1구짜리여서 한 냄비를 먼저 해 먹는 와중에 다른 냄비를 요리해야 했는데요, 같이 와인한잔 하며 또 다같이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먹다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ㅎㅎ 간만에 닭요리로 몸보신도 하고 배도 든든허니 여러모로 완벽했던 하루인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일정을 마무리 한 사촌동생을 포함한 한국인 동생들 그리고 선생님 수고하셨고,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오늘의 가계부
    물,콜라 - 2유로
    숙소 - 10유로
    세탁 - 50센트 (오늘은 6명이 다같이 빨래를 해서 비용은 3유로 였지만 인당 50센트씩 낸 격이었어요)
    저녁,아침,간식 장 - 10유로

총합 - 22.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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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완주하신 분들은 무조건 존경^^ 뒤셀도르프 계신가봐요? 거긴 못가봤는데요. 하이델베르그가 참 이뻤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 네 저는 뒤셀도르프에서 악기제작 견습을 하고 있어요. 만하임에 시험치러 갈 때 하이델을 하룻밤 잘 곳으로 들러서 밤의 기억밖에 없어요.. 도시가 아기자기하게 이쁘다고 독일에서도 유명한 곳중 하나라 언젠가 제대로 여행을 한번 해 보고싶네요 ㅎ

바이올린을 만드시는 분은 처음 보네요 와우~~멋지십니다 부러워요.

제작을 배우다 슬럼프 기간이 와서 산티아고길을 걷게 돼서 연재중입니다 ㅎㅎ 여행 글이 끝나면 다시 제작 이야기를 쓸 예정이니 앞으로도 종종 들러주세요~^^

네 팔로했으니 꾸준히 볼거에요^^

우린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네요.
저 다람쥐, 저 백조, 우리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순례자 조형물까지...
하지만 한가지 다른 게 있네요.
닭도리탕이라...
우린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한국요리는 전혀 안 먹었거든요.
워낙 스페인 현지 음식을 좋아해서..ㅋㅋ
저도 얼른 글로 따라가야 하는데...
아직 긴 호흡을 어떻게 내쉬어야할지 몰라, 계속 숨고르기 중입니다.

참, 학교는 어찌됐어요?

저희도 스페인 음식이 입에 잘 맞긴 했는데 대부분을 장을 봐다가 직접 해먹다 보니 할줄 아는 요리가 한식뿐이라 한식을 많이 먹게 된것 같아요 ㅎㅎ

학교는 올해 4월 초에 시험 치는데 시험치러 오라는 초청장이 올까 아직 모르겠어요.

앞에 글에서 4월에 시험이란 내용은 봣어요.
두드려놓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군요.
저도 함께 노심초사 기다려드릴께요~~

오~~ 순례의 길!!!
멋지네요~
저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인데~^^
멋진 여행하세요~^^

감사합니다!! ㅎㅎ 꼭 한번 가 보세요!! 너무나 좋은 곳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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