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촘스키: 누가 세계를 움직이는가?

in #politics4 years ago (edited)
  • BBC 인터뷰(2003) 내용으로 노암 촘스키의 생각을 읽어보는 시간

언론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면 지성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의무라는 사실을 또한 인식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노암 촘스키만큼 지성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언어학자로서 인간의 언어능력은 타고난 것이고 뇌에 고정되어 있다는 논리로 유명하다. 따라서 1970년대부터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도 대명사로 통했다.

그런 그도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는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9.11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이야말로 최고의 테러국가라고 직설을 내뱉었고, 그를 지지하는 좌파진영에서마저도 적의를 띈 비난을 받았다. 노암촘스키는 1928년생으로 현재 89세이지만, 인터뷰 당시는 74세였다. 하지만 나이를 들면 그의 강경한 어조도 수그러들기 마련이라는 주변의 믿음과 달리, 그는 서구권의 탐욕과 위선을 비난하는 일에 있어서는 봐 줄 생각이 전혀없어 보인다.

그는 한 강연에서 "영국과 (시간순서적으로)그 뒤를 따르는 미국이 걸프만을 장악하려는 이유를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다. 1945년 미국을 관찰하면 될 것이다. 그 지역의 잠재력은 막대한 전략적 힘과 엄청난 천연자원의 물질적인 보상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인터뷰는 당시 2003년, 그의 최신 저서였던 'Pirates and Emperors' (국역본 제목: '해적과 제왕')의 내용을 중심으로 노암 촘스키와 질의응답을 한 것이다.

MC> 우선,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붙이게 되었나?

Chomsky> 세인트 어거스틴의 책을 보고 배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알렉산더라는 제왕이 해적을 잡아 민중들 앞에서 따져묻는 한 부분이 있다. 제왕은 해적을 보고 어째서 바다를 희롱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꾸짖었는데, 이에 해적이 말하길, '나는 작은 배나 타고 돌아다니며 괴롭히는 보잘 것 없는 소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날 해적이라고 부른다, 헌데 당신은 거대 해군을 거느리고 세계를 상대로 희롱하고 제왕으로 불린다'며 반문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이 지금의 국제관계를 잘 설명하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해적이 낫다거나 좋다고 말하는려는 것이 아니다. 일반시민들의 입장에선 해적이나 제왕에게 부당하게 당하기는 마찬가지일테지만, 해적은 작은 범죄집단인 반면 제왕의 권력은 규모가 큰 심각한 범죄단체라는 것이다.

mc> 그렇다면 누가 세계를 조종하나? 누가 그 제왕인가?

Ch> 압도적으로 미국이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영국이기도 했지만.. 사(私)집단의 권력 독식이 굉장히 집중적이고, 전제적인 기업들이 국가기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권력집중적 관계망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IMF같은 여러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다. 파이낸셜타임즈 같은 기사를 보면, 그들은 실제도로 그들끼리 '세계의 주인'이라는 말을 한다. 원래는 아담 스미스가 한 말이다. 요즘엔 더 나아가서 '우주의 주인'이라는 말도 한다.

mc> 그런데 거대 산업들을 다루려면 그들의 힘을 조율할만한 규모의 거대 정부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ch> 그 상황은 GM사의 이사회에서 온 두 사람을 다루는 것과 같다. 그 두 이사의 힘을 조율해줄 뭔가가 필요하겠지만, 내부적으로도 그 둘은 이미 아주 긴밀히 연결된 밀착 관계다.

mc> 9.11 테러로 인해 세계 정치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나?

ch> 역사적인 사건이다. 수 백년간 이런 일은 없었다. 서구 유럽국가와 그 파생국들이 다른 국가와 민족을 상대로 저질러왔던 범죄수준의 잔혹 행위을 자신들이 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큰 변화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에게 하던 일이지 우리가 당할 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권이 받은 충격은 그만큼 크다. 과거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할 당시, 영국이 원래 이런류의 폭력을 인도인 억압에 행사했었다. 인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영국이 놀랐던 것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기회로 러시아는 체첸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도 워싱턴이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정확하게 단정하고 들어간 것이다. 중국도 중국서쪽을 같은 식으로 쳤고, 아체를 향한 인도네시아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도 같은 것이다. 중앙아시아 쪽의 독재체제부터 미국같은 민주주의체제에 이르는 모든 체제에서 자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기회로도 이용됐다.

mc> 언제 다른 나라의 일에 관여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나 (여기서는 무력개입을 이야기한다)?

ch> 조건들이 맞으면 들어가는 시점은 다양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예를 들면, 그 국가의 비폭력주의가 소진되었을 시점에 들어간다거나, 둘째는 해당 국가 국민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무력개입을 지지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무력개입이 정당화될 만한 사유는 더 많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이런 조건들을 따지고 군사개입을 결정하지 않는다.
인종분리정책을 펴는 남아프리카공화국같은 경우, 국민들이 무력개입을 환영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근데 아무도 무력을 동원해 그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 동티모르를 예로 들면, 그곳은 1999년도에 한창 참혹한 폭력이 난무했고, 그 지역 사람들도 외국에서 들어오는 군사개입을 반겼던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 영국과 미국이 인도네시아를 지원한다는 그림으로 들어가긴 했다. 지원나간 그 곳에서 그들이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돕거나 행동을 했을 것 같은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영국이 이곳으로 제트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오스트레일리아가 평화군을 데리고 들어간 후에 취한 행동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이 다른나라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mc> 책에 미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언급이 많다. 미국이 표방하는 표현의 자유는 실상 대중의 생각(사상)의 자유를 조작한 결과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한층 더 교활한 미국의 술수라는 것인가?

ch> 1차 세계대전이 있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그 때부터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강제한다는 것이 점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려 들기 시작했다. 현대에 이른 우리의 생각 조종(control of thoughts) 구조는 엄청 발달돼있어 놀랄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지도자들은 항상 이 생각조종에 대해 관심이 지대했다. 이를 이용해서 평화주의자층을 광란의 반독일광신도로 전향시켜버리는데 성공한 역사적 경험도 있다. 이걸 본 산업계가 특히 훗날 홍보사업의 기원이 되는 업계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인텔리들도 매우 집중했다. 그런 그들이 누구냐면, (대중들의 마음 속에는 있지도 않았던) 그런 없는 동의(정치적 동조)도 만들어내는 '생각 조종'이라는 개념을 잡고 발달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이 '생각 조종'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 중 유명한 사람이 히틀러다. 히틀러는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전한 이유를 미국의 우세한 선동력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다음번엔 준비된 모습으로 지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근거로써 '생각 조종'을 믿게 된다. 이런 '생각의 조종', 나아가 한 인간이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컨트롤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그 다음이 영국이었다.

mc> 1960년대부터 서구권 사람들이 점점 (생각을 조종당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 사람들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똑똑해졌다. 심지어 x-파일이나 인사이더같은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에서도 '민심을 조종한다'는 개념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민심을 조작'한다, 즉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다는 개념 자체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ch> 맞다. 누군가가 채찍을 들고 통제하려고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단히 냉소적이다. 아무도 정부가 하는 말을 믿지 않고, 아무도 언론이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믿지 않는다. 이렇듯, 생각 조종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거대한 냉소주의와 반감을 갖게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중요한 것은 '침략에 대한 반대시위'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이라크전쟁을 봐도 알겠지만, 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베트남전쟁과 비교하면서 전쟁불가를 외쳤다. 그런데 알고보면 비교 자체가 완전히 불가하다. 이라크전은 베트남전과는 비교가 안되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전쟁 '전'에 대규모의 반전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유럽역사나 미국역사에서 볼 때 처음 있는 일이다.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도 개전하고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3~40년간 미국내 (지식층은 논외로 하고) 일반 시민들의 문명수준이 급격히 진보했다.

mc> 미국의 지식층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참여하고 있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들도 (일반 대중과 마찬가지로) 냉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ch> 지식인층은 (일반 대중과) 분리해서 논해야 한다. 그들은 권력의 하수인들이다. 나는 언제나 일반 대중에 대해 이야기하지, 지식층에 대해 논하지를 않는다. 지식층이라고 하는 부류는 상당히 일관된 태도를 견지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종류의 사회 변화를 논할 때에 이들은 논외일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있다면 아주 미미한 정도. 마음을 고쳐먹고 참여하려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일반 시민과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권력의 노예였다. 1차 세계 대전을 예로 들면, 상대국이건 우리쪽이건 상관없이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의 모든 지식층은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굉장히 적은 수의 지식인들이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다들 결국 감옥에 끌려들어갔다. (한국에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도 그래서 감옥엘 갔다. 미국에선 유진 뎁스, 독일에선 로사 룩셈버그. 이 정도로 굉장히 소수의 비판가들이 소신을 밝혔고 곧 투옥되었다. 반면, 나머지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자국의 이익이 될 것이라며 전쟁에 극도로 흥분했다. 이게 정상이다. 지식인들은 역사를 작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그 기록에 대해 경각심을 좀 가져고 읽어야 한다. 책으로 쓰여있으면 더 예뻐보인다.

mc> 미국 좌파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전쟁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나, 이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행동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나?

ch> (질문에서 말하는 좌파는) 무엇을 일컬어 좌파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좌파는 언제나 길거리에서 수천명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대학인 텍사스 대학교에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대적인 반전 선언이 있고, 블루컬러 지역구들로 번져나갔으며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모여 시위를 하는데 동참하는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좌파다. 이들은 '조직된 좌파(articulate left)'가 아니다. 조직된 좌파에게는 자유로운 의사의 표출이 허락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베트남전에 대해 반대하는 '조직된 좌파'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도 한번도 못 들어봤다. 예를들면, 뉴욕 타임즈는 이들 좌파에서 나온 촌평을 한번도 게재한 적이 없다. 아마 어쩔 수 없이 한줄 섞였을까. 그런데 (놀랄 것 없다) 그것이 (소위 이 바닥의) 표준이다.

mc> 수 십년간을 소위 나쁜 정부에 반기를 드는 입장인 당신이 '비판과 동시에 더 많은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어땠을까'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ch> 해결책이라는 것은 많다. 사실 그게 끝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해결방안을 내놓았는데, 가장 단순한 해결책은 '범죄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에 지구 상의 테러리즘을 축소시키고 싶으면, 네가 테러에 가담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으로 모든 테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테러가 눈에 띄게 급감할 것이다. 해결책은 이렇게 단순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같은 좀 더 복잡한 상황을 예로 들면, 이미 국제적인 합의가 돼있고 대다수의 미국사람들도 지지하는 '2체제 결의안(two-state solution)'을 따르면 해결될 것 이다. 헌데 미국정부는 (이 결의안 이행을) 반대한다. 미국 국민들의 대다수가 지지하는 해결책이 있기 때문에 실행만 하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수 많은 문제와 해결책이 있다. 일례로, 환경문제도 해결할 방안이 많다. 비판을 가하며 반대의견을 내는 지식인들이 정작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비난은 '전형적인 식자층'의 주장이다. 이들은 제시된 해결책을 좋아하질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다.

mc> 당신은 1960년대에 처음 정치 행동을 시작해왔는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커다란 진척을 이뤘다고 보는가?

ch> 내 생각엔 미국이야말로 큰 발전을 이뤘고, 나는 거기에 참여한 정도이다. 개인의 역량에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 집단적인 움직임이었고 큰 문화적 변화가 있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그 옛날 1960년대에는 여성운동도 없고, 환경운동도 없었다. 제3세계들의 연대운동이나 핵무장 움직임, (소수의 대기업을 위주로 사업을 추진하고 그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방식의 세계화를 지양하는) 국제 정의 운동 (ex. 공정무역) 같은 것도 없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지난 2~30년 사이에 발전된 부분이다.
전에 없던 희한한 점을 하나 더 예로 들면, 침략국가의 국민이 피해국에 와서 이들을 보호하는데 일조하고 함께 사는 일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80년대 미국에서 수 만명의 미국 보수주의자들, 대부분 기독교를 믿는 미국의 일반 대중 사회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콜롬비아 내 이스라엘 주둔지를 비롯해 세계 어디서나 피해국 사람들을 돌보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mc> 그런 국민 대중의 의사(대중적인 변화의 움직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현재 우파성향의 정부가 이끌고 있다. 그리고 촘스키 본인도 세계가 미국을 보는 시각과 미국인이 미국 스스로를 보는 시각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ch> 그렇지 않다. 나도 세계 경제 원리를 따른다. 소위 자유 무역 협정(FTA)이라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게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반대하는 여론이 굉장히 압도적이긴 하다. 그런 이유로 이 문제는 결코 선거에서 이슈화되지 않는다. 엘리트 집단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견해는 선거 공약전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이는 정치가 대중을 따돌리는 스킬 중의 하나다. 우리가 처음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도 언급했지만, 대중들이 이러한 전략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즉, 대중들도 다 안다. 예를 들면, 유권자의 75%가 2000년 선거 결과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조지 w. 부시와 엘 고어가 미국 대선 투표결과를 놓고 2000년 12월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승패를 따졌던 사건을 말한다. 당시 재판관이 5대4로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고, 알다시피 부시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하게 된다.)

mc> 그렇다면 그렇게 대중들이 갖는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무엇이 필요한가? 대중들 중에는 스스로가 운명을 만들어가고 주체적인 결정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당장 주변에 있는 가족들을 돌봐야하고, 직장을 다니고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문제들 때문에 그들의 감정과 의견이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한정되어 발이 묶인다. 그들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속박이라면 영영 깨지지 않을 것 같다.

ch> 그것이 대중을 컨트롤하는 방법 중 하나다. (가족과 생계처럼 대중의 행동을 억제하는 고리가) 왜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노예제도가 깨졌다. 역사를 짚어봐라. 강제하고 조종하는 형태의 지배가 하나씩 하나씩 깨져왔다. 소련도 안에서부터 무너졌고, 우리가 아는 그 어떤 형태의 독재도 일반 대중들이 조금씩 긁어 깨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마침내 타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현존하는 권력의 형태는 그 어떤것도 깨지기 쉽다. (권력을 쥔 사람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우주의 주인'이라고도 부르는 집단 중 하나인 '세계 경제 포럼'단체을 보면, 그들이 휘두르는 조종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신들이 더 잘 알고있고, 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mc> 마지막으로, 당신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긍정적인 기조를 갖는 입장이다. 그런데 현실의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꽤 비관적인 분석을 하는 듯하다. 어떻게 조율하는지 궁금하다.

ch> 안토니오 그램시가 한 유명한 말을 빌려, 우리는 '지성에 대해는 비관주의자가 되고, 의지에 대해서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합리적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