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알바생의 하루

피순이의 하루

첫 알바를 시작한 건 2007년이었다. 2007년 말부터 마지막 알바인 2013년까지. 칠년동안 여러 알바를 했었다.
청소년 직장체험(KT), 피씨방, 스쿨룩스 교복 판매 알바, 휴대전화 조립 공장, 야간 공장, 텔레마케팅, 경영포럼, 서명알바, 엑스트라, 학원, 무급인턴.
하루 했던 옷가게 알바와 초딩때 전단지 나눠주고 받은 2000원 알바는 뺐다. 용돈벌이로 알바를 했다. 방학 때, 휴학 때 한 것이어서 대부분 1-2개월이었다.
휴학 때 했던 피씨방 알바와 학원 알바를 8개월 정도 했다. 지금은 지난 10년 간 했던 알바들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기라도 매일 써놨으면 그 때 흔적이 있을텐데,그 때 나는 글쓰기를 즐겨 하지 않았다. 일 하고 돌아오면 지쳐 쓰려져 바로 잠들기 일쑤였던 것 같다. 일명 '꿀'알바도 있었지만 모든 알바는 당시에 매우 힘들었다. 모든 일을 할 때 마다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거야'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만드는 공장에 다녔을 때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일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됐다. 일할 때는 효율이 중요했다. 나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였다. 내 의지로 움직일 수도, 움직여서도 안됐다. 밤낮이 바뀐 야간 공장 알바를 했을 때에는 '내가 이것도 했는데 뭔들 못하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23살이 되던 해였다.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스물셋이라는 게 서글퍼졌다.

스무살에서 스물 하나로 넘어가는 겨울, 피씨방 알바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청소년 직장체험'에서 하는 알바를 했다. 2시까지 일을 끝내면 3시까지 피씨방으로 향한다. 3시부터 10시까지 알바를 했다. 12시간을 일하고 돌아오면 11시였다. 11시에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알바생의 하루가 시작된다. 지금 자면, 또 내일일텐데. 일찍 일어나서 알바가야할텐데. 눈 감고 하나, 둘,셋 숫자를 세면 아침을 맞이했다. 차라리 12시간 일 한 후 파김치가 되더라도, 일을 마치고 집에 있는 밤이 행복했다. 잠들기 싫어했다. 그래서 버티고 버텼다. 12시, 1시, 2시,3시. 피씨방 알바 6일차였다. 서글퍼져 눈물이 났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싸이 홈피를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나 지금 절절해, 제발 정독해줘' 라고 했다. 아래는 내가 피씨방에서 일할 때 쓴 글이다. 제목은 피순이의 하루다.

피순이의 하루.

①손님이 오면
'커피 드릴까요? 녹차 드릴까요?' 를 물어본다. 그럼 난 속으로 '커피커피'를 외친다. 커피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나오니까. 그런데 녹차는 일단 얼음을 타고 냉장고에서 녹차를 꺼내 따라야한다. 녹차 주세요. 하면 속으로 ' .... -_- ' 그럼 손님의 위치를 파악한 후 커피나 녹차를 갖다준다. 재떨이도 갖다준다.

②손님이 나가면
자리를 청소한다. 쟁반을 본체위에 올린다. 컵,쓰레기,재떨이 등을 올린다. 키보드를 털털 턴다. (먼지는 사실 얼마 없다.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키보드, 키보드 아래, 본체, 테이블 등을 걸레질한다. 담배를 많이 피는 놈은 담뱃재까지 처리해야한다. 그 후 키보드 덮개를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는다. 캔 등은 분리수거함에 넣는다. 종이컵은 종이컵 놓는 곳에 넣는다. 재떨이는 집개로 정리하는데 그 안엔 담배꽁초와 침이 가득하다. 의자의 높이를 맞추고 기울기를 수직으로 고정시켜야한다. 아 ... 또 있다. 마우스에 묻은 손때를 벗겨야한다.

③손님들의 부르심
벨을 누른다. 띵동 - 숫자가 뜨면 그 좌석으로 찾아간다. 그럼 그 손님은 몇 가지 명령을 한다.
커피달롸
녹차달롸
재떨이달롸
헤드셋달롸
라면달롸 (라면은 뽀글이라면이라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는게 있고, 하나는 그냥 컵라면) 거기에 단무지까지 친절히
과자 @$5$% 주세요
한게임 던파 넷마블 쿠폰줘
5000원 추가해줘

④잠깐 틈새 시간이 날 때 (예를 들면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시간)
이 시간에는 카운터에 앉아서 몇 번에 누가 앉아있는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야한다. 특히 후불계산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꼭 기억해야한다. 몇 번 좌석에 몇 분이 남았는지 파악하기.
누구는 커피를 좋아하고 헤드셋을 사용하는지 파악하기. 등등

회원은 대부분 선불제를 이용한다. 카드 등의 다른 도구가 없이 그냥 이름만 치면 피씨 접속이 가능하고 카운터에서 충전하면 피씨사용이 가능하다.
처음에 손님이 와서 그냥 5천원치 충전해주세요. 하고 가면 그 손님이름으로 충전을 해줘야하는데, 얘가 누군지 모르거나, 몇 번 좌석에 앉았는지 모르면 완전 낭패인거다.

비회원애들 한꺼번에 6명이 몰려와서 1시간씩이요 - 하고 떠나버리면 내가 걔네들이 어디 앉았는지 어떻게 알고 내가 충전을 해주냐고.

어떤애 하나가 와서 1000원주고 햄버거요. 하고 간다? 그럼 햄버거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그런데 걔가 어디 앉아있는지 모르겠어. 얼굴도 까먹었어.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또 부르지
이거 어떻게하냐고 물어. 아 나도 컴퓨터 잘 모르거든여. 왜 피방에서 EBS를 보는거야? 왜 피방에는 그리고 EBS 재생이 안돼?

조금 여유가 있다 싶으면 재떨이를 6개 정도 담아서 흡연석을 돈다.
재떨이 바꿔드릴게요. 하면서 담배꽁초가 가득한 (침+ 등등 ...) 재떨이를 수거하고 새로운 재떨이로 바꿔줘야 한다.

어느 새, 컵이 줄어든다. 컵을 씻어야한다. 재떨이도 씻어야한다. 재떨이는 깨끗이 씻은 후, 적당량의 물을 넣고 그 위에 휴지를 깐다. 말린 후 카운터위에 올려놓는다.

계산해달란다. 어디 앉아있었던 손님인지 모른다.
화장실을 가는건지, 집에가는건지 모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건지, 새로 오는건지 모른다. 그렇다 보면 대략 인사도 뻘쭘해진다.

커피자판기에 돈이 떨어지면 열쇠로 돈을 꺼내서 다시 코인을 채워넣어준다. 녹차가 떨어지면 녹차를 만들어야한다. 컵도 꼬박 씻어서 채워넣어야하고, 과자나 음료가 비면 그것도 채워넣어야한다.

하나하나 보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동시다발적이다.

34,35번 손님이 나가서 자리를 치우고 있는 도중에 새로운 손님1,2가 온다. 그럼 새로운 손님한테 가서 인사를 하고 커피드릴까요 녹차드릴까요를 묻는다. 그럼 커피와 녹차를 새로운1,2 손님에게 주고 다시 뒷정리를 하러 간다. 그런데 또 새로운3 손님이 온다. 그럼 정리를 마무리하고 새로운3손님한테 간다. 1000원 충전해달란다. 그럼 5000원을 받고 4000원을 거슬러준다. 새로운 손님3이 자리를 찾아 떠난다. 그럼 그 새로운 손님3이 앉은 위치를 파악하고 로그인이 되면 그 때 1000원을 충전한다. 그리고 새로운손님3이 명령한 커피를 눌렀을 때 초딩4가 라면을 주문한다. 그럼 라면 값을 계산한다. 새로운 손님3에게 커피를 가져다주고 컵라면을 끓인다. 단무지를 담고 있을 때 벨이 울린다 그럼 55번손님에게 간다. 55번 손님이 커피를 달란다. 그럼 커피를 뽑으러 간다. 커피 뽑으러 가는 도중에 22번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12번에서 물 한잔 달라한다. 카운터에 손님이 서있다. 누네띠네 하나 달란다. 누네띠네 계산을 하고, 커피 버튼을 누르고, 물을 따르고, 초딩4의 위치를 찾다가 초딩4에게 라면을 주고 55번 손님에게 커피를 주고 12번에 물을 주고 22번 자리에 청소를 하러 간다. 이제 좀 쉴려나 하고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들의 위치와 얼굴을 계속 파악한다. 7번이 후불이고,3번은 계속 돌아가는거니까 끄지 말라고하고, 30번은 아무것도 안하네? 설마 간건가? 하고 30번에 가보니 이 놈이 간거다. 그럼 다시 걸레와 쟁반을 가지고 30번으로 가서 키보드 탈탈 털고, 걸레질하고, 쓰레기 치우고 재떨이 치우고, 의자 90도로 맞추고, 높이는 최대로.
그런데 31번에서 한게임 쿠폰이 없냐고한다. 있다고하고 가지러 간다. 그런데 초딩 6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한 시간씩 한다고 돈을 주고 가버린다. 한게임 쿠폰 31번에 가는 동안 초딩들이 앉긴 앉았는데 어디 앉았는지 모르겠다.

끄지말고 중지하라고해서 중지했는데 나중에 하는 말이 2번 중지하라고 했는데 왜 이거 껐냐고 하냐. 캐릭 죽었단다. 2번은 원래 중지였거든요? 라고 속으로 말한다. 씨 씨 거린다. 9번 손님이 나가길래 9번을 껐는데, 16번을 끈거였다. 16번 손님이 와서 껐냐고 물어본다. 죄송하다. 이 손님은 다행히도 괜찮다고 해줬다.

벨누르고, 계산하고, 전자레인지로 돌리고, 갖다주고, 충전하고, 물갖다주고, 커피갖다주고, 녹차갖다주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재떨이 바꿔주고.

이것들이 모두 동시에. ..이루어진다.

서빙(;)하는 것과 청소하는 것, 설거지 하는 것들은 사실 중노동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워야할 것이 너무 많고, 모두들 빠르게 처리해주길 바란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일이지만 나는 10명이 동시라면 10개의 일을 한번에 기억해야하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계산하는 것도, 얼굴 외우는 것도 익숙해지겠지만, 6일차 알바생바생에게는 아직은 먼 길이다.

조금 여유가 있을 줄 알아서 시작한 일인데, 정말 여유가 없다.
사장이 있으면 그나마 카운터를 보지 않아서 부담이 덜하지만 정말 쉴 틈이 없다. 특히 주말에는 더더욱.

정말 울고 싶었다. 한꺼번에 외우려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일했는데 나중에 정산 안 맞아봐라.
계산 확실히 다 했는데, 정산 안 맞으면 정말 짜증나는거다.
모자르는건 월급에서 빼고 남는건 왜 안 더해주냐 ...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62025.78
ETH 2417.09
USDT 1.00
SBD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