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 마을의 하루 - 7

in #novel9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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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도착한 만싸는 저 쪽에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히비스를 발견했다. 히비스는 마물에게 다친 마을 사람에게서 독기를 빼내는 중이었다. 만싸는 애나와 다고담이 무사히 서내에게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바로 히비스에게로 달려갔다.

“히비스!”

히비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잠깐 만싸인 것을 확인한 뒤, 잠깐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치료에 집중했다. 히비스의 손에 들린 요정의 실이 상처에 닿자, 실이 끝 부분부터 검게 변하면서 실 끝에 연결된 작은 유리병에 검은 색의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싸가 도착했을 때는 실이 점차 다시 하얗게 되면서 상처가 조금 아물기 시작했을 때였다. 히비스는 만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칼 좀 다룰 줄 알텐데, 다쳤어?”

“아뇨, 아니에요. 애나 칼에 뭘 한건지 물어보려고 왔어요.”

히비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주위에서 애나를 찾았다. 저 쪽 멀리서 폴짝대고 있는 애나를 발견한 히비스는 애나의 허리에서 레이피어를 발견해고 눈을 찌푸렸다.

“아직 애나에게 줄 칼이 아닌데?”

만싸는 간략하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설명했다. 한결이 애나에게 칼을 빼앗긴 일과, 애나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마물을 만났던 일. 히비스는 한결이 애나에게 칼을 빼앗겼다는 얘길 듣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일단 아직 그 실에 뭔가를 하진 않았어. 하지만 마물들이 애나를 무시하거나 피했다면, 이유가 있겠군.”

히비스는 저 쪽에서 다영을 불렀다. 다영은 다친 사람들에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중이었다. 다영은 히비스의 치료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 치료중인 부상자의 처리를 마무리했다. 히비스는 다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고, 방금 전까지 히비스가 담당하고 있던 환자는 이제 다영이 담당하게 되었다.

“마물과 싸우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면 다들 그걸 쓰지 않겠어? 없으니까 그러지 못하는 거지.”

“그렇지요?”

만싸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비스는 손으로는 부상자의 상처에서 독기를 뽑아내면서, 머릿속으론 곰곰히 생각을 굴렸다.

“마녀라면 방법을 알겠지. 마녀는 마물을 부리잖아?”

만싸는 “그야 당연히..” 라고 얘기를 꺼내다가, 말을 멈췄다.

한결의 말에 따르면, 레이피어는 그가 할매에게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애나에게 주었다. 다행히 애나는 무사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사한 것이다. 히비스는 아직 칼에 마법을 걸지는 않았다. 한결이 마법을 걸었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한결은 애나가 위험하다고 했다. 한결이 마법을 걸었다면 한결은 애나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큐의 경우에 애나가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것 마냥 그대로 남아서…

만싸는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 상황을 살펴 보았다. 광장 쪽에선 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세계수 구조물 입구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웨인이 길을 터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것은 웨인의 판단일 것이라 생각한 만싸는 다른 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꽤 어둡고 시선이 잘 가지 않는 외곽 쪽에서, 다쳐서 쓰러져 있는 큐와 도끼를 들고 있는 하루츠를 발견했다. 세계수에서 나오는 빛에 반사된 도끼가 핏빛을 띄고 있었다.

——

하루츠는 도끼에 묻은 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큐를 다시 바라보았다. 큐는 옆구리의 상처를 움켜쥔 채,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빠라고 불러줄까?”

“됐다.”

하루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큐를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큐는 큰 상처를 입었다. 큐가 자신을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주위 사람들은 세계수 쪽에서 일어난 난리와, 저 쪽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에트나로 인해 이 쪽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세계수 광장에선 마물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 하루츠는 에트나에게 가기 전에 그들에게 큐를 부탁하고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츠, 가지 마라.”

“…널 치료해줄 사람을 부르러 갈 거다.”

“형은 네가 형을 공격했다는 걸 알려서 널 붙잡을 거다.”

저 얘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저 의도를 드러낼 필요조차 없다. 저러한 것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 주위에 왔을 때, 실제로 저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하루츠가 정말로 친구를 공격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 더해서, 하루츠가 반항하다가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해쳐야 할 수도 있다. 즉, 저러한 얘기를 지금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하루츠를 보내지 않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거기까지 이해한 하루츠는 이를 갈았다.

“자기 만족에 취해 사는 미치광이 놈!”

“좋은 취미 생활이지.”

하루츠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난 간다. 가야 해. 에트나에게 진실이 뭔지 듣겠어. 그리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들어야겠어!”

“…네가 화를 내야 할 대상은 에트나가 아니라 마녀다.”

하루츠도 당연히 아는 이야기였고, 따라서 설득당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츠는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루츠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만든 이유는 그 내용이 아니라, 음색에 있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지만 큐의 목소리가 꽤 갈라지게 들렸다. 하루츠는 큐가 피를 생각보다 많이 흘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은 사람들에게 큐가 다쳐서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하루츠!!”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츠는 그 목소리가 만싸의 목소리임을, 그리고 만싸가 상당히 화가 났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루츠는 도끼를 든 채로 몸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만싸는 상당히 가까운 곳 까지 달려와 있었다.

“만싸. 큐가 다쳤다. 사람들을 불러서 치료해 줘.”

“네가 그랬나!?”

쓰러져 있는 큐를 오른편에 두고, 만싸는 칼을 뽑아들었다. 하루츠가 들고 있는 도끼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지만, 하루츠는 칼집에서 나는 쇳소리에 조금 몸을 떨었다. 그리고 도끼를 꽉 움켜쥐었다. 하루츠는 자신이 만싸를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런 게 맞아. 하지만 지금은 큐를 치료해야 해.”

“왜 그랬어!”

만싸가 소리질렀다. 하루츠가 정말로 큐를 해쳤다면, 우선 하루츠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대치 상황을 해결한 건, 쓰러져 있는 큐였다.

“형 아직 안 죽었다.”

“큐!”

만싸는 곁눈질로 큐를 바라보았다. 큐는 눈을 감은 채로 옆구리를 꾹 쥐고 있었지만, 이미 얼굴에서 혈색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보통 이런 상태에서 많은 얘기를 하면 죽는 이야기가 많다만, 형은 안 죽으니까 얘기하마, 만싸. 한결이 뭔가 꾸미고 있다. 한결은 이미 세계수 지하로 들어갔다. 하루츠는 에트나에게 따지러 갈 생각이고. 둘 다 잘 막아봐라. 형이 안 다쳤으면 한 명이 한 쪽씩 나눠서 가면 되었겠지만, 아무래도 형이 다쳤으니 니가 수고 좀 해야겠다.”

만싸는 그제서야 웨인이 세계수 지하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님을 눈치채었다. 큐의 설명은 현재로서 중요한 부분을 다 짚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싸는 짜증이 확 솟는 것을 느꼈다. 큐는 그 와중에도 하나의 이야기를 빼 먹었다.

“니 구멍난 옆구리를 막는 것 까지 따지면 세 개다, 개자식아!”

큐는 그 와중에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건 우리 아버지인 자이언트 뽀삐 3세가 가르쳐 준 죽은 척 하는 비법이다. 조금 있으면 하루츠가 날 오빠라고 부를테니까 잘 봐라.”

“그냥 죽여버린다!?”

만싸는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급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간단히 결론지었다.

“하루츠. 히비스를 불러서 큐를 치료해주고, 에트나에게 따지러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난 한결을 쫓아간다.”

“만싸!”

그 얘기를 듣고 소리를 지른 건 도리어 큐였다. 큐는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만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만싸는 그런 큐의 시선을 무시했다. 만싸는 하루츠를 슬쩍 노려보고 도끼를 바라본 뒤, 칼을 칼집에 넣고 하루츠에게 내밀었다. 하루츠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니가 그 도끼를 들고 사람들에게 가면 ‘내가 그랬습니다’ 라고 광고하는 꼴 밖에 더 되냐. 바꾸자. 그러면 큐가 무슨 개소리를 하건 사람들은 큐 식 농담이라고 생각할거다.”

그렇게까지 얘기를 듣자, 만싸가 하는 행동을 의심하고 있던 하루츠도 만싸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끼를 거꾸로 잡아 도끼 자루를 만싸에게 내밀었다. 만싸는 도끼를 받아들고 칼을 건네준 뒤에, 적당히 옷에 피를 닦아내고는 세계수 쪽으로 뛰어갔다. 하루츠는 큐를 잠깐 바라보고는 물었다.

“오빠라고 불러줄까?”

“…형이 잘못했다.”

큐는 부정하면서도, 만족한 듯한 미소를 띄었다. 하루츠는 콧방귀를 뀌고는 히비스에게 달려갔다. 히비스에게 목소리가 잘 들릴 정도의 거리가 되자, 하루츠는 다급한 말투를 흉내내어 외쳤다.

“히비스! 큐가 크게 다쳤어요!”

“뭐?!”

히비스는 위급한 환자들을 대부분 살펴보았기 때문에, 하루츠의 말을 듣고는 바로 치료 도구를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하루츠가 뛰어가는 방향을 따라 뛰었다. 그런 히비스의 눈에 하루츠의 허리에 매여 있는 칼이 들어왔다.

“하루츠, 네가 왜 만싸의 칼을 들고 있지?”

하루츠는 히비스에게 모든 내용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당장 떠오른 의문점을 해결하기로 했다.

“어떻게 만싸의 칼인지 아셨어요?”

“그야 내가 만들어서 만싸에게 준 거니까.”

하루츠의 궁금증이 풀렸다. 확실히 히비스의 물건엔 히비스가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물건은 히비스가 만들어서 만싸에게 준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루츠는 쉬운 변명 거리 하나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아. 만싸가 비상시에 쓰라고 잠시 맡겨두고 갔어요.”

“그래?”

히비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하루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쓸 일은 없을 테니까.”

“네?”

히비스는 큐의 옆에 도착해서는 상처를 살펴보고 치료를 시작했다. 상처의 위치와 형태가 신경쓰였지만, 우선은 큐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큐는 별다른 말 없이, 히비스의 치료를 받았다. 히비스가 응급 조치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히비스는 방금 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하루츠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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