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 마을의 하루 - 6

in #novel9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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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나는 마물을 노려보았다. 마물은 눈을 꿈뻑이더니, 에트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가 바닥을 내리찍고, 바닥을 이루던 반석들이 깨지고 튀어올랐다. 그러나 에트나는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 마물의 뒷편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마물의 장딴지 근처에서 검은 피가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 에트나는 뒷쪽으로 이동하면서 마물의 다리를 한 번 베어넘긴 모양이었다. 마물은 묘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 에트나를 노리고 다시 재차 공격을 가했다. 에트나는 날렵하게 뛰어 벽을 밟으며 몽둥이를 피했고, 그대로 허공을 돌며 마물의 팔을 베었다. 그러나 마물은 그런 “사소한” 피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에트나도 마물이 쓰러지지 않는 것에 딱히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마물 주위를 뛰어다니며 마물을 상대했다. 그러면서도 에트나는 조금씩 광장에서 먼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제 얘기해. 도대체 내 저주가 어쨌다는 거야?”

“네 저주는 네 저주다. 그걸 왜 형에게 묻지?”

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루츠는 큐의 멱살을 잡았다.

“이 개자식이..!”

큐는 딱히 개의치 않고 대꾸했다.

“우리 아버지인 자이언츠 뽀삐 3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난 결백하다.”

자이언츠 뽀삐 3세는 할매네 집에 있는 큰 개 이름이다. 하루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하루츠가 큐를 “개자식”이라고 부른 시점에서 아버지 이름이 틀렸기 때문에 맹세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태클은 의미가 없었다. 하루츠가 눈을 찌푸리자, 큐는 하루츠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큐는,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츠의 손에, 원래라면 큐의 허리춤에 있던 도끼가 쥐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큐가 급히 허리를 짚어 보았지만, 도끼는 이미 하루츠에게 넘어간 뒤였다. 하루츠는 큐의 멱살을 풀면서 동시에 큐에게서 도끼를 빼앗은 것이었다.

“한결이 그러더군.”

“…?”

하루츠는 도끼를 보며 무심코 “아버지의 도끼…” 라고 중얼거렸다. 큐는 순간적으로 하루츠가 자신의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음을 눈치채었다. 하루츠는 조금 움직였다. 큐는 하루츠가 조금씩 세계수 바깥쪽으로, 그러니까 저쪽에서 괴물과 싸우고 있는 에트나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을 눈치채었다.

“..하루츠.”

“내가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뒀지. 아버지가 모든 것을 잘못한 줄 알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 넌 알고 있었냐, 큐?”

“하루츠, 멈춰! 그건 필요한 일이었어!”

큐는 하루츠를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하루츠는 능숙하게 옆에 차고 있던 몽둥이를 한 손에 들었다.

“역시 한결의 말이 맞았네. 에트나의 죄를 괜히 아버지에게 묻고 있었어.”

하루츠는 몽둥이로 큐를 겨누었다. 여차하면 휘두를 기세였다.

“따라 오지 마라. 형 대접 안 해준다. 대답은 에트나에게 직접 듣겠어.”

하루츠는 에트나를 더 이상 에트나 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큐는 이를 악물었다. 에트나는 괴물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만약 하루츠가 저기에 가게 되면 에트나는 양쪽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자신이 죽어서도 안 되고, 하루츠가 죽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괴물은 그들 둘 다를 죽이려 할 테고, 하루츠조차도 지금으로서는 에트나에게 적대적이다. 자신을 해치려는 두 녀석을 상대하면서, 또한 동시에 자신과 하루츠가 죽지 않게 막아내는 것은 아무리 에트나라고 해도 무리다. 큐는 하루츠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큐는 한결이 자신의 발목을 잡기 위해 하루츠를 아주 잘 이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결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큐가 정말로 그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완전히 낚였군.”

하루츠는 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조금 더 물러난 뒤에, 에트나에게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큐는 그 타이밍을 노려 하루츠에게 달려들었다.

——

“더 다가오지 마!”

웨인은 자신의 장대를 들어 사람들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몽둥이나 농기구를 들고 웨인과 대치했다. 웨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입구를 지켜내야 했다. 그러나 웨인 역시 이들의 요구조건이 그렇게 부당하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었다. 웨인은 자신이 중요한 복도 아래쪽만을 막고, 그 위쪽 통로까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떨지 하는 생각에 빠졌다.

세계수 구조물은 튼튼하다.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저 쪽에서 날뛰고 있는 괴물이 직접 몽둥이로 후려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버텨줄 것이다. 에트나가 힘을 많이 되찾은 현재 상태라면 마물들은 어떻게든 상대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생각보다 컸다. 키가 인간의 두 배가 넘고 흉흉한 눈빛을 하며 커다란 몽둥이를 휘두르는 마물보다는, 똑같은 인간이고 보통의 사람보다 말랐으며 눈빛만 흉흉하고 날붙이도 하나 없는 웨인이 더 만만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들도 이렇게 완강하게 버티는 웨인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저씨.”

“..응?”

한결이 웨인에게 다가왔다. 웨인은 잠시 그를 경계했으나, 한결은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웨인은 그를 빵집 앞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한결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아저씨가 세계수에 상처를 입혀서 마물을 여기까지 불러들였나요?”

한결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웨인과 마을 사람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웨인은 단박에 부인했다.

“아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어떻게 널 믿지!?”

“애초에 세계수 밑에서 뭘 하는지 모르잖아!”

“저 놈은 외지에서 건너 온 놈이야!”

“제 아비는 아마 저 밑에서 세계수를 뽑고 있을지도 몰라!”

“마물이 점점 많이 나타나는 것도 저 놈 때문이다!”

웨인은 일이 점점 더 꼬여갈 것임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복도에 조금 들어가서 농성하는 편이 나을 듯 했다. 한결은 웨인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 담담하게 말했다.

“믿겠어요, 아저씨.”

웨인은 한결의 말을 들었다. 그나마 이 난장판 속에서 한 명이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큰 다행이었다. 한결은 뭔가 결심한 듯, 마을 사람들을 한번 죽 둘러본 뒤, 뭔가를 잠깐 생각하다 웨인에게 좀 더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까치발을 했다. 뭔가 귓속말을 하려는 모양이었기에, 웨인은 장대를 들고 사람들을 경계한 채, 한결에게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한결은 그 상태로, 웨인의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으왓!”

웨인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이 완벽한 무방비 상태로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다! 잡아!”

“한결! 잘 했어!”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웨인은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장대를 빼앗고, 웨인을 짓눌렀다.

—–

“비켜! 이 미친 자식!”

하루츠는 큐에게 덮쳐져서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그 충격으로 도끼와 몽둥이 둘 다 조금 떨어진 곳에 튕겨져나갔다. 큐는 하루츠를 억지로 뒤에서 끌어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넌 지금 에트나에게 가선 안돼!”

“왜 안되는지 설명할 수 없을테지!?”

큐는 이젠 하루츠의 질문에 솔직히 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넌 죽어선 안돼! 네가 죽으면 마녀가 부활한다!”

“무슨 개소리야!”

하루츠는 발 뒤꿈치로 큐를 걷어찼다. 그리고 팔꿈치를 휘둘렀다. 큐의 몸 어딘가에 팔꿈치가 맞았고, 큐가 “윽!” 하고 소리를 내며 하루츠의 몸을 껴안은 힘이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츠는 잽싸게 큐를 밀쳐내 큐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큐는 입술이 터져 있었고, 하루츠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큐 역시 따라 일어났다. 다만 위치가 바뀌어, 이제 하루츠가 좀 더 세계수에 가까운 쪽이 되었다.

“한결에게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해주지. 마녀가 걸었을 저주는 아마 에트나 님을 향했을 거다! 에트나 님이 그 저주에 걸린다면 에트나 님은 마녀를 봉인할 수 조차 없겠지! 그게 마녀의 노림수일테니까! 하지만 에트나 님은 그 사이에 다른 요정을 끼워넣었다! 그 요정이 죽으면 저주는 원래 목표인 에트나에게 다시 가게 된다! 그럼 마녀는 깨어날꺼야!”

하루츠는 큐가 자신을 “형”이라고 칭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큐 역시도 상당히 다급해진 모양이었다. 하루츠는 눈을 부라렸다.

“아무 죄도 없는 우리 가족 전체를 피해자로 만들면서 뭐가 ‘에트나 님’이냐!”

“어째서 네 추궁에도 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라, 하루츠! 네 아버지도 그 쪽이 더 중요하다고 인정한거야!”

“….!!”

하루츠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 “살아남아라.” 가 생각나 이를 악물었다. 큐는 하루츠를 향한 설득이 효과를 보고 있음을 눈치채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큐는 세계수 앞이 난장판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웨인이 바닥에 쓰러지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뒷쪽으로, 세계수 지하로 가는 문이 조금 열리고 한결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보였다.

“…한결!”

큐는 한결의 노림수를 깨달았다. 여기서 웨인의 입장을 고려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에트나를 제외하면 만싸 뿐이었다. 그래서 애나를 위험에 처하게 해서 만싸가 그녀를 구하러 가게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만, 큐는 한결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고, 그래서 한결은 하루츠를 이용해 큐 역시 광장에서 떼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결이 노리고 있는 것은 세계수 지하에 있는 마녀의 물건일 것이다.

“비켜.”

큐가 하루츠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하루츠에게 시선을 돌리자, 다시금 도끼를 손에 든 하루츠가 보였다. 큐는 눈을 찌푸렸지만, 하루츠의 표정은 다시 날카로워져 있었다.

“미안. 나중에 오빠라고 한 번 불러줄께.”

“하루츠!”

큐는 하루츠에게 달려들었다. 하루츠는 도끼를 휘둘렀다.

——

만싸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애나와 다고담을 찾아 달려갔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마물과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으나, 만싸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애나와 다고담이었다.

다고담 네 집은 꽤 멀었다. 만싸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중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만싸는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애나와 다고담을 발견했다.

“애나!? 괜찮아!?”

“만싸! 괜찮아! 괜찮아!”

다고담은 품 속에 뭔가 꼭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싸는 그것을 확인했지만, 모른 척 했다. 만싸는 애나와 다고담에게 한바탕 설교를 하고 싶었지만, 달려오느라 지친데다 앞으로 세계수까지 다시 계속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뒤로 미뤄두었다.

“계속 뛸 수 있겠어?”

“응! 하아, 하아… 후아… 아참!”

애나는 레이피어를 들고 만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내 꺼다!”

“…축하합니다, 아가씨.”

“또!”

애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툴툴거렸다. 만싸는 생각보다 상황이 쉽게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싸는, 옆 골목에서 늑대같이 생긴 마물 두 마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런!”

만싸는 칼을 뽑아들고 애나와 다고담의 앞을 막아섰다. 만싸는 빠르게 애나와 다고담을 먼저 보내고, 그 뒤를 자신이 막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계산을 마쳤다. 다만, 만싸는 애나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애나 역시 레이피어를 뽑아들고 만싸 옆에 섰다.

“좋아! 덤벼!”

“뭘 덤벼!? 빨리 뛰어! 세계수로 뛰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강한데!”

만싸는 마물을 모두 물리치는 것보다 애나를 먼저 보내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의외로 마물들은 만싸와 애나를 앞데 두고 한참을 노려보다, 슬금슬금 옆으로 돌아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뭐야?”

“헤헷! 봐! 내가 강하니까 도망치지!”

만싸는 아주 잠시동안, “자신이 애나보다 약해서 괜히 마물에게 습격받았는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만싸는 착각에서 빠르게 빠져나와 애나의 말에서 더 중요한 부분을 짚어내었다.

“…잠깐, 그러니까 이게 처음이 아냐?”

“응. 세 번 쯤? 처음엔 겁 먹었는데, 마물들은 내가 무서워서 덤비지 않아!”

만싸는 일단 다시 애나와 다고담을 데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만싸는 애나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무서워서” 라는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이다. 만싸는 히비스가 만들었던 요정의 철실을 생각해냈다. 그 철실에 요정의 힘을 담으면 마물에게서 공격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형태의 팬던트를 만들어 다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그러한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애나와 다고담이 세 번이나 - 방금 함께 만난 것까지 계산하면 네 번이다 - 마물을 만나고서도 무사한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만싸는 일단 돌아가서 할매와 히비스를 만나서 물어봐야 할 얘기라고 생각하고 생각을 갈무리했다. 무엇보다, 우선은 애나와 다고담이 무사한 것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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