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태연한 인생

in #novel9 years ago

2012, 은희경

 중년의 중견소설가인 요셉은 어딘가의 중간에 끼어 있는 전형적인 존재답게 염세적인 말들로 독설을 쏟아낸다. 세상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거기에 매몰되지 않은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문단의 상업주의와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 조롱하고 매일 만나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감정들도 매우 휘발적이다. 모든 이들의 속물적인 근성과 비합리적인 가치들에 대해 비평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 중 가장 탐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 요셉 자신이기도 하다. 이혼 후 독신으로 생활하고 딱히 성공적인 작품활동도 없어 풍요롭지 못한 재정상태인 그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 전부인을 비난하면서 돈 많은 유부녀 도경에 기대 술을 마시며 자신이 원하는 일상들을 영위한다.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이안을 혐오하기도 한다. 이안은 문학적인 재능도 없고 요셉이 싫어할 만한 모든 특징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갑자기 자신에게 친밀하게 접근하는 이안을 냉소하면서도 그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안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이르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요셉이 갈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전 연인이었던 류라는 존재이다. 류야말로 이 작품 속에서는 어느 정도 초월적인 캐릭터이다. 오래전 어느날 우연히 공중전화 부스에 있던 여인에게 한눈에 반한 남자와 그 여자의 결혼이라는 부모 이야기에서 시작된 류의 서사. 현실에 밀착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해소하며 살아갔던 류의 아버지와 요셉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그런 아버지를 겉으로 드러나게 미워하지 않고 인내인지 초탈인지 모를 비현실적인 태도로 모든 것을 받아넘겼던 류의 어머니 또한 류와 닮아 있다. 류가 갑자기 요셉을 떠난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욕구와 감정에 충실한 요셉을 단순히 류가 견뎌내지 못한 것인지, 좀 더 특별한 판단을 한 것인지 쉽게 읽어낼 수는 없다. 스스로 비평하는 다른 모든 속물적인 인간들과 달리 요셉이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요셉이 바라보기에 류가 현실 속의 인간들과 다른 존재라는 암시 정도를 읽어낼 순 있지만 그것이 전부인지는 확실치 않다.

 요셉과 류가 주인공이지만, 결국 그들은 대면하지 않는다. 서로의 서사를 사이에 두고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들만 이루어지지만 뚜렷한 메시지 없이 소설은 끝나 버린다. '태연한 인생'이란 제목이 작품 전체의 주제를 부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연'이란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에서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예사로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품에선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들이 많이 보인다. 류의 부모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그렇고, 류를 배신한 이전 연인의 행위들이 그렇고 요셉을 둘러싼 많은 일들이 그렇다. 요셉은 태연하지 않아야 할 상황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잰체하면서 자신의 속물적인 욕구들을 바닥까지 바라는 근성. 그러나 요셉은 태연하게 살아간다. 류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 그 태연하지 않을 모든 것을 떠오르게 하는 요셉을 류는 태연히 대했다. 그렇게 요셉을 떠났다.

 적당히 살아본 사람들은 인생에 특별한 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요셉이나 K처럼 좀더 멋드러지고 현학적으로 표현할지도 모른다. 심중에 감추어진 냉소와 허무를 포장하는 인용구를 동원해가며. 적당히 재능있고 적당히 살아본 요셉은 그런 태도를 대표한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지 않으며 쉽게 보이는 외부의 허물들을 근거삼아 어딘가 위악적인 행위들을 정당화한다. 요셉은 모순적인 인물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비난, 비평하면서 자신 스스로가 비판하는 추잡한 현실을 태연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자신을 떠난 류를 갈망하는 것은 자신의 '태연'을 부정하는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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