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홍 사랑/노자규

in #nojagyu6 years ago (edited)

거칠고 주름진
당신의 손등 위에 내가 놓여있어도
수명 다한 저 녹슨 손잡이처럼
새털구름 한 자락이라도 걸어둬야 했던
제 마음의 시곗바늘은
늘 당신을 향해있었습니다

“여보
내일 자전거 가르쳐 줄게”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당신은 곁에 없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오는 당신 손에는
연탄 찌개 두 개가 들려져 있었지요
밤사이 진눈깨비에 언 땅을 밟고 갈 제 걱정에
연탄재를 마을 큰 길가까지 뿌려 놓고 온 당신

그렇게
자전거 바퀴에 당신의 사랑을 감고서
좁다란 골목길을 지나
겨울이면 붕어빵을
여름이면 김이나는 옥수수를
회색 바구니에 담아 와서는
마중 나온 나에게
구릿빛 얼굴로 먼저 손 내밀어주며
앞바퀴는 당신이고 뒷바퀴는 나라며
둘이지만 한 몸인 저 자전거처럼
늘 함께하자던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
기억하고 있나요
길가에 엎드려
동냥을 하고 있는 걸인의 바구니에
날려가는 돈을 주워 와서는
튕겨져 나온
잔돈까지 그 바구니에 넣고 있었죠

왜 굳이 그렇게 까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 당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했어”라는
말 한마디에
그냥 본적 없듯 이 길을 오고 가며 외면했던
감정들 앞에
나의 기준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당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제 마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흔들리는 당신 마음을 체포하겠습니다”라는 바람에
버스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난 뒤
버스 바닥에
오랜 시간
사람들 발밑에서 까맣게 변해 버려진
1원짜리 동전을 주워 닦으며
행복해하는 당신을 보고선

“1원을 뭐하려고 주워 “라고 묻는 나에게

“그럼 당신은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한 1억쯤...”

“1억이면 0이 몇 개지”

“ 8개쯤”

“난 1원만 있어도 행복해”

“왜....”

“0이 8개 있으면 뭘 해 1이 없으면 빵원인데... “

해맑게 웃어 보이며
바람이 꽃을 흔들리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바람을 잡고 흔들거리고 있었다는 걸
늘 행동으로 가르쳐준 당신을 보며
가로와 세로의 어울림처럼
행복을 배우며 전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 제 맘속에
당신이 꼭꼭 숨겨준 사랑을
하나하나 찾아서 아들에게 되돌려 주려하지만
당신이 켜놓은 사랑의 등대가
배려와 사랑의 눈을 가지게 해줘서일까요
깊은 속까지 닮은
아들에게 전 늘 반성문을 쓰곤 한답니다

당신을 보낸 그해
운동회 날 고개를 숙인 채 응원석으로 찾아온
아들과
멀리서 아빠랑 발 묶어 뛰는 친구들을
보고서야 이유를 알게 된 저의 눈물을
닦아주던 속 깊은 아들을 보면서
전 갇혀 울고 있는 바람이 되어야만 했었죠.....

또 다른 날은
아침이 창문을 열고 들어온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뒤풀이로
아이들 벼룩시장이 열렸었죠
아들은 작은 인형을 덥석 들더니
제 가슴에 안겨 주는 거예요
그 인형 가슴에
“아빠”라고 수놓아진 글자를 보며
전 어둠을 지우지 못한 채 걸어 나온
새벽이 되어야만 했답니다

당신을 보낸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오기 전에
추억 하나를 가슴에 놓아두고 싶은 걸까요
잊혀 가는
당신과 나의 기억들을 다시 담기 위해
난 그렇게
표백된 시간들을 붙잡으려 하는 건 아닌지
늘 지난날에 잠기곤 한답니다

태양이
숫댕이가 되는 그날까지 사랑하자며
말하던 당신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을 땐
당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합니다
다시 들을 순 없었지만
제 핸드폰의 신호음 따라 울려 퍼지는
“남편”이라는 그 글자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었기에....

"홀로 서지 못한 채
담벼락에 기대어선 저 자전거처럼
고장 난 사랑일지라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

당신과 난
체인이 끊어진 저 낡은 자전거와 같이
고백도 하기 전 작별한 사랑이 되고 말았지만
눈물이 별이 되었어일까요
잘 달리던 그때를 원망하지 않고
말없이 서있는 자전거를 보면서
저도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답니다
한때는 저 자전거의
닳고 닳은 바퀴에
당신의 세월이 감겨 다녔기에
희망의 흔적들을 더듬어보며
가을을 기다리는 저 둘 국화처럼
그 기쁨만으로 저도 시작해보려고요
저 고장 나고 낡아져 버린 자전거를
처음
당신이 사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서 말이죠.....

오늘 저는
사랑이 아프다고 삐거덕 거리며
바람이 다 빠지고 체인이 끊어져 버린
낡은 자전거를 끌고 40년도 더 된
백발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자전거 방에 도착했답니다
자전거를 더듬던 할아버지는
잊었던 기억 한토막을 뱉어놓았습니다

“이 자전거 참 오랜만에 왔네요...”

“전 여기 첨인데요..”

“남편분이신가 가끔 가지고 와서는
아내분도 같이 타는 거라며
빠진 바람도 넣고 점검도 해달라며
자주 가져온 자전거라 기억이 납니다
참. 이것 받아요
아내분 생일이라 자전거 데이트해야 한다며
급하게 가버렸지 뭐요
꽃과 편지는 여기 둔 채....
언제 가는 찾으러 오실 거라 생각하고
보관해 두었다오 “

그날의 기억의 물레에는
마지막이란
실타래만 풀어헤쳐져 올라왔나 봅니다

“퇴근할 때 당신 좋아하는 천일홍 꽃 사 갈게
강둑을 달리며 천일홍 꽃처럼
환하게 웃는 당신 모습도 보고 싶고 “

텅 빈 백색의 거리를
달릴 수 없는 저 낡은 자전거처럼
당신이 제게 주고 싶었던 편지와
당신에게 전해줄 제 편지는
끝내 주소 없는 사랑이 되어
성냥불에 타만만 글자들처럼
제가 보고 들을 수 없는
당신의 마지막 흔적 이 되었지만
먼 훗날
당신을 만날 때
햇볕 잘 드는 토담 밑에서
꾹꾹 눌러 담아 열어보지 못한
당신과 나의 편지를 읽어며
한잔의 술로 하늘을 노래하려 합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두 바퀴에 가득 채우고
당신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이 자전거가 있는 한
당신과 난

늘....
같이.....
둘이서.....
함께..... 하는 거기에......

우리의 사랑을
천일홍 사랑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꽃말:변치 않는 사랑)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09-04-2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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