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표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

in #naha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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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투잡을 한 지 2년하고도 2개월입니다. 많이 힘듭니다. 하루에 3~4시간 자며 버팁니다. 배고파서 물로 배를 채웁니다. 평생 사무직만 해봐서 온몸이 아픕니다. 진통제를 6개월째 먹고 있습니다. 살은 28키로 빠졌습니다. 72키로에서 54키로가 됐네요.

시작은 돈이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며 대출 연장을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신용점수가 하위 5%로 떨어지며 고금리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월급 만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 시작한 투잡이었고, 육체노동이 낯설었던 제가 이젠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시작은 돈이었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를 각성시키고 싶었습니다. 저를 궁지에 몰아넣고 싶었습니다. 저를 바닥 끝까지 끌어내려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는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궁지에 몰아 넣어야 제가 정신차릴 것 같았거든요.

공모전에 떨어진 지 12년입니다. 그동안 장편소설 3편을 썼지만 모두 예선탈락을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겠지요. 제 소설이 형편없다는 이유. 저질 쓰레기. 고친다고 될까? 연습한다고 될까? 더 공부한다고 될까? 저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방법은 단 하나.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그러나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의 상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투잡을 하며 살은 28키로가 빠졌습니다. 잠은 하루에 3~4시간을 잡니다.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물로 배울 채웁니다.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 생각에 죽을까 생각이 들 정도까지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투잡을 했습니다. 와~~ 정말 죽겠더군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정신이 안 차려졌습니다.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더러운 이 세상 확 불질러버리까… 이런 병신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한 달 전쯤, 허리 통증과 팔꿈치 통증, 무릎 통증이 심해져서 이틀을 앓아 누웠습니다. 꼼짝도 못하겠더군요.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심심해서 유튜브도 봤는데 우연히 어느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을 한참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직 정신을 못차렸구나.’

바꿨습니다. 자세를 완전하게 바꿨습니다. 나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았습니다.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아무리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아픈척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일이 아닌데도 내가 했습니다. 몸을 굴리고 굴려 손가락 마디까지 아픈데 진통제를 먹으며 웃었습니다.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인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힘든 일이 할당되면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의 이런 경험을 아내에게 말하니, 철학을 전공한 아내답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표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야.’

아~~ 나는 배려심 0인 사람이었구나. 힘들면 힘든 표정. 기쁘면 기쁜 표정. 슬픔면 슬픈 표정. 난 내가 내고 싶은 표정을 남 생각 안 하고 짓고 있었구나.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하자. 저 일은 힘든 일인데, 초보가 하면 더 힘드니, 그래도 해본 내가 하자. 내가 안 하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내가 하자.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힘들지만 고통스럽진 않았습니다. 웃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가왔고 말을 걸었습니다. 농담도 건내더군요. 저도 같이 농담을 하며 웃었습니다.

손가락은 마디마디에서 통증이 오고, 허리는 부러질 것 같고, 무릎은 걸을 때마다 주저앉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통제로 버티며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글이 써졌습니다. 저는 다시 소설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절필 3년만에 저도 모르게 다시 예전의 감성과 예전의 작법과 예전의 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소설을 씁니다.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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