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끝과 시작

in #movie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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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감도>의 한 편으로 요약 / 수록되었던 단편 영화, 그 전신인 영화 <끝과 시작>을 보았다. 대충의 시놉시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꽤나 파격적인 소재였던지라, 과연 영화로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앳된 얼굴의 황정민, 엄정화, 김효진, 그리고 김강우까지. 꽤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현한 영화 <끝과 시작>의 리뷰이다.

정하와 재인은 부부 관계이다. 나루와 재인은 불륜 관계이다. 어느날 나루와 재인이 밀회의 시간을 즐기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나루는 정하를 찾아온다. 자신을 욕하고 때려도 좋으니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나루. 그렇게 정하와 나루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함께 있고 싶다고 집으로 찾아온다면, 과연 어떤 감정이 들까?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인다는 것은, 또 어떤 감정일까? 이 장면에서 나는 정하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재인의 불륜이 사실은 예술적인 영감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정하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나루에 대한 정하의 감정이 단순 분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정하와 나루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이 또한 정하의 감정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요소가 아니었을까?

재인은 정하 옆에선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나루를 만나며 조금씩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가로서 이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소설가에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재인은 그래서, 그와 나루의 밀회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엔 재인이 나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인은 예술을 사랑했고 나루는 그저 뮤즈일 뿐이라고 되뇌이며, 왜 자신은 그 뮤즈가 될 수 없는가를 스스로 탓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루는 왜 재인 앞에 나타난 것이었을까? 그저 자신이 따르던 언니의 남편을 빼앗기 위한 배은망덕한 배신자였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루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 그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접근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루의 시선은 재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재인의 곁에 머물며 정하의 시선에 머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현재 그 사람의 마음이 향해 있는 존재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흔히 협박 또는 경고의 모습으로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나루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나루의 행동이 어린 아이들이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썽을 피우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엄마의 시선을 받고 싶은데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엇나가는 행동을 하여 결국은 엄마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가 좋아서 말썽을 피우는 어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루 역시 정하의 의식 속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재인을 이용하여 불륜이라는 말썽을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면 적어도 정하가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인식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분노일지라도. 자신을 향한 증오일지라도.

영화 <끝과 시작>은 메타포가 상당히 많이 사용된 영화였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타포는 싹이 나는 카드였는데, 그 카드와 함께 동봉된 하얀 쪽지에 '물을 주면 필요한 것이 자라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카드는 정하에게 배달되었는데, 그 카드에서 자라난 것이 바로 나루였다. 그렇게 나루가 정하의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필요한 것이 나루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나는 어쩌면 정하 역시 나루를 사랑했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고자 재인과 결혼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사람은 재인이 아닌 나루였다는 것을 싹이 나는 카드를 통해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파격적인 소재와 다양한 메타포로 상당히 자극적이었던 영화 <끝과 시작>. 나의 한줄 감상평은 다음과 같다.

역시 사랑이 제일 어렵고 복잡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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