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일기 #151

in #mexico4 days ago (edited)

2024.9.28(토)

현장에 복귀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생산에 차질이 생겨 여러가지 신경쓸 일들이 많다.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고 예민해져있는 상태라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나는 이런 예민한 시기에 마음챙김, 명상 같은 책들을 자주 읽는 편이다.
괜히 별일 아닌 걸로 날카로워지는 내 마음을 한 발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볼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장현갑 교수님이 쓰신 [마음챙김] 이라는 책을 읽는데, 마음챙김 먹기명상 이라는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건포도 먹기로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예를 들어주었는데 건포도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생각하며 오롯이 건포도에만 집중하는 명상법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한번 도전해보자 싶어 퇴근 후 구내식당에 들렀다.
사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아서 간단히 먹을걸 받아서 식당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image.png

눈으로 음식의 모양과 색을 살펴본다.

알록달록 무지개색의 시리얼과 초코시리얼에 우유를 부은 걸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멕시코 음식중에 좋아하는 건 나초... 토토포위에 따뜻한 콩죽과 치즈를 부어놓은 음식인데, 마음챙김 먹기명상이고 뭐고 간에 그냥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먹기명상을 계속했다.
후식으로 주는 빵. 설탕이 잔뜩 올라간 옥수수빵인데, 옥수수빵 특유의 고소함과 달콤한 설탕.
그리고 마지막으로 멕시코 우유... 뭉게구름처럼 진한 하얀 우유.

한손으로 우유를 담은 컵을 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우유컵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다음 우유의 냄새를 맡았다.
코 끝에서 우유의 고소함이 식당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밀어내며 코 안으로 진하게 밀려 들어왔다.
우유를 입 안에 한모금 머금었다.
처음에 우유가 입안으로 들어가 신선한 느낌을 주는가 싶더니 곧이어 입 안 전체에 우유의 고소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원함 때문인지 멕시코 우유의 진한 고소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우유를 삼켜서 온몸으로 이 맛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이 생생한 경험을 날려버리고 싶지 않아서 조금씩 목젖 뒤로 우유를 삼키며 음미했다.
목을 타고 위장을 통해 배 아래로 내려가는 시원한 우유의 느낌이 내장세포 하나하나에 느껴졌다.
고소함은 입안에서 여전히 남아있지만 목뒤로 넘긴 우유는 그 고소함을 잃어버렸다.
다시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 우유 두 어 모금을 더 마셨다.

만족스럽게 우유를 마시고 조용히 시리얼로 시선을 옮겼다.
숫가락에 손을 갖다자 금속 특유의 날카로운 차가움이 손끝에 전해졌다.
조심스럽게 시리얼이 든 그릇 속으로 숫가락을 깊숙히 집어넣고, 한 숫가락 가득 퍼올렸다.

image.png

내가 좋아하는 달콤달콤한 시리얼, 그리고 시원하고 고소한 우유가 가득 채워진 한 숫갈이 내 눈앞에 있다.
단숨에 삼키고 싶었지만 냄새를 맡아봤다.
시리얼을 달콤함과 고소한 우유 냄새가 콧구멍을 타고 들어와 내 침샘을 자극했다.
천천히 내 입안에 숫가락을 밀어넣었다.
시원하다. 달콤하다. 고소하다.... 그 느낌을 하나하나 느끼며 시리얼을 천천히 씹었다.
'바스슥...' '바스슥...' 아직 우유에 녹지않은 시리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내 윗어금니와 아래어금니 사이에서 바스러졌다.
우유와 바스러진 시리얼을 조금씩 목뒤로 넘겼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목구멍 위로 다시 올라와서 입안에 머물다가 코로 숨을 내뱉으니 코에도 그 향이 느껴졌다.
다시 한숫갈... 그리고 또 다시 한숫갈...
한참을 먹다보니 오랫동안 우유에 담긴 시리얼이 조금씩 눅눅해지고, 곧이어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드럽게 으스러진 시리얼과 우유를 다시 함께 삼켰다.
시리얼을 다 먹고 그릇에 남은 우유는 그릇째 들고 천천히 마셨다.

이렇게 15분을 먹었다.
시리얼을 이렇게 천천히 15분 동안 먹은 적은 처음이다.
남은 음식을 더 먹을까 하다가 억지로 먹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숫가락을 내렸놓았다.
시리얼을 눈으로, 코로, 귀로, 그리고 온 몸으로 섭취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mexico #kr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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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표현하는 글쓰는 솜씨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글을 읽는 동안 마치 제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이런 사소한 일들도 이렇게 표현해 보니 재미가 있네요.
응원, 그리고 방문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명상법 소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좋은 일 가득하세요~~^^

저도 책에서 읽고 시도해 봤는데 생각보다 꽤 좋았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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