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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emoir8 years ago

라데팡스 르네상스 호텔-파리 야경 투어-에펠탑
루브르 박물관-프렝탕 백화점-비토 파리지앵
오르셰 미술관-마고 카페-샤트르 성당-콩시에르쥬리-노틀담 성당
뤽상부르 공원- 개선문-프라하
환전소-구시가지-프라하성 뒷골목-까를교
프라하성-카프카박물관-카를교-항공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결혼 준비가 힘들어질수록 이 순간을 꿈꿨다. 눈을 뜨면 모든 세레모니가 끝나고 여행을 떠난다. 힘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 순간이 왔다.

그러나 그러기까지의 과정은 역시 고됐다. 영원한 결합이라는 극적인 상징을 위해 나와 아내는 우리 스스로를 혹사했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뜬 나와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았다. 특히 아내는 며칠 째 기침을 하며 목소리가 쉴 정도로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었고 나또한 아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기에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공항으로 향한 우리의 발길은 재빨랐다. 그깟 감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어야만 했다. 난생 처음 인천 공항, 그것도 제 2공항에 도착해 여행사 관계자를 만나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뒤 입국 수속을 받았다. 그 후 아내는 면세점에서 몹시도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이것저것을 샀다. 서로의 친지, 정확히 하자면 나의 친지 선물 관계로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금세 합의를 하고 계획했던 물건을 모두 샀다. 그러고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코노미 석은 역시 좁았다. 나처럼 등치가 큰 사람에겐 더 그랬다. 누울 수도 없고 몸을 펼 수도 없는 곳에서 약 열 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했지만, 결국 잘만 왔다. 긴 여행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첫째 와인, 둘째 영화 때문이었다. 나는 출발하고 빠른 시간 내에 레드 와인을 두 병 화이트 와인은 한 병 총 세 병을 마시고 취했다. 그렇게 취기가 오른 가운데 한국 영화를 보다 잠들다 하며 총 세편을 보고 기내식마저 남김없이 잘 먹으니 어느새 도착지가 가까워졌다. 처음엔 외화를 보려 했지만 모두 더빙이라 보지 않았다. 아내는 아쉽게도 감기 때문에 술은커녕 영화도 제대로 못 즐기고 거의 잠을 잤다. 기내식으로 양식과 한식이 나오면 보통 아내는 양식을 고르고 나는 한식을 골라 서로 조금씩 바꿔 먹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식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시차와 긴 비행시간에 따른 피로도 잠시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 여행에 도취 돼 폴짝폴짝 뛰었다. 프랑스라니! 프랑스는 내가 동경하던 대표적인 나라다. 그들 문화에 대한 동경심에 나는 평소 젖어 있었는데, 언젠가 가 봐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신혼여행으로 생각지는 않았다. 너무 멀고 거대해 보였기 때문이다. 비행기라면 제주도 갈 때만 몇 번 타봤던 내게 외국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신혼여행으로 동남아나 멀게는 하와이 정도까지 생각했다. 한데 결혼을 준비하던 아내가 갑작스레 유럽 얘기를 했고 우리는 그렇게 머나먼 여정을 하게 된 것이다.

공항에는 여행사 관계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해 광주에서 온 신혼 커플 등 총 두 커플이 여행사 직원의 차를 타고 라데팡스 르네상스 호텔로 향했다. 타고 가면서 직원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눈에 비치는 프랑스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때 나는 외국, 특히 선진국에 처음 가서 눈으로 하나를 확인했다. 언젠가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차 색깔이 지나치게 무채색 계열인 게 놀랍다고 했는데 프랑스도 뭐, 별다를 게 없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색깔 차를 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풀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라면 광주에서 온 커플과 우리 모두 외국 호텔은 처음이라 방에 입실하기까지 지나치게 허둥지둥댔다는 것이다. 특히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버튼을 누르는 법을 몰라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기도 했다. 그때 광주 쪽 사람이 ‘이러다 여기서 살겠네’ 했는데 곤혹스러운 가운데 몹시도 웃겨 긴장이 풀렸다.

밤에 파리 시내 야경 투어가 있었고 그 전까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환호성을 내지르고 옷을 갈아입은 뒤 생애 처음으로 외국의 거리를 즐겨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특히 아내는 감기가 더 심해져 완전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아내는 나더러 야경 투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연기는 일정상 불가능할 거라 했고 가능하면 취소를 해보겠으나 웬만하면 나가는 게 좋지 않냐고 설득했다.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말이다. 아내는 대답 없이 침대에 파묻혀 누워만 있었다. 그때 솔직히 우리 사이, 그리고 호텔 침실 위로 어떤 정적과 우울감이 흘렀다. 나는 자칫하다가는 신혼여행을 망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게 가져온 커피포트로 컵라면을 끓이고서는 아내를 유혹했다. 그냥 자더라도 먹고 자라고. 그래야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겠냐고. 다행히 아내는 일어나 라면을 먹었다.

유럽 가서 한국과 다른 불편한 점 두 가지를 꼽자면 물과 화장실이다. 어디서든 물을 먹고 싶을 때나 화장실을 가야한다면 돈을 내야 한다.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는 물을 먹기 위해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먹어야 했다. 생수는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 호텔과 다른 점은 샤워 부스가 아니면 화장실 바닥도 물에 젖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씻을 때마다 수건을 하나 펼쳐 화장실 바닥에 깔았다. 거기에 실내화도 따로 준비해오지 않아 몹시도 불편했다.

결국 우리는 조금 눈을 붙이고 제 시간에 일어나 야경 투어에 나설 수 있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반짝 거리는 파리 시내를 둘러보고 대관람차도 한번 본 뒤 에펠탑에 들어섰다. 에펠탑 모형을 들고 노상을 하는 흑인이 여럿 있었는데 우리를 보고서 어떻게 한국인인줄 알았는지 ‘싸요, 싸요’를 연발했다. 에펠탑에서는 외투를 벗고 가방도 모두 열고서 보안 검색을 받아야 했는데, 이후 프랑스 주요 관광지에서는 모두 그래야 했다. 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최근 테러가 많이 발생해 보안에 특별히 민감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에펠탑은, 그러니까 예뻤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저 예뻤다는 말밖에는. 꼭대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사진을 찍고 신혼여행 온 것을 실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술에 취한 미국인들이 시끄럽게 해서 짜증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프랑스 첫날이 갔다.

둘째 날 일어나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후에 체코에서도 그렇고 하여간 유럽 호텔에서의 조식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각종 햄과 빵, 치즈 등등. 난 솔직히 처음엔 좋았다. 나는 치즈와 햄을 좋아하니까. 근데 유럽 갔다 온 후, 이제 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치즈와 햄은 무척이나 현지화 된 음식이다. 유럽에서의 치즈는 삭히고 삭혀서 흡사 우리나라의 홍어 냄새가 나기까지 한다. 거기에 소시지 햄은 무척이나 짜다. 나는 조식이 거듭될수록 우유에 말은 콘푸로스트와 계란 요리, 내지는 감자에만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조식이 질리고 매일 밤 컵라면을 하나씩 까먹어야 했다. 이에 반해 원체 빵을 좋아하는 아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침마다 이 빵 저 빵을 먹으며 몹시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유럽에서 있는 동안 나는 감기가 심해졌고 아내는 점점 나아졌다. 건조한 기후에 약한 내 특성도 한 몫 한 것 같다. 우리가 호텔 내 난방기를 적절히 조절할지 몰라서 그런 건지 하여간 침실 공기가 무척이나 건조한 게 나는 내내 불만이었다. 하여간 이래저래 놀랍게도 나는 유럽에 걸맞지 않은 토종 한국인임을 시일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음식과 기후가 문제였다.

여하간 이제 본격적인 자유 여행이 시작됐다. 우리는 지도책과 구글어플에 의존해 지하철역을 찾아갔다. 그런데 5분 거리의 지하철역을 헤매며 거의 30분이 나 되어서 찾아 갔다. 아내는 그새 집을 잃어버린 아이 마냥 몹시도 초조해 했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대부분이 자유 일정인 앞으로의 우리 여행이 몹시도 걱정됐다.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우리는 다행히 빠르게 적응했고 학습에도 능했다. 영어를 통한 짧지만 핵심적인 의사소통과 지도 책 해석 능력이 늘어 다시는 그렇게 헤매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를 불문하고 지하철은 가장 편한 대중교통이다. 체코에서는 트램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다만 프랑스에서의 지하철은 좀 더럽고 냄새가 났다. 지하철 내부에 온갖 낙서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프랑스보다는 체코를 좋아하게 됐는데, 프랑스는 유명 관광지에 갈 게 아니라면 그다지 갈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물가가 비싸고, 둘째 거리가 더럽고 냄새가 난다. 최근 우리나라는 길가에서 흡연을 하는 행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거리낌 없이 사람들이 거리에서 흡연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게 치명적인데 사람들이 불친절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불친절함은 백인들보다 흑인들에서 연유한다. 내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인들에 비해 비교적 사회 경제적으로 하층에 가까웠던 흑인들이 우리 같은 동양인 관광객들을 냉대하는 일이 많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상가 직원에게 무엇을 물어 보려고 하면 일부러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할 정도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에 프랑스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쨌거나 지하철은 편했다. 그리고 드문드문 예술의 나라답게 색소폰 따위를 들고 지하철에 탑승해 즉흥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하여간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입장까지 긴 줄이 있어 언제 기다려야 하나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놀랍도록 똑똑한 내 아내는 미리 뮤제엄 패스라는 주요 관광지 입장권을 끊어 왔고 우리는 편하게 이곳저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특별 탑승객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긴 줄을 뛰어 넘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 미리 알아본 대로 오디오 가이드를 교부받고 한국어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구경했다.

루브르 박물관이라니! 살면서 조금씩 보고 들었던 온갖 그림과 조각상 유물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제대로 관광하려면 며칠이나 걸린다는 박물관을 우리는 단 몇 시간 만에 빠르게 돌아야 했고 결국 주요 작품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면 모나리자인데, 모나리자는 워낙 인기가 많아 그림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인파가 형성될 정도였다.

박물관에서 나와 인근 푸드 코트 같은 곳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우리는 주스와 감자튀김, 치즈 스틱과 닭고기와 새우가 곁들인 인도식 카레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그러고서 아내가 그토록 꿈꾸던 신혼여행의 하이라이트, 쇼핑을 하러 프렝땅 백화점으로 갔다. 원래 다른 백화점에 가려고 했으나 여행사 직원이 한국 관광객에 특화되어 있는 프렝땅을 추천했기에 그리로 갔고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한국어를 하는 영업 직원들은 물론 면세 처리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나는 아내를 따라 다니며 이곳저곳 명품 브랜드 가게를 들렀다. 결국 가격과 디자인 모두를 고려해 아내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 구매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자유 여행의 좋은 점은 거리 어디든 거리낌 없이 거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주변의 건물들 자연 풍경 등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묘미를 느끼고 함께한 사람과 즐거우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그랬다. 비록 비가 중간 오고, 여행 말미 체코에서는 눈이 오기까지 했지만 프랑스 둘째 날 이미 우리는 먼 나라 땅을 밟고 있는 것만으로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특히 아내가 그랬는데 아내는 밤에 내가 잠들고서도 내일 여행 일정을 짰고 아침에는 콜록대면서도 밖에 빨리 나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세느 강변을 걸으며 우리는 비토 파리지앵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것은 파리 유람선인데 탑승 표가 우리가 구매한 여행 패키지에 들어 있었다. 탑승 후 배는 천천히 강변을 따라 운항했고 그 순간은 그야말로 이번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다. 해질 녘 하늘 저편에서 어렴풋한 빛이 비치며 파리의 야경도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의 빛이 한데 어우러져 세느 강의 물살과 바람에 흥취를 한껏 더했다. 선상에서 또 다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마구 찍으며 우리는 항해를 다했다. 하차 후엔 가판대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먹고서는 숙소로 돌아와 다시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신라면 블랙이었는데 왜 그 라면을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좋았다. 아내가 알아 온, 비닐 팩에 뜨거운 물을 넣고 햇반을 익히는 방식으로 밥까지 해 봤는데 잘되지 않았다.

셋째 날 우리는 빠르게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중세 시대의 그림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근현대 미술 작이 있었다. 모네, 고흐, 르누아르 등 인상파를 중심으로 내게 더 친숙한 그림이 있어서 좋았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직접 볼 줄이야.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미술관 내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솔직히 난 별로였다. 가격에 비해 양도 적었고 맛도 그렇게 있는 줄 모르겠다. 음식이 하나 같이 오밀조밀하니 예쁜 것은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종업원을 부르는 게 어려워 애먹었는데 한국과 달리 손님이 손을 들고 종업원을 부르면 결례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눈치껏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고 나는 그게 또 답답했다.

미술관에서 나와 제대로 된 카페를 찾아 나섰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인들 예컨대 카뮈, 지드 등이 들락날락한 카페 말이다. 레 되 마고 카페였는데 거기서 나는 블랙커피를 마시고 아내는 코코아를 마셨는데 코코아가 무척이나 달아서 깜짝 놀랐다. 관광 명소가 되어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를 보며 이제는 문인과 같은 예술가들이 상념에 젖고 영감을 얻기는 힘들겠다 생각했다.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고딕 양식의 뾰족한 지붕을 자랑하는 그 성당은 내부의 광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말을 잃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성스러웠다. 우리는 빙그르르 제자리를 돌며 동영상 촬영을 했다. 거기서 나와 마리 앙뚜아네뜨가 갇혀 있었다는 콩시에르쥬리를 들렀는데 지금은 그 시대 감옥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고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어갔다. 드넓은 내부의 각종 성상을 구경하고서는 꼭대기까지 계단을 통해 올라갔는데 정말이지 힘들었다. 언젠가 이곳에 오게 되면 다시는 올라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대성당 앞에서 나는 20유로를 주웠는데 근처 할머니가 돈을 줍는 나를 보고 웃는 게 기억난다. 밟으면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는 지점을 밟고 우리는 인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에스메랄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식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뒤에 위치한 레스토랑 에스메랄다는 합리적인 가격, 편안한 분위기, 맛있는 음식, 친절한 서비스로 그야말로 완벽함을 자랑한다. 거기서 달팽이요리인 에스까르고를 먹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아내는 오믈렛을 먹었는데 모두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특히 꼭 먹어 보고 싶었던 달팽이 요리는 우리의 골뱅이와 비슷한 식감으로 소스만 조금 우리 식으로 바꾸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넷째 날,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기를 뒤엎는 황사, 미세먼지 따위는 전혀 없는 쾌청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푹 쉴 수 있었다. 의자를 두 개 놓고 다리를 쭉 편 채 순간을 즐겼다. 그 후 이동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베수비오에서 나는 미니 피자를 먹고 아내는 누텔라를 주문했는데 아내가 명백히 음식을 잘못 주문해 보였다. 너무도 달고 느끼했는데 아내가 상심할까 나는 말을 아꼈다. 다 먹고서 개선문에 올라 마지막으로 파리 시내를 둘러 본 뒤 공항에 가 비행기를 탑승했다. 두 번째 목적지인 프라하로 가기 위해서다.

한데 여기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액체를 휴대하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값싸게 산 화장품 일부를 결국 버려야만 했다. 따로 추가 세금을 내면 가져갈 수 있었지만 세금이 화장품보다 훨씬 비싸 포기해야만 했다. 해당 공항 여성 직원이 우리에게 이 같은 규정을 설명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도 모르냐고 멸시하는 투로 말하는 게 불쾌했다. 그런 너는 한국어는 아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결국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내 탓일 테다.

이번 신혼여행에서 우리는 총 세 나라의 항공기를 탔는데 먼저 프랑스의 에어프랑스, 그리고 체코의 체코에어라인, 네덜란드의 KLM이다. 가장 좋았던 건 에어프랑스다. 기내식이나 서비스 면에서 KLM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영화가 좀 더 다양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체코에어라인은... 저가 항공사라 그런지 기내식마저 돈을 받고 파는 걸 보고 몹시 놀랐다. 스튜어디스들이 민망할 것 같았다.

프라하는 좋았다. 안내 직원도 파리보다 훨씬 좋았고, 모든 면에서 나는 파리보다 좋았다. 지금 사람들에게 유럽 여행에 관해 얘기하면 파리는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프라하는 또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 물가가 싸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친절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우리는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을 받았고 진심어린 친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 먼저 환전소로 향했다. 체코는 유로화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중년의 체코인이 우리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는데 우린 몹시도 놀랐다. 그 분은 울산에서 약 5년간 일했고 최근 한국 정치 상황 등등을 줄줄이 말하며 우리나라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나도 보답하기 위해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체코, 즉 유명 축구선수들 네드베드-로시츠키 등을 언급하자 그 분은 안정환 등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우리는 기분 좋게 프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원래 오전부터 가이드와 함께였는데 우리는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지 오전은 투어에서 이탈해 자유 여행을 즐겼다.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성당, 구시청사, 화약탑을 관광했다. 아쉽게도 구시청사는 공사 중이라 유명한 천문 시계는 볼 수 없었다. 전망대만 올라가 프라하 시내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중간 충동적으로 성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온갖 성과 관련된 기구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과거 유럽 남자 청소년들의 성 충동을 죄악시 여겨 발기가 되면 가시에 찔리게끔 하는 기구가 충격적이었다.

점심에는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저렴한 가격이었다. 한데 여기서도 아내는 메뉴를 잘못 주문한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을 검색해 보더니 이름이 생소한 어떤 파스타를 시켰는데, 먹어보니 고무 맛이 난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누텔라와 함께 이 파스타 얘기를 하면 조금 예민해진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프라하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식품을 파는 K샵에 들렀는데 현지인이었던 점원이 우리를 보며 수줍게 한국말을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컵라면을 샀다. 거의 매일 밤마다 느끼함에 속을 달래기 위해 라면을 먹었더니 금세 컵라면이 떨어진 것이다.

오후에는 가이드 팀과 합류했다. 가이드가 투어 중간중간 분위기 좋은 음악을 틀어 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프라하에서는 지상의 레일을 달리는 트램을 애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교통수단이라 특색 있었는데, 어딘지 이색적인 느낌이 있어선지 아내가 특히 좋아했다. 트램을 타고 스트라호프 수도원에 들어섰다. 이곳은 대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우리는 도서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예배당에 잠시 들른 뒤 뜰을 따라 프라하 성 뒷골목을 따라 걸었다.

아름다웠다. 파리에서는 에펠탑을 중심으로 세느 강변의 찬란한 야경이 있다면 이곳 프라하에서는 프라하 성을 정점으로 까를교까지 이어지는 운치 있는 야경이 있었다.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쉼 없이 사진을 찍었다. 중간 스타벅스도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는데, 파리에서도 그렇고 커피 물가가 한국에 비해 훨씬 쌌다. 우리나라 스타벅스가 가장 비싸다는 게 나는 지금도 놀랍다.

체코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석상이 조각된 까를교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 같은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아랍인 등 온갖 인종들이 있어 세계의 명소임이 특히 실감났다. 다만 다소 어둡게 특기할만한 점이라면 거지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몸을 바닥에 바짝 엎드려 동전을 구걸하는 거지가 까를교 가장자리를 따라 쭉 있었다. 더군다나 어떤 청년 거지에게 행인이 침을 뱉기까지 해 나와 아내는 몹시도 놀랐다. 야간에는 마리오네트 국립 박물관에 입장해 돈 조반니를 감상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흥미로워 볼만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언어의 장벽에 갇혀 많이 졸았다.

밤에는 숙소 쪽으로 돌아와 가이드가 추천해 준 펍에서 필스너와 꼴레뇨를 주문했다. 실상 내가 체코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꼴레뇨는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한데 고기를 따로 자르지 않고 양념도 않고 바비큐마냥 통째로 구운 것이다. 처음에는 맛있었는데 먹다 보니 점점 느끼해져 혀를 내두르게 됐다. 더군다나 필스너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목감기가 도져 기침을 심하게 해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도망치듯 펍에서 나와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아시안 누들집을 찾았다. 거기서 국물이 나오는 줄 알고 영어 명 우동을 주문했는데 볶음 우동이 잔뜩 나와 우리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배가 불러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르바이트 생인지 주인 아들인지 한 남자 청소년이 자꾸 우리 테이블을 기웃거리며 웃으면서 연신 맛있냐고 친절하게 물어 봐 우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아시안이었던 우리의 평가가 자기로서는 상당히 궁금했나 보다. 끝내 우리는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자기 전, 나는 결국 낮에 사 뒀던 컵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프라하 성에 들어섰다. 프라하 성은 내부 관광 코스 따라 입장표가 달랐는데, 내가 가보고 싶었던 성 비투스 보물관은 입장료가 너무 비싸 아쉬움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황금 소로, 무기 박물관 등을 구경한 뒤 마지막 달리보르가탑 지하 감옥을 관람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화가 나 볼 수 없었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다가 카메라가 벽에 긁혀 상처가 났던 것이다.

성에서 나와 카프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내 영어를 힘겹게 읽어 가며 생전 그의 자취를 따를 수 있었다. 특히 박물관 기념품 점에서 카프카의 <성>을 연상케 하는 검은 머그컵을 샀는데 이는 내게 있어 최고의 소비였다. 지금도 무척이나 잘 쓰고 있는 이 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아진다. 박물관에서 나와 눈이 내리는 까를교를 한 번 더 밟은 뒤 아내를 따라 마뉴팍트라라는 화장품 점에 들러 화장품을 잔뜩 샀다. 그리고 뜨레들로라는 빵을 사 먹었는데, 가게서 일하던 아저씨가 우리더러 북한에서 왔냐고 농담을 던져 우리를 당황케 했다. 나는 거기서 조각 피자를 먹었는데 아내를 따라 뜨레들로를 먹을 걸 그랬다. 먹어 보니 무척 맛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뒤로 하고 네덜란드를 경유하는 비행기 편에 올랐다. 한데 체코서 네덜란드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 돼 하마터면 우리 짐을 모두 분실 처리할 뻔 했다. 정신없이 한국 편 비행기에 탄 뒤 우리는 슬리퍼를 신고 복장을 최대한 간편히 했다. 장거리 비행기도 그새 두 번째라고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잠을 푹 자고 눈을 뜨다 말다 하는 가운데, 인천 상공에 왔을 때는 아쉬움과 반가움이 번갈아 들었다.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커플을 공항에서 또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경황이 없어 바로 작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화번호라도 물어 봐 소주라도 한 잔 할 거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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