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현존재(20211010)

in #life3 years ago

31절 '이해'와 관련된 본문에서 '현존재' 관련 글 중 일부......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처해 있는 현존재로서 각기 이미 특정한 가능성 안에 휘말려들어가 있으며, 그가 그것으로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 존재가능으로서 그는 그러한 특정한 가능성들을 지나쳐가게 했으며, 끊임없이 그의 존재의 가능성들로 가며, 그것들을 장악하거나 놓쳐버리거나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존재가 그 자신에게 떠몉겨진 가능존재이며 철두철미 내던져진 가능성임을 말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에 대해서 자유인 그런 가능성이다. 가능존재는 그 자신에게 여러 상이한 가능한 방식과 정도에 있어 투명하다.

(...)

현존재는 이렇게 또는 저렇게 존재하는 것을 그때마다 각기 이해했거나 또는 이해하지 못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이해로서 현존재는 그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다시 말해서 그의 존재가능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 이러한 "앎"은 내재적인 자기지각에서 비로소 자라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본질적으로 이해인 바로 그 '거기에'의 존재에 속한다. 그리고 오직 현존재가 이해하면서 그의 거기에'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잘못 가기도 하고 잘못 알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가 처해 있는 이해인한 그리고 이 이해가 실존론적으로 내던져져 있음에 내맡겨져 있는 것인 한, 현존재는 그때마다 이미 잘못 갔고 잘못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존재가능에서, 자신을 그의 가능성 안에서비로소 다시 발견해야 할 가능성에 떠맡겨져있는 것이다.

(...)

현존재는 내던져진 현존재로서 기획투사의 존재양식으로 내던져져 있다. 기획투사는, 그것에 맞추어 현존재가 그의 존재를 짜맞추어 넣는 그런 고안해낸 계획과 관계를 맺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현존재로서 그는 그때마다 이미 기획투사했으며 그가 존재하는 한 기획투사하면서 존재한다. 기획투사는 현사실적인 존재가능의 여지를 지칭하는 실존론적 존재구성틀이다.
현존재는 그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이미, 또는 언제나 여전히 자신을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하고 있다.

(...)

현존재는 결코 그가 현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 그 이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현사실성에는 존재가능이 본질적으로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존재는 가능존재로서 또한 결코 그 이하일[적게 존재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현존재는 실존론적으로, 그가 그의존재 가능에서 아직 아닌 그것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오직 '거기에'의 존재가 이해와 그것의 기획투사 성격에 의해서 자신의구성을 얻기 때문에, 현존재가 그가 되거나 또는 되지 못하는 그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존재는 이해하면서 그 자신에게 "네가 무엇인 바로 그것이 되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인가? 네가 너에게서 떼어내 던지는 그 사람이고 네가 될 그 사람이다.

(...)

현존재는 자신을 우선 대개 그의 세계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ㅇ우 이해는 자신을 일차적으로'그때문에' 안으로 던지는 것인데, 다시말해서 현존재는 그 자신으로서 실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체나 개인으로서 또는 인격으로서가 아니다.

(...)

현존재는 현사실적 현존재로서 그의 존재가능을 각기 그때마디 이미 이해의 한 가능성 안으로 옮겨놓아왔다.

(...)

현존재는 [앞에서] 특징지은 그의 존재의 근본방식에 따르면 똑같이 근원적으로 배려의 둘러봄, 심려의 뒤돌봄으로서, 그것 때문에 현존재가 그때마다 그가 그렇게 존재하듯이 존재하는 바로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시야로서 '거기에'의 열어밝혀져 있음과 더불어 실존론적으로 존재하는 시야인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리고 전체에서 실존에 관계되는 시야를 우리는 투명성이라고 이름한다. 우리는 그 용어를 잘 이해된 "자기인식"을 지칭하기 위해서 선택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라는 점을 지각하며 냄새 맡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서 세계-내-존재의 전체 열어밝혀져 있음을 그 세계-내-존재의 본질적인 구성틀의 계기를 두루 관통해서 장악하는 것이다. 실존하면서 존재하는 현존재는, 그 자신이 똑같이 근원적으로 그의 실존의 구성게기들로서의 세계 곁에 있음, 타인과 더불어 있음에서 투명하게 된 한에서만 "자신을" 본다. 반대로 현존재의 불투명성은 일차적으로 유일하게 "자아중심적인" 자기 착각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똑같이 세계에 대한 무지에도 뿌리를 박고 있다.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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