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64)
어제도 기갑연대장 김동수 대령은 수색 공격을 계속하여 도마리(都麻里)(DS858688)에 제1대대가 진출하여 491고지(DS839697)와 841고지(DS831702)를 점령함으로써 구산리(DS855735) 일대의 적을 제압하고 사단 지경 좌익을 담당한 제2대대는 횡계리(DS745690)에 진출하여 강릉의 적과 평창 방면의 적 주력과의 연락을 차단 중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2월 5일 적은 평창 방면의 적 주력과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연락의 임무를 띤 일부 병력이 강릉으로부터 대관령을 넘었으나 횡계리 일대에서 수색 활동 중인 상기 아 기갑연대 제2대대에 저지 당하여 청연암(DS754744) 부락에 잠복하였고, 구산리(DS854736) 방면의 적은 355고지(DS857707) 능선과 오봉산(DS833724)에 각각 1개 대대를 배치하고, 강릉시의 외곽선과 대관령을 유지 확보하려고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일 길원팔 유격부대를 섬멸한 기갑연대 제1대대장 박경호 소령은 이 적과 대치 중에 공격 계획을 수립하고 날이 밝자 오봉산의 적을 맹공하여 이를 점령하는 동시, 오봉리(DS844729) 방면으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고 연대 예비인 제3대대도 본 전투에 투입되어 제1대대 동측으로부터 공격하여 355고지(DS857707) 일대의 적을 궤주시킴과 동시, 칠봉산(DS869734)을 점령하고 오봉리에 진출한 제1대대와 더불어 구산리(DS854737)를 협동 공격 중 16:00 드디어 적은 퇴각을 개시할 기세가 보이므로 양 대대는 최후돌격을 감행, 구산리를 완전 점령하였다.
이로써 이날(2월 6일) 제26연대와 기갑연대는 강릉시가의 외곽 진지를 모두 점령한 결과가 되었고, 일방 횡계리의 기갑연대 제2대대는 대관령을 넘어 연대 주력과 연결을 유지하며 부근 일대의 색적(索敵)에 노력하였다.
한편,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은 2월 3일 사단 예비 제1연대를 이미 송계리를 떠나 북진 색적 중의 기갑연대에 후속 진격하게 하기 위하여 제1연대장 한신 대령으로 하여금 그의 집결지인 주곡동(ES095473)으로부터 신흥리(ES018518)로 이동 전진토록 명령을 발하여 다음날 15:00 연대(제3대대원 결)는 신흥리에, 제3대대는 직원리(稷院里)에 각각 전진 집결하였다. 동 연대는 다음날도 계속 전진하여 송계리(DS493)로 이동 집결하고, 대기 중이었던 바 기갑연대의 전기절박(戰機切迫)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로 북진을 개시하였다.
2월 6일 제1연대 한신 대령은 지휘소를 목계리(DS877644)로 북상 진주하고 제1대대 및 제2대대를 구전리(DS888731)로 돌진시켜 103고지(DS888747) 및 86고지(DS887775)의 적 종심진지를 공격 중에 있었다.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은 이와 같이 예하 각 대를 운용하여 2월 6일 현재 사단 주력은 강릉 시가에 육박하였다.
다음날 06:00 일제히 공격을 개시한 수도사단은 제26연대의 제1대대가 담산리에서 행동을 일으켜 심복리(尋福里)(DS903769)의 적을 소탕하고 남대천을 도하 강릉 시내로 돌입하여 시가 서북방 고지에 배치하는 동시에 정리와 경계에 임하였다. 동 제2대대는 모산(DS919757), 문암리(DS922768) 일대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소탕하고 10:00 남대천을 도하, 강릉시가에 돌입, 계속하여 초당리(DS926815)의 적 여단사령부를 공격 점령하고 부근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초당리로부터 서방 주접근로에 이르는 고지에 배치하여 정리와 경계에 임하였다. 그리고 동 제3대대는 청랑리에서 최후 저항을 하는 적을 공격, 소탕한 후 남대천을 도하, 강릉 시가에 돌입, 계속하여 시가 북방 주접근로의 서면 고지를 점령하였고, 이를 제2대대에 인계한 후 연대 예비대로서 다시 남대천 강남에 집결하였다. 이와 같이 강릉 시가는 아 수도사단에 의하여 완전히 탈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