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상황
승승장구한 아군이 청진에 돌입할 무렵 괴뢰 패장 무정을 위시하여 패잔 낙오된 북괴군 40,000명이 인제, 양구 일대 산간유곡(山間幽谷)에 은둔(隱遁) 집결하여 양양을 습격하는 등 동해안 진출과 아 후방 차단을 노리고 있던 중 잔적을 소탕하여 계속 북진한 아군 후방 경비부대가 춘천, 양양 등지에 진출하게 되자 이 부대에 포착되어 비록 소수 경무장의 아 후방경비부대였지만, 충천한 사기에 제압당하여 부단한 토벌에 계속 출혈을 강요받아 근근 연명 해오던 이들 괴뢰군은 압록강을 건너 우리 강토에 침입한 중공군의 투입으로 작전상 동해안의 아 일선 병단이 해상으로 장거리 철수를 감행하게 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소생하게 되어 대체로 중부 이서를 남하하는 중공군과 보조를 같이 하기 위하여 재편도 바쁘게 마구 남진하여 강릉 일대에 무혈 진주한 소위 괴뢰 민족 보위성 직할 제4군단 제69여단이라는 약 5,000명이 이것이고, 또 별도로 과거 남한에서 살인 방화를 자행하던 길원팔을 괴수로 하는 약 7,00명의 유격부대였다.
기상천외한 아군의 장거리 철수로 의기양양한 적이어서 아마도 지난날 부산 교두보 시절을 연상했을 것이고 혹은 그 이상의 승리를 꿈꾸었을 것이지만, 아무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마구 진주하였으므로 장비는 보잘것 없어 조준기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81밀리 박격포 이상의 중화기는 없고 자동차는 물론 없을 뿐만 아니라 방한복도 보급하지 못하여 남루(襤褸)하기가 마치 옛날 왜정 하의 서울 수표교 밑의 거지 떼를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장기간 산간벽지의 은둔생활로부터의 해방감과 전세 역전에 기개를 올려 전의는 왕성한 것으로 보였다.
이와 같은 적의 사기도 시일이 경과됨에 따라 오산선에서의 중공군 후퇴와 아군이 여전히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적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점고하게 하였으며, 500㎜를 초과하는 적설은 동상자를 속출하게 하여 격앙(激昂)한 사기도 점차 저하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고로 적도 신중을 기하여 적 주력과의 연결을 기도 노력하는 일방, 저돌 남진을 삼가고 유격부대를 활용하는 이외는 주로 강릉 일대에서 공세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
즉 강릉시 동북방 4㎞ 초당리(DS926815)에 사령부를 둔 괴뢰 민족 보위성 직할 제4군단 제69여단은 예하 약 6개 대대의 병력으로 강릉 지구에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태세를 갖추는 한편, 점차 남하를 기도하여 위력 수색을 속행 중에 있었다.
적은 유산리(幼山里)(DS922760)에 1개 대대를 두어 모산(茅山)(DS919757) 일대에 배치, 진지를 구축하고 1개 대대를 청랑리(DS952772) 일대에 배치, 또 1개 대대를 금산리(DS870760)에 두어 그 남면 고지(DS870747), 138고지(DS888747) 간에 배치하였고, 다시 1개 대대가 장정산(獐頂山)(DS837745), 옥제산(玉帝山)(DS851742) 간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미 아 기갑연대에 강타를 당한 적 제2여단은 대관령을 넘어 평창 방면으로 이동하고 이 제69여단 역시 평창 방면의 적 주력과 연결을 유지하고자 일부 병력이 대관령 방면으로 유동함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