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이야기(22)

<세계전투사를 바꾼 6.25 춘천전투 3일(21)>

5. 오등공신은 춘천시민이다.
간단없이 7시간을 쉬지 않고 포탄을 쏠 수 있도록 차상에 포탄의 하역작업, 상자에서 부수는 작업, 쉴 새 없이 쏘는 포열의 발열로 불이 일어날 정도로 포신의 열에 의한 사격의 이상의 우려로 연신 물통에 물을 담아서 포신에 부어 주는 작업을 자진하여 협력, 끊임없는 사격으로 이어지게 도왔다. 그러므로 몰려오던 인민군에게 극적은 타격을 주었고 진흙탕 아수라장이 되었던 보조는 엄청난 협력이었다. 따라서 춘천시민은 5등 공신이다.

6. 육등공신은 제16포병 김성 대대장님 이시다.
보병연대를 대기하고 있는 A포대와 C포대에게 B포대의 사격제원을 주어서 증원사격은 탄알의 집중화력의 효과 및 파괴의 극대화로 마치 근대의 TOT사격과 같은 형상으로써 대성과를 이룬 것을 6등 공신이라 볼 수 있다.

7. 칠등공신은 아군의 후퇴, 조기 철수다.
삼팔선의 아군 전선부대부터 외출 외박할 시 중화기 무기(기관총, 박격포)등 보관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유는 (삼팔선 최전방의 부대장이 전대원과 중화기 무기를 몽땅 가지고 월북한 사건에 관하여) 6.25발발 약 2년 전 쯤에 아군 8연대가 삼팔선 최전선 부대로서 제1대대장 "표무원 소령(육사 2기)"의 전대대병력과 함께 중화기 무기를 몽땅 갖고 월북한 사고가 있었다.

아울러 제2대대장 "강태무 소령(육사2기)"도 제1대대장과 똑같은 방법으로 월북했던 큰 충격적 사건 때문에 삼팔선에 배치된 부대는 중화기 무기 보호를 위한 궁극적 조치었던 사례이다.

6.25전쟁 때도 무기고의 책임자도 없고 무기고는 잠겨 열 수 없자 교전할 무기는 없고 조기에 후퇴 하였다고 한다. 외박, 외출 등 출타한 장병들은 급히 소속부대로 복귀하라는 연신 긴급방송과 마이크 방송 등을 하였다. 급히 되돌아 왔지만 이미 북한군이 차지하였고 후방까지 진격하고 있어서 재빨리 후퇴 이동한 아군측 소속 본대를 찾기가 어려웠던 실정이었다.

후퇴를 하여도 무건운 중화기 탄약 등 일체를 고스란히 두고 소총과 몸만 빠지기도 힘들 정도였으며 부대는 병력부족으로 부대 재편성도 불가능했고 교통두절과 피난민의 대처도 심각했다. 아예 교전보다 아군의 병력의 조기철수는 어쩌면 전략적 기회로 유공이라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만일 교전했다면 적은 막강한 사전 준비에 의한 기습공격으로 임으로 오히려 아군에 막대한 희생 손실을 주었을 것이며 동원력 준비의 난점 등 작전상의 큰 패인이 될 뻔했다.

그래서 아군의 부득이한 후퇴 조기 철수이긴 하지만 결과가 큰 성과를 보았다고 볼 수 있어 인민군을 섬멸의 길로 유도한 셈이다. 아군의 희생은 단 한건도 없었으니 기찬유공이 아니겠느냐... 오히려 7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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