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아닌 변혁 - 생디칼리스트 예술가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부르주아 사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고자 한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노동계급의 처지 개선가, 자선사업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찮은 ‘개혁가’들이다.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사회의 현 상태를 원하되, 그것을 변혁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공산당 선언’ (1848년. 마르크스, 엥겔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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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창작자들은(예술가들은)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는 말처럼 오히려 창작(작업)을 하지 않으면서 이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한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을 즐기는 ‘선한’ 사람들이다. 예술가(창작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음원 스트리밍 매출의 퍼센트를 올리는 일 같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회 구조의 존립에 부역하는 일이다. ‘공산당 선언’에 언급된 ‘노동계급의 처지 개선가’ 같은, ‘사회주의적 부르주아’의 역할이다. 물론 이들의 노력 덕분에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좀 귀찮긴 하지만 ‘노동계급의 처지 개선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더 많은 예술가(창작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개선이 아닌 ‘변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을 개선(개혁)한다는 건 현 시스템을 인정한 채 일부만 '좋게' 바꾸는 것이다. 결국 개선(개혁)은 기존 체제를 ‘존립’시키는데 일조한다. 변혁은 이와 달리 기존 체제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예술가의 ‘행동’이라는 것은, 음원 매출의 퍼센트를 더 높이기 위해 법 조항을 개선하는 사회운동 같은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직접 평론을 하고, 기획을 하고, 공연장(갤러리)을 운영하고,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고, 기자 역할을 하고, 스스로 미디어(언론)가 되는 그런 ‘행동’을 말한다. 그런 예술가를 생디칼리스트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말씀하신 생디칼리스트 예술가의 정신이 곧 인디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정신을 실현할 좋은 플랫폼 중의 하나가 스팀이라고 생각해요. 잘만 디자인하면 훌륭한 그림이 나올 거 같은데 요즘은 일상에 휘둘려 파편적인 고민에만 머무르네요.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