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읽고 더 쓰는 시대

in #kr-writing8 years ago

이 글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나누기 위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썼던 글이다. 아무도 모르는 홈페이지 주소 속에 약 두 달 동안 고인물처럼 존재했다. 프로젝트의 방향이 조금 바뀌면서 몇 번이고 고쳐썼던 내 생각들이 아까워 이곳에 공유해본다. 이 글이 개인공간에 쓰일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가져본다.
(다시 읽어보니, 많은 글과 책을 읽으시는 스티미언들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사고 읽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단골로 등장하던 '독서'는 이제 정말 쉽지 않은 취미가 되었다. 한 달에 책 한권 읽는 것은 아주 대단한 것이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 안에는 즐거운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드라마 본방사수조차 장면장면을 끊어서 볼만큼 바쁘고 빠른 요즘인데,어쩌면 책 한권 읽는 것에 대한 에너지 소비를 예전과 비교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점점 짧은 글을 소비하고, 시각적 이미지에 민감해진다.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중심의 환경은 우리를 짧고 직관적이고 다차원적인 것에 더 익숙하게 만들어버렸다. 긴 글을 읽는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읽는 것을 멀리하면 쓰는 것도 멀리할 법 한데,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쓴다는 것의 의미는 전통적인 개념의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작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려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부여해준 자격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 어디까지가 프로페셔널한 영역의 글을 쓰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선 그어 말하기에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글 뿐이 아니다. 어떤 분야이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고, 예기치 못한 것에서 문화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증폭된다. 소비자가 스스로 생산자가 되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현상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되어 왔고, 새롭게 화두를 꺼낸다는 것이 오히려 너무 뻔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읽고 쓴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특성을 지닌 행위인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진이나 그림, 영상은 별다른 집중력없이도 쉽게 그 주제와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감각이나 감성의 차원으로 컨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읽는 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나 글자를 읽는 다는 것 이상의 그 주제와 의미, 맥락을 파악해낸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자발적인 집중력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을 유지하면서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데, 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긴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그 긴 시간을 기꺼이 견뎌내야하는 참을성이 요구되는데, 요즘 우리의 모든 일상은 참을성을 기르지 않아도 될만큼 편의적이고 직관적이며 즐거운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책 한권으로 깊은 고민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전에 그것을 눈 앞에서 보여주는 컨텐츠들이 손 안에 넘쳐난다. 분야와 취향, 지역과 국가를 넘나드는 풍요로운 세계는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입맛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고, 즉흥적으로 쉽게 만들어진 것들이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사면서 다차원적으로 감각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책을 읽어야하는 것일까.


책 한권 다 읽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게 되었지만, 그 어려운 책 한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고 해서 갑자기 어제와 다른 내가 되거나 뛰어나게 유식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 외운 기출문제집 한권은 내일 시험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지만, 소설책 한권은 내 마음에 여운을 남길지언정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로 새겨지는 나의 등수나 성과에 발판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책을 멀리하고, 역사책에 관심을 거두며, 인문학도 허세의 몫으로 남겨둔다.


책의 쓸모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긴 글의 호흡만큼이나 긴 길이의 시간속에서 그 쓸모가 드러나는게 아닌가 싶다. 성과물로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한권의 책이 두권이 되고 세권이 되면서 점차 그 사람 안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쌓이게 된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가랑비에 젖은 옷의 농도가 깊어지게 되면, 그 무언가는 은근하게 자신의 쓸모를 드러낸다. 스며들어있던 것들이 지식과 상상력, 분석력 혹은 어휘력 등으로 발휘되기 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만큼 매력적인 성과물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성과의 정도를 경제적인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수도 있다. 돈만 잘 벌면 되는 장사꾼이 될것인지, 무형의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가 될 것인지 선택은 모두 개인의 몫이다.


그렇다면, 읽는 양에 상관없이 늘어만 가는 '쓰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쓴다는 것을 어디까지 정의해야할까. '글을 쓴다'고 할 때의 글은 어디까지가 그 경계일까. 작가가 아닌 사람도 글을 쓸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전문적이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등단하지 않은 시인의 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데, 우리는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부정해야할까 아니면, 다른 시인으로 분류해야할까.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남을 것이다. 기존에 없던 개념과 분야가 생겨나고, 없던 직업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는데, 우리가 그에 대해 정의하고 기준을 마련하기도 전에 문화와 소비는 빠르게 확산된다.


갑자기 '쓰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쓰고 싶은 것일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자기 표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 하다. 글을 쓸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거나,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도구와 표현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이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나 고민, 경험들이 담겨져있다.


특별하고 무거운 주제보다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예전엔 사소하다고 치부했던 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오게 되면서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보통의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사소한 일상과 감정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일이다. 나를 표현하고자하는 욕구는 그 행위에 대해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과정을 즐길 수 있고, 때로는 그 자체로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쓰는 것은 읽는 것 보다 더 나다운 행위이며, 더 어렵지도 않다. 더 쉬울수도 있다.


사람들은 점차 짧은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고, 짧은 글을 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느꼈던 하나의 일화가 글이나 그림으로 그려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그것을 모으면 한권의 책이 될 수도 있다. 다이어리 속에 남겨져있을 법한 일기도 낙서도 여행에서 잠깐 적었던 글들도 가감없이 세상에 나와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렇게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두껍고 고리타분한 이야기의 책보다는 예쁜 카페에도 놓여있을 법한 책에 매료된다. 책은 책을 넘어 모든 지구인의 표현의 수단이 되었으며,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소장품이 되었다. 그것이 현재 시점에 책이 가진 역할과 기능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짧아진 글의 길이만큼 깊이도 깊어졌을까.


쉽게 쓰여진 글은 더 가벼운 걸까 아니면 더 솔직한 걸까. 많은 책들이 그 경계를 왔다갔다하면서 균형을 찾으려하고 있으며 그 과정속에 있음을 느낀다. 더 긴 글을 더 많이 읽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깊이 읽어보는 것에 무관심해질 수록 짧은 글은 가벼운 글로 치부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시는 소설보다 가벼운 존재가 아니지만, 우리가 가볍게 대하면 얼마든지 가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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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깊어보이지만 그렇기에 더 친숙한 존재들이 있죠.
쉽겨 쓰여져있는 것이 가벼운건지 솔직한건지,, 저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면서 책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ㅎㅎ
생각을 해보려 했던 부분이 아닙니다. ㅎㅎ

잘 부탁드려요! 팔로우와 보팅도 살포시 누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고민하시는 부분 생각나시면 스팀에 공유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공감되는 글입니다. 시간적, 마음적으로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읽을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고등학생들의 대입을 돕는 저는 학생들의 독서도 격려하고 고무시켜야 하는데, 학생들 또한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입니다. 실제로 페북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전체 시간을 합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히 되겠지만, 긴 내용을 차분히 연결하여 읽어가는 것 자체에 에너지를 쏟는 일을 어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최근 어떤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글이네요^^

선생님이시군요. 고민이 많으실것 같아요. 이미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긴 글과 내용이 이전세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것 같아요. 사회가 이렇게 바뀌어져가는 것을 학생들 탓만 할 수도 없는 부분인 것 같구요.
요즘 독립서적들은 20대에 맞춰서 기존 책의 반 혹은 3분의2분량 정도로 나오더라구요. 쉽게 읽히고 가독력도 있죠. 하지만 교육용으로 쓰이기엔 아직 깊이감이나 다양성이 부족하구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공감하고 갑니다 !!

감사해요!! :)

글을 쓰면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에 맞게 호흡이 짧아지도록 조절을 하게 되더라구요. 무언가를 읽는 입장에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떤 의미있는 거리를 얻어내려다보니 그만큼 읽는 대상의 선별에 주의하게 되구요. 흥미있게 읽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시대상이라는 느낌도 들고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

요즘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ㅠㅠ
예전엔 그래도 책으로 제게 스며들게 했는데
요즘은 왜 그리 어려운지...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저 역시도 그래요 ㅎㅎ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더라구요 세상이 너무 어지러운 건지 삶의 속도가 빠른 것인지..

좋은 글입니다.
효율적인 삶을 강요받는 사회이다 보니 짧은 글로 많은 정보나 재미를 추구하게 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텍스트보다 이미지, 이미지보다 비디오를 선호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깝기도 하고 아쉬운 감정이 많이 생기곤 했지만, 이제는 차라리 글을 쓰는 입장에서 시대흐름에 맞춰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인쇄본으로 출판되는 책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네트워크에 올라오는 컨텐츠들은 빠르게 소비되길 원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죠.

네 맞아요 가벼워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아쉬운 맘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대상이라면 어떻게 접근해야할지도 고민스러운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항상 저만의 방식대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가벼이 보여도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 차이니까요. 하하. 잘 읽고 갑니다.

울림이 있고 자신만의 방식이 있으시다면 짧아도 깊이있는 글일 수 있죠. 짧다고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

한달에 한 권 읽는거 대단한 일이죠. 저한테 책은 즐거운 놀이에 가까워요. 워낙 아이들 따라다니다 보면 시간이 없고 길게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은 못해요. 짬 날때마다 읽는 책이 모여 한 권이 되고 두 권이 되고. 책읽는게 의무가 되고 해야만 하는 일이면 전 못할거 같아요.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책을 읽었는데 말이 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다라구요ㅋ 그래서 리뷰를 쓰다가 내 이야기도 쓰고... 글이라는 건 모든 공감각을 제거한 채 오직 시각에만 의존해서 즐기는 것인데, 오히려 그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거 같아요. 그것이 소설이든 시든 철학서든 사회 경제서이든... 즐겁게 읽고 생각하고 뱉어낼 수 있다면 즐거운 독서행위가 아닐까요?

역시 @bookkeeper님은 다르시네요.ㅎㅎ 글에서도 그 흔적이 묻어납니다. 문득 책 읽는게 자연스러운 것 만큼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네요

물론 글짓기의 실력에 크게 좌우되긴 하겠지만 쉽게 쓰여진 글은 더 가볍다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저는..

모든 짧은 글들이 다 쉽게 쓰여지진 않았을 것이고.. 다들 아시다시피 글쓰기라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데다가 굉장한 정성과 노력을 요하는 지라ㅎㅎ 아무래도 쉽게 쓰여진 글은 가벼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많은 고민과 생각, 스킬과 지식을 축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글쓰기는 당연히 읽는 순간 갭이 느껴집니다. 저도 @minhoo 님의 생각에 동조하는 편이기는 한데, 요즘은 그런 기준을 흐트리는 많은 형태의 컨텐츠가 너무 많이 쏟아지네요

압도적인 input 이 있는 분들은 짧은 글로도 엄청난 output 을 만들어 내시더라고요. 짧은 글이라기 보다는 짧은 문장이라고 해야할까요. 전 짧은 글로 많은 것을 전달하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공감입니다. 그런 글들은 결코 가벼운 글이 아니죠. 짧아도 그냥 쓴게 아닌 울림이 있는 글들 저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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