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부러졌더니 나도 모르게 부반장이 되었다 (반말주의)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선생님께서는 더는 미룰 수 없으니 실내에서 체육 실기 시험을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40명도 넘는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들이 책상을 교실 뒤로 밀고 교실 앞부분에 옹기종기 모였다.
시험은 고무줄로 만든 장애물을 누가 빨리 넘는지, 그리고 누가 시간내에 들어오는지 측정하는 것이었다. 칠판쪽에서 출발해서 교실을 뱅뱅돌아 책상을 밀어놓은 교실 뒤까지 달리면 됐다.
친구들은 모두 양말을 벗고 뛰었다. 나는 양말을 벗지 않았다.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당시 교실 바닥은 싸구려 마루바닥이었다. 양초로 왁스로 문질러서 반들반들하게 했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것이다. 그러면서 나뭇가시가 손에 박혀서 고생한 적도 많았다.
나는 그 삐져나온 가시가 혹시라도 있을까봐 무서웠다. 양말을 신었다고 안 다치는 건 아니지만 되도안한 방어기제로 양말을 신고 달렸다. 그러다가 사단이 났다.
양말을 신고 마루로 된 교실 바닥을 달리는 건 자살행위였다. 나는 고무줄을 뛰어 전속력으로 뛰다가 넘어졌다. 완전히 슬라이딩을했다. 온 몸이 슬라이딩 했지만 가시는 몸에 하나도 박히지 않았다. 그만큼 교실 바닥은 깨끗하게 관리됐고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공포심에 양말을 신고 뛴 것이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오른팔이 부러졌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몰려들었다. 잠시 후, 학교에 응급 차량이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실려서 시내의 정형외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시골에 있는 학교였으므로 자동차를 이용해서 시내까지 나가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팔꿈치쪽이 두동강이 나 있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고통스러웠다. 이후 물리치료는 두달가까이 진행됐고, 치료를 받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치료차 학교에 자주 빠졌다. 머지 않아 학급 반장과 부반장을 뽑는 투표가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이에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는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두드러지거나 인기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를 부반장으로 추대(?)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종식이를 부반장 후보로 추천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를 정계(ㅋㅋ)로 밀어냈다.
그렇게 타의로 출마한 나는 손쉽게 학급 부반장에 당선됐다. 팔이 부러져서 모두의 관심과 동정을 산 결과 나는 학급 운영을 책임질 중요한 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렇다할 학급 운영 철학이나 공약도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추대되고 나서 보니 뭔가 없으면 안될 분위기였다. 공약을 급조해서 만들어서 출마했다.
나는 부반장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물론 어차피 반장, 부반장이 없어도 학급은 잘 돌아갔을거라 생각한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임원 선거가 어른들의 선거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떤 좋은 공약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누가 더 이름값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론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면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올라간다. 사실 유권자들 중 정책이나 사람, 그리고 세력을 제대로 스터디하고 투표를 하는 경우 보다는 인지도를 보고 투표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일반인들보다 압도적으로 영리한 정치인들은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소리들을 해대면서 어그로를 끈다. 무관심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계속 어그로를 끌어서 관심을 받는게 낫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일 잘해서 당선되면 참 좋겠지만, 묵묵히 일 잘하는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사고를 치던지해서 언론에 이름이 오르 내리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거물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나 역시 조용하고 이름 없는 아이였지만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팔이 부러지면서 인지도도 올리고 동정심을 사서 학급 임원에 당선이 되었다. 어처구니 없지만 어른들의 투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친구들이 나를 추대하다보니 나를 추대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꼬마도 그럴진데 어른들은 더 할 것이다.
게다가 부반장 당선 후,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집을 조르고 졸라서 햄버거와 콜라를 돌리면서 지지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다.
어른들 선거도 그와 다르지 않을것이다. 지지자-당선자간의 이해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더 복잡할것이다.
본 이미지는 본문과 관계 없음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IOFP
어머니들의 치마바람 대단했죠. 특히 전교 어린이회장.ㅋ
어른들의 선거에 빗대보면 어머님들 치맛바람 = 후원하는 기업의 자금력 정도 되겠네요. 지금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ㅜ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더라구요. 게다가 요새는 애들도 거의 한둘밖에 안낳아서요.. ㅎㅎ
사실 따지고 보면 지지자-당선자의 이해관계가 전부 다 아닐까싶기도 합니다. 헌데 말씀하신대로 그 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인지도로 대충 하거나 또는 그 관계를 명백히 밝히지 않아 헷갈리게 하는 후보자도 넘 많긴 합니다.
온갖 협잡이 총동원되는 곳이라서 그런 듯 합니다. 그리고 지지에 대한 대가로 돌려줘야 하는 감사 선물(?)들이 적지 않은데 이 과정에서 적폐가 누적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빚 안지는 건 불가능할텐데 이 매커니즘을 어떻게 해결하면 될지 늘 궁금합니다. 서방 선진국에서는 해결한 나라들도 있을텐데 스터디를 좀 해봐야겠네요.
의사결정엔 역시 이성보단 감정인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가 감성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이성보다 큰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
아이들의 사회도 어른의 그것을 닮았어요. 정말 그래서 가끔 무섭기도 해요. 부모자식간에도 가르치는게 아니라 보고 배우는거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사회는 더 말할 것이 없죠. 점점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씁쓸하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기대를 한껏 발산해봐야겠어요.
아이들이 잔인할때는 정말 잔인하게 굴더군요. 또래집단들 노는 것을 관찰하고 있으면요.. 어린도 아이도 점점 더 치밀하게 이익을 취하는 사회가 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진짜 비슷하긴하네요
당선되도 딱히 할일 없고...
정치인들 없어도 세상이 잘 굴러갈거에요 아마 ㅋㅋ 더 잘 굴러가려나 ㅋㅋ
서있는곳이 틀리면 보이는것도 틀리다..ㅎㅎㅎ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제복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네요. 공감합니다.
네 다 같은의미의 말이네요ㅎㅎ
공감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내용은 그냥 무난히 읽어내려가다가 '찢어지게 가난한' 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지금은 비교적 넉넉하신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그동안의 인내와 노력이 크셨을 듯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살아오다가 평범한 수준까진 올라왔으니 노력을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단어에서 힌트를 잘 찾으시네요^^
정말 그렇죠.
당장 다음주가 투표일인데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찾아보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고요.
누군가 악명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알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