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멎을 것 같은, 유영하듯 흔들리는 피아노 연주 < 드뷔시(Debussy), 렌토보다 느리게(La plus que lente) >
오늘 아침 읽었던 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음악에 대한 감정적 반응들이 전체 행동에 영향을 준다. 칠 곡들의 선택까지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빠르고 소리가 웅장한 곡들은 감정적으로 흥분되게 만들어 주고, 느리고 내성적인 분위기의 곡들은 그 반대의 효과를 낸다."
읽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오늘, 우연히 La plus que lente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문장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습니다.
[Claude Debussy - La plus que lente]
Arthur Rubinstein 연주
클래식엔 문외한이지만 이 곡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올해는 드뷔시 서거 100주년인데 그것과 관련된 관련 프로젝트를 잠깐 진행했었어요.
그때 많이 듣던 곡입니다.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면서 잊고 있다가 오늘 다시 듣게 된 것이죠.
곡의 맨 처음, 화성도 없이 덜컥 나오는 D(레), E(미)의 선율이 나올 때 숨이 턱 막혔어요.
그 두 음가에 엄청난 에너지와 연주자의 펄스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까 읽었던 책에는 이런 말이 이어졌어요.
"연주자의 최상의 성취는 연주 때의 고양된 감정을 잘 이용하여 의식적으로 Alle-gro를 더 빠르게도 또 Adagio를 더 느리게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가진 또 하나의 특성이 바로 이러한 속도와 고동(Pulse)의 융통성이다."
위에서 했던 말과 또 이 이야기를 D(레), E(미) 두 음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3/4의 왈츠입니다.
3박 안에서 템포 루바토처럼 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박자가 풀어졌다, 조여졌다 합니다.
또 드뷔시가 곡 안에서 의도적으로 박자를 흐트러트렸다가, 다시 또 제자리에 놨다가, 멜로디와 내성의 리듬이 다르다가, 또 같이 가다가 하는 다양한 리듬적 재미가 있어요.
박자를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휘두르는 모습입니다.
주제 선율을 바탕으로 키도 몇 번 바뀝니다.
곡의 중간에 Gb Key에서 A Key로 바뀌는 구간이 있어요.
그 앞에선 정확한 왈츠 박자로 곡이 진행되는데요.
키가 바뀔 때! A Key로 바뀌는 첫 음(D#)이 미묘하게 흔들립니다.
연주자가 의도한 것 같은데, 그 부분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드는 기분이 들어요.
그 뒤로 다시 몰아치는 연주.
아! 그 섬세한 한 음 때문에 진짜 죽을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딘지 모르실 것 같아서요. 2분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이 곡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건 초견으로 연주를 해봤기 때문이에요.
집에 있는 키보드로 연주를 했더니 피아노 톤이, 그것도 고음이 너무 안 좋아서 짜증이 나더라고요 ㅠㅠ
초견을 마치고, 다시 이 곡을 들으니 특히 고음이 더 아름답게 들립니다.
엔딩에서 높은음이 길게 나와요.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이고 듣게 되지만, 특히나 그 부분은 머리와 가슴을 찌르르하게 울리면서 숨을 죽이게 만듭니다.
너무 깊이 빠지진 말라고 얼른! 저음으로 끝내주는 드뷔시의 배려(?)도 재밌습니다.
라이브 음원이다 보니 마지막에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나오는데요.
저는 처음에 라이븐지 모르고 들었다가 제 마음과 똑같은 박수 소리가 나와 즐거웠답니다.
모두 얼마나 숨죽이고 Arthur Rubinstein의 연주를 들었을까요. 또 얼마나 그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을까요.
"음악에 대한 감정적 반응들이 전체 행동에 영향을 준다. 칠 곡들의 선택까지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빠르고 소리가 웅장한 곡들은 감정적으로 흥분되게 만들어 주고, 느리고 내성적인 분위기의 곡들은 그 반대의 효과를 낸다."
요즘 연습하는 곡 중엔 빠른 곡이 많았어요.
제가 워낙 느린 곡을 좋아하고, 느린 연주를 많이 하는 편이라 부족함을 채워보려 했던 것인데요.
이 음악을 듣다 보니 '아무렴 어떠냐, 렌토보다 더 느리게 하라고까지 하는데! 평생 느린 곡만 하련다~'라는 철없는 생각도 드네요.
글에 미처 담지 못한 세세한 호흡들, 아름다움들이 너무 많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이 곡을 귀 기울여, 숨죽여 들어보심은 어떨까요?
그러면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을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곡을 통해 잠시나마 여러분의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럽고, 차분한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 글을 이제사 보게 되었네요.
안그래도 피드의 홍수 덕에 팔로잉 하는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ㅜㅠ
나루님 해설대로 각잡고 화성의 변화들을 분석하면서 들어보려다가 긴장이 풀리고 나른해지더니 얼마가지 않고 바로 포기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을 듣겠습니다~
드뷔시는 달빛이랑 아라베스크 외에는 잘 몰랐는데 요고요고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