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이야기] 건축가 나상진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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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진 트리비아
이용재는 호텔 주설계를 김수근이 맡았다고 적는다.
당시 김수근의 나이는 겨우 서른. 약관에 큰일을 맡은 것이 영 부담스럽다. 그래 같이할 건축가를 모은다. 그만의 합리적인 처신일지도 모르겠다. 강명구, 김희춘, 나상진, 엄덕문, 이희태 등 5명의 선배들이 참여한다.
이용재
앞서 본 조성룡의 말과는 차이가 난다.
1961년 워커힐을 건설할 때 김수근 선생은 위쪽의 바(힐탑)를 맡았는데, 마스터 플랜 하고 본관 설계를 나상진 선생이 한 것을 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나상진 선생이 주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나 짐작하는데 정확하진 않아요. 워커힐 호텔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사업이기 때문에 기록 자체가 없어요.
조성룡
누가 설계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가? 워커힐호텔 건립에 관한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 할 듯하다.
이용재의 책에도 나상진에 관한 약력이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이용재가 쓴 <딸과 함께 하는 건축여행> 1권은 2007년에 출간되었다.
나상진(1923~1973)
근현대 과도기 건축가로 전라북도 김제가 고향이며 전주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일본 도급업자 밑에서 실무생활을 하다가 1941년 가시마쿠미에 입사해 만 4년 동안 근무했다. 1952년 서울 명동에 설계사무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설계작업에 들어갔다. <그랜드호텔>, <대한교과서>, 대구 <파티마병원>이 이 시기 작품. 1961년 5.16 후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경기도청사>(1963년, 김희춘 합작) 등 대규모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급성장한다.
참고로 나상진의 건물이 하나 서있는 능동 서울컨트리클럽. 박정희가 워커힐호텔을 가는 길에 골프 치는 모습이 보기 싫어 1970년 골프장을 폐쇄하고 어린이대공원으로 태어난다.
미군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워커힐호텔이 부도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국가 소유의 호텔은 민간으로 처분되고, 1973년 선경 그룹에 인수된다. 26억원. 그 후 선경은 세계적인 호텔체인 쉐라톤과 손 잡아, 쉐라톤워커힐호텔이 된다.
참고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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