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와 그녀

in kr •  17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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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기로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를 기다렸다. 주문메뉴판을 권하는 직원을 보내고 창밖을 응시했다. 길가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고 화창한 날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햇빛이 테이블에 비치며 반대편 풍경이 얼핏 비친다. 실내를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탓이라 꽃향기가 나는것도 같다. 인조꽃인것이 분명한데 시간마다 뿌리는 방향제 덕분인지 커피숍에서 느낄 수 없는 은은한 꽃향기.

반대편에 곧 앉을 그를 생각해본다. 어떤 옷을 입고 나올까. 분명 평소처럼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차림으로 올 것이다. 그는 패션에 무신경한 타입으로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덕분에 나도 캐주얼로 편히 입고 다니는 편이다. 서로가 서로의 패션에 대해 참견하거나 지적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2시 45분이다. 곧 있으면 그가 올것이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카카오톡을 봤다. 약속을 정하고 만나기전 짧은 대화를 끝으로 그는 아침부터 카톡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약속시간에 맞춰 나올것이라는걸 안다. 연락을 자주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는 항상 약속을 어긴적은 없다.

카카오톡 앱을 닫고 인스타를 켰다. 사람들의 음식사진, 아기사진, 연예인사진들이 즐비하다. 아무 생각없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면서 친한 이웃들의 사진에 글은 읽지 않고 첫번째 사진만 보고 두번 터치해서 하트를 빨간색으로 채워준다.

그러다가 아는 후배의 부산 야경사진에 잠시 손이 멈췄다.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이 즐비한 야경아래 적당히 핏되는 옷을 입고 무심하게 건너편을 쳐다보는 모습이다. 내가 저런 풍경을 앞에 둔다면 어떻게 찍었을까?하고 잠시 생각하다 옆으로 사진을 넘겨 다른 사진도 본다. 테이블위에 방금 나온듯 컵에 이슬이 맺힌 맥주잔과 먹기에도 아까울것 같은 작은 안주들까지. 그래도 명품백을 슬그머니 의자옆에 두고 찍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심리상태가 나쁘지 않아 그녀의 인스타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외로울때 이런 사진을 본다면 이 사진을 찍어준 남친과 부산의 시원한 바닷가에서 추억을 쌓을 그 연인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나도 부산에 갈까? 잠시 생각이 들었다. 그도 분명 내가 부산에 가고 싶다고 하면 선뜻 그러자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3시2분. 그가 오고 있는것인지 살짝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카카오톡을 보낸다. "지금 어디야?" 그런데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걸어오느라 폰을 안 보겠지하고 생각했다. 테이블위에 놓인 물컵을 아무생각없이 쳐다봤다. 둥그렇고 아무 무늬없는 유리컵인데 물이 반정도 차있다. 핸드폰 꺼진 화면으로 내 얼굴을 본다.

아침에 머리를 정성스레 말리며 잔머리가 나오지않게 에센스를 가득 발라둬서 머리를 만질때마다 향기가 난다. 특유의 에센스 향기를 느끼며 머리를 쓸어내린다. 눈썹화장도 마음에 들고 색조도 한듯 안한듯 잘됐다.

핸드폰 액정의 검은 화면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원래 색조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화사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밝은 베이지색 쉐도우를 발랐다. 카메라앱을 켜서 셀카모드로 놓고 얼굴을 이리저리 여러각도로 비춰본다. 화려하게 이쁘진 않지만 길에 다니면 한번씩은 번호도 따이는 적당히 귀여운 얼굴이다.

몇 분을 셀카모드로 해놓고 얼굴을 보는데 누군가가 옆에 와서 선다. 그일꺼라 생각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그런데 처음보는 남자다.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남색티셔츠에 청바지차림인 남자다.

순간 놀라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누구세요?"하고 묻는다. 그러자 "저기.. 아까부터 지켜봤는데"라며 핸드폰을 건넨다. "번호 좀 줄래요?" 하고 들이민 폰의 화면이 다이얼 화면이다. 이미 010까지 찍혀있는 화면을 보고는 다시 남자 얼굴을 봤다.

평범한 강동원같은 얼굴이다. 잘생겼다고 딱 말할수는 없지만 비율이 괜찮고, 얼굴이 작은 편이다.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죄송해요."하고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까전 폰을 건네던 그 자세 그대로 계속 서있다. 신경이 쓰여서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때 카페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기~~!!"하고 그를 불렀다. 이쪽을 쳐다본 그의 얼굴은 무슨일이냐고 묻는 표정이다.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서 있던 캡모자는 폰을 거두고는 그를 지나쳐 문앞에 놓인 테이블 자리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내 앞자리에 앉으며 그가 묻는다. "방금 전 그건 뭐야?" 나는 얼른 눈으로 캡모자를 쳐다보며 "어, 모르는 사람인데 폰번호를 달라고 해서..."하고 말했다. "너 인기 좋다?" 살짝 비꼬는듯한 말투를 느끼며 그를 쳐다보니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내가 이뻐서 그런거지 뭐."
"이쁜게 아니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거 아니고?"

순간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약속시간에 늦고, 거기다가 비꼬는 말투까지. 여기서 더 이야기가 길어지면 싸울것 같아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주문할께요. 뭐 마실래?"
"주문은 됐고 너 아까 저 남자랑 무슨 얘기 한거야?"
"아무 얘기도 안했어!"
"안 했는데 왜 그남자가 니 옆에 서 있는데?"
"왜 서있냐니. 번호 따려고 옆에 서 있었던 거라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메뉴판을 가지고 오던 종업원이 다시 돌아간다. 그걸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카운터로 가려고 했다. 한발자국 걷자마자 강하게 손목을 낚아채는 그의 손길에 나도모르게 휘청거렸다.

"일단 진정하고 주문부터 해"
"번호를 준거야?"
"무슨 소리야. 오늘 처음 봤고, 너 기다리는데 무슨 번호를 줘!"

몸을 돌리려 애를 쓰다가 아까전 번호를 물어본 캡모자와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굳은 그의 얼굴을 보며 창피함이 몰려왔다. 놓으라며 손을 뿌리치고 카운터로 걸어갔고 그도 내손을 잡고 있다가 풀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화가 진정되지 않는 상태로 유리안에 전시된 조각케잌들을 바라보다가 신경질적으로 제일 위에 선반에 있던 케잌하나 이름을 말하고, 고개를 들어 윗쪽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다가 아이스 룸구라떼를 두잔 시켰다.

계산을 하고 자리에 가서 앉아 있는데 그도 나도 말이 없었다.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몇 분뒤 아이스 룸구라떼가 도착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룸구라떼를 마셨다. 커다란 유리잔에 큼직한 얼음들이 있고 부러운 커피였다. 역시 가리스타로 이름이 자자한 룸구가 만든 커피답다.

마치 나 자신이 휘핑크림이 되어 초콜릿강위에서 춤추는 느낌이랄까 한번 먹자 멈출수가 없어서 연이어 커피를 들이켰다. 최고야. 짜릿해. 멈출 수없어. 지금 당장 주문하세요. 아이스 룸구라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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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찡여사님~~~ 포스팅에서 이런 진지한(?) 글을 보다니...ㅎㅎ
단편소설 재밌네요!
근데 평범한 강동원같은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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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파같은 얼굴입니다. @mipha

단편소설 썻구나
나중에 읽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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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기분을 100자이상 서술하시오.

이글도 아주 재미진데요
음 작가에 피가 흐르는군요^^

혹시 전자책같은거 생각 없는지
사는이야기 모아서 전자책내도 괜찮을듯!! 진심^^
내면 내가 무조건 한권 삽니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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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하게 이쁘진 않지만 길에 다니면 한번씩은 번호도 따이는 적당히 귀여운 얼굴이다.>>>> 찡??
아이스 룸구라떼 홍보글이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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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ㅋㅋ부족한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옹♡

결말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