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보이> : 내가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추억

in #kr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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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후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2세 할리우드 배우 ‘오티스’(루카스 헤지스)의 일상은 연속되지만 연속되지 않는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연속적이지만, 하루를 쪼개가며 동시에 여러 개의 촬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는 매 순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이런 불연속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일상은 점점 속도를 더해가고, 그 안에서 오티스는 더 가혹하게 자신을 망가뜨린다. 2005년, 22세 할리우드 배우 오티스. 그의 앞에서 폭탄이 터질 것이다.

한 순간이었다. 위태로웠던 삶이 터져버린 것은. 오티스는 알콜중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던 자학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채, 음주운전으로 재활원으로 오게 된다. 그의 음주운전이 교통사고로 이어졌던 터라, 오티스의 재활 과정은 기록되어 법원에 제출된다. 도망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이 ‘치유’의 과정으로 들어서게 된 그는 자신을 터뜨린 내부의 압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찾아가기 시작한다.

1995년, 12세 할리우드 배우 ‘오티스’(노아 주프)는 파이 앞에 서있다. 그 파이는 곧 자신의 얼굴로 날아올 것이다. 대본에 적힌 그대로, 파이는 어린 오티스의 얼굴로 날아든다. 아역부터 연기 경력을 시작한 오티스의 삶은 누군가가 정해준 스케줄과 대본에 맞춰져 있다. 대본에 적혀있는 것이라면 오티스는 파이든 폭탄이든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삶은 어릴 적부터 ‘연기’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위탁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유년을 포함해 지금까지도 그의 삶 전체를 쥐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 ‘제임스’(샤이아 라보프)다.

하지만 오티스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유일한 비즈니스 파트너인 제임스의 상태는 현재의 오티스 보다 위태롭다. 범죄력과 알콜중독 이력이 있는 그는 모텔에서 오티스를 키우면서 성실하게 촬영장을 오가는 듯 보이지만, 오티스와 함께하는 일상 곳곳에서 쉽게 아들의 손을 놓는다. 말 그대로 아동성범죄자처럼 보일까봐 남들 앞에서 아들의 손을 잡지 않는 행동도 그렇지만, 아들을 옆에 둔 그의 시선은 언제나 밖으로 나돈다. 촬영장 스텝에게, 맞은편 모텔 방의 여자들에게, 그리고 열등감에 찬 자신에게.

제임스의 열등감은 아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서부터 아들에게까지 번져, 촬영장 밖의 오티스의 일상은 묘한 긴장이 서려있다. 실수 할 때마다 해야 하는 열 번의 팔굽혀펴기,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아버지의 고성과 언어폭력, 신체를 향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까지. 어린 오티스가 겪어내야 하는 ‘아버지’라는 환경은 척박하다 못해 가혹했다.
영화는 아버지의 그림자 밑에서 연기활동을 이어가는 어린 오티스와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걸 멈추고 재활원에 있는 현재의 오티스를 겹쳐 보여준다. 그때마다 오티스는 고통에 잠긴다. 그는 연기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덮어두었던 트라우마를 한 겹 한 겹 벗겨낸다. 급하게 대충 봉합해놓은 상처라 상처의 근원으로 갈 때마다 어설프게 난 딱지들이 벗겨지며 그를 몸부림치게 한다.

상처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의 그늘은 그의 유년을 다 가릴 만큼 커진다. 그래서 오티스는 이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버지’와 ‘고통’ 그리고 ‘유년’은 하나의 덩어리라 거기서 고통만을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제거하는 순간, 그는 유년과 아버지를 잃을 것만 같다.

하지만 오티스가 과거를 되짚을수록 아버지는 다시 쓰여진다. 가혹한 부분은 더 또렷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아름다웠던 부분은 아프도록 아름답게.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뭉개놓았던 기억이 여러 층위로 펼쳐지는 순간 오티스는 그 속에서 그가 과거를 돌아보며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추억을 건져낸다.

맞은 편 방의 소녀 ‘샤이걸’과의 순수했던 사랑, 아버지를 원하고 연민했던 자신과 아들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인정했던 아버지의 모습. 남들이 보기에는 아버지가 준 고통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이 작은 추억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폭력 속에서도 아버지라는 끈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었던 오티스에게는 이 파편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는 이렇게라도 끊을 수 없는 부자(夫子)관계를 이해하고 추억하고 싶다.

유년에 엉켜있었던 고통과 행복이 분리되면서 현재의 오티스는 꿈(상상)속에서 닭을 따라 어릴 적 아버지와 머물렀던 모텔로 향한다. 로데오에서 닭을 조련하는 광대였던 제임스는 연기 하는 아들을 ‘닭’에 비유했었다. 이 비유는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하는 아들의 모습을 비꼰 것과 동시에 아들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렇듯 닭 또한 아버지가 오티스에게 심어준 트라우마의 한 조각이다. 하지만 오티스가 유년을 정리하면서 닭은 과거의 아버지에게로 닿는 연결고리가 된다. 닭을 따라간 그 곳에서 오티스는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광대 분장을 하고 있다. 누굴 향했는지 모르는 분노와 원망을 안은 채로 연기를 하는 사람. 너무나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서, 오티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모텔을 빠져나온다. 어릴 적 자신을 태우고 촬영장과 모텔을 오갔던 모습 그대로 오티스는 아버지를 태우고 모텔에서, 그 속에 응축되어 있었던 고통의 기억에서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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