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계단

in #kr7 years ago (edited)

staircase-600468_640.jpg

“계단 코스가 제일 어렵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어릴적 아빠따라 뭣도 모른채 등산을 다녔고 등산객 아저씨들이 내뱉는 저 문장은 어린나이엔 도통 이해해하기 힘들었다.

등산로 중에는 종종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계단로가 설치돼있다. 이 계단로는 진흙으로부터 나의 신발을 보호해주기도하고 험한 돌길을 가벼운 걸음걸이로 일정하게 등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처럼 편한 ‘계단로’가 왜 폄하된단 말인가. 사실 폄하되는 이유를 깨닫는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보통의 등산로는 불규칙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있다. 어느 하나도 같은 모양새의 길이 없으며, 내가 내디뎌야 하는 땅에 박힌 돌마저도 그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기다. 일반적인 등산로에서는 내 한걸음 한걸음이 모든 선택과정이 되고, 새로운 걸음을 창출해내는 이유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기어가다시피하는 한 마리 동물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계단 위의 난 로봇처럼 늘 같은 힘과 규칙성으로 발을 내디뎌야 했다. 사실 처음만 편하지 오히려 단조로운 규칙성 속에서 이내 지치고 만다.

일정한 규칙성은 편리함을 선사해줬지만 동시에 지루함을 줬다. 지루함 속에서 그저 이 계단의 끝을 빨리보자는 마음으로 땅만보고 걷게된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기억에 남는건 끝없는 계단뿐이 된다. 산의 풍경, 걸음의 과정 속에서 발현되는 갖가지의 나의 생각은 남아있지 않다. 돌길은 어떤 돌에 발을 디딜까 생각하는맛이라도 있지. 편한 계단길보다는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더 다채로운 등산로가 좋은 이유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아쉽게도 다채로운 돌길 보다는 편한 계단에 더 가까워 보인다. 보통의 우리는 돌멩이 하나 조차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오로지 똑같은 규칙성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길 원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모두들 유치원을 지나 수능을 보고 대학에가고 똑같은 걸음으로 결혼을하고 마침내 똑같은 죽음도 맞이하게된다.

어찌보면 편할 순 있다. 어느 정도의 요령과 노력만 있다면 계단처럼 일정목표에 도달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계단에서 ‘나’는 증발된다. ‘나’에 대한 생각 없이도, 선택 없이도 계단만 오를줄만 알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편해도, 진흙이 내 나이키 운동화를 더럽히고 관절이 조금 아플지라도 계단 보단 흙길을 오늘도 걷는다. 스스로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Sort:  

Congratulations @yoonheijoon! You received a personal award!

Happy Birthday! - You are on the Steem blockchain for 1 year!

Click here to view your Board

Support SteemitBoard's project! Vote for its witness and get one more award!

Congratulations @yoonheijoon! You received a personal award!

Happy Birthday! - You are on the Steem blockchain for 2 year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