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멕시코 (1) 색감

in #kr6 years ago (edited)

내가 본 멕시코 (1) 색감

 

라틴아메리카에, 그리고 멕시코에 많은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칸쿤의 카리브해부터 사막까지 펼쳐진 자연, 원주민과 스페인 문화 사이를 줄타는 유적지들, 몇 세기의 저항정신이 녹아든 사회운동과 예술작품 등을 들 수 있겠다. 영화 ‘코코’도 한 몫 했다.

흐린 날씨에도 카리브해는 아름답다.

멕시코에 서너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지인들이 그 먼 나라는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비슷하게 대답한다. 여행을 다니기에는 사랑스러운 나라지만 살고싶은 나라는 아니라고. 멕시코의 하루하루는 거의 행복했다. 날씨는 지겨울 정도로 항상 맑았고, 관광지 도시의 광장에서는 음악과 춤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안에서 마시는 모델로와 보헤미아는 얼마나 달았는지. 서울보다도 현대적인 쇼핑몰에 고층빌딩이 줄지어 선 도시도 많았다.

하지만 고작 일 년도 안되는 시간을 보내고 그곳을 ‘사랑한다’고 하기는 망설여진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생활수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관광지와 성당 앞에서 양팔 가득 목걸이를 파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감히 여기 살고싶다고,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환상의 연장선은 아닐까.

참 위험하고 문제도 많은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 많은 나라다. 그래서 첫 글로 내가 본, 내가 사랑하는 멕시코에서의 소소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산미겔과 과나후아또

 

가까운 두 도시 산미겔(San Miguel de Allende)과 과나후아또(Guanajuato)는 무엇보다 선명한 색감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먼저 간 산미겔에서의 시간은 짧았는데, 도시보다는 조용한 마을에 가깝게 느껴졌다.


여느 멕시코 도시처럼 성당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여긴 연한 분홍빛이다.

근처 식당에 앉아 맥주를 들고 앉으면 기념품 파는 사람들, 성당 종소리, 마리아치의 연주소리가 얽혀 들린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일요일이라 다소 요란스러운 결혼식도 볼 수 있었다.


차 없이 잘 정리된 길에는 갤러리와 재즈카페가 많았지만, 그냥 이 정원 의자에 앉아 노을이 질 때까지 햇빛을 쬐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이라 닫은 가게도 많았고, 그저 앉아서 지친 마음을 풀기 좋았다.

이곳에선 적어도 날씨는 항상 맑고 맥주도 저렴하니까.


괜히 은퇴한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가 지나갔다.

 


 

산미겔에서 몇 시간 차를 타고 가면 과나후아또가 나온다.
스페인이 탐내던 은광 도시면서 독립운동의 시발점으로 타올랐던 곳이다.
사실 생동감 넘치는 과나후아또를 봤을 때 연한 파스텔화 같았던 산미겔은 내 기억에서 잊혀지다시피 했다.

우선 이 도시 어딘가에 도착한다면 푸니쿨라를 찾아보는 게 좋다.

작은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이렇게 과나후아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을 한움큼 파낸 곳에 알록달록한 집들이 들어차있는 것 같아 보인다.
거의 15분마다 도시 전체에 종을 울리는 대성당이 중심을 지키고 있고, 그 뒤로 은색의 과나후아또 대학이 눈에 들어온다.

‘코코’가 나온 이후 전망대 옆에는 이런 조형물이 생겼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와서 몇 페소를 내라고 한다. 속는 셈치고 동전을 조금 냈더니 미겔의 기타를 쥐어주고 사진도 대신 찍어준다.

다시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과나후아또 여행의 재미는 좁은 골목을 걸어다니며 갤러리와 박물관, 극장, 카페를 찾아내는 데에 있다. 시장과 보석상에서 은 악세서리나 수공예 제품을 구경하다보면 지갑을 열지 않고 지나치기는 힘들다. 나는 은반지, 집 앞 번지수를 표시하는 꽃장식의 타일과 엽서 몇 장을, 일행은 선인장 모양의 양념통과 티테이블보를 샀는데 다들 참 쓸데없어 보이면서도 멕시코의 색감을 담은 예쁜 기념품들이었다.

커피콩 볶는 향으로 골목을 채우고 있던 작은 카페 콘키스타도르,
스페인어로 ‘정복자’라는 뜻을 가졌다.
천장에는 각국의 지폐가 붙어 있고 벽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7년 전 누군가 카페의 모습을 물감으로 가볍게 그려놓은 그림이 인상깊었다.

 

 

한 잔 들고 거리를 따라가 보니 조금 볼품없는 디에고 리베라의 박물관이 있었고, 곧이어 돈키호테 박물관(Museo Iconográfico del Quijote)이 나타났다. 디에고의 대표적인 작품은 멕시코 시티에서 본 뒤여서 별 감흥이 없었지만, 돈키호테 박물관은 한바퀴 돌아볼 만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전시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작품. 들어설 때 숨이 막힌다.
뒤에 스페인어는 이렇게 쓰여있다.

 

나는 돈키호테를 그의 결점까지 사랑한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이상주의를 사랑한다. 그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라만차에서 이렇게 먼 곳에 돈키호테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 스페인도 아닌 멕시코 과나후아또에서 세르반티노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세르반테스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는 스페인의 모습과 기사소설을 비판하려 쓴 <돈키호테>가 여기서는 어떤 의미가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과나후아또의 거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많이 낡았다.
벽마다 금들이 가있어 그 역사를 실감하게 한다.

해가 지고나서 마리아치의 소리가 들리는 광장의 펍에 앉아있는 것도 즐겁겠지만
역시 햇빛을 맞으며 소란스러운 거리를 거닐고, 맛보고, 감상하는 게 가장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루 밖에 지내지 못해 아쉬웠던 ’디에고’ 라는 이름의 에어비앤비다.
전망과 옥상도 아름다웠고, 낡은 타자기에 디에고에게 보내는 프리다의 편지를 써놓은 세심함도 있었다. 다만 방마다 디에고의 사진이 참 많이 걸려 있어서 바로 옆집인 ‘프리다’를 예약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들게 했다.

 


 

 

과나후아또 여행은 두번째였지만 항상 다음 여행을 기약하게 된다.

그만큼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고 아직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이,
찾아내지 못한 보물이 있을 거라는 아쉬움과 기대를 가지게 하는 곳이다.
이 날도 언젠가 돌아올 수 있기만을 바라며 떠났다.

 

 

 

신문지에 돌돌 싸준 타일. 어디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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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매력적입니다! ^^
저도 애니메이션 코코 너무 재밌게 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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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팔로우 할게요 ^^

감사합니다 아직 배울 게 많네요! 저도 팔로우 할게요^^

저도 뉴비지만 지난달 헤매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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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주신 대로 트립스팀에서 글 올려보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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