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 조영란
목발을 잃어버리고
나는 왼발 다음에 오기로 했던 오른발을 기다렸다
밤은 언제부터 어두웠던 거지?
아침은 더디 오고
마음을 다해도 몸은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
실패를 높이로 받아들이고
좌절을 문턱으로 여기는 날이 많아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한 발로 이토록 오래 서 있어야 하다니
내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절뚝거리는 하루는 누구에게나 있다
재활에 대한 장전(章典)이 있다면
어떤 걸음이건 뼈가 아파야 한다는 것
가능에 대한 절실함으로 힘껏 발을 뻗는다
뼛속으로 빼곡히 차오르는 생의 밀도,
하얗게 일어서는 중심
[출처] 시인동네 시인선 155, 조영란 시집, 『당신을 필사해도 되겠습니까』|작성자 시인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