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병 속의 내가 / 황중하

in #kr3 years ago

콜라 같은 날 낳고 엄마는 행복했을까.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들이 다가와 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다. 넌 콜라라며 콜라가 사는 나라로 가버리라고 한다. 나는 모래더미 속에 얼굴을 묻는다. 나만 홀로 캄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는 콜라병 속에 날 가둔다.

콜라병 속의 내가 콜라병 밖의 엄마를 본다.

엄마는 콜라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빛을 꿰어 넣는다. 엄마의 눈물 같은 빛이 콜라병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울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간다. 사이다 같은 아이들이 내 주위를 맴돈다. 넌 콜라라며 톡 톡 톡 쏘아댄다. 돌멩이를 던져댄다. 난 콜라병 속에 다시 나를 가둔다. 엄마가 만들어준 콜라병. 아프지 않을 콜라병.

콜라병 속의 내가 콜라병 밖의 세상을 본다.

툭 툭 툭 틈만 나면 나를 흔들어대는 세상. 나는 흔들린다. 세차게 흔들린다. 반항하듯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기포를 천장까지 끌어 모으며. 누군가 내 생의 한가운데 빨간 딱지를 붙인다. 나는 위험하다. 뗄 수 없는 빨간 딱지를 붙인 나는 위험하다.

엄마는 기포를 숨긴 채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난 언제든 분출하기 위한 꿈을 꾸며 산다.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며 내 몸의 탄산을 끌어 모은 채 자유롭게 뚜껑 밖으로 흘러가는 꿈을 꾼다. 누구의 유리잔에도 담겨지지 않는 꿈. 플로리다에서 건너온 한 흑인 남자와 함께 콜라의 비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꿈.

콜라병 밖으로 주르륵 흘러나오는 슬픔.

아무도 모르는 뚜껑 속의 내가 세상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위험한 콜라가 새어나가고 있다.

[출처] 시인동네 시인선 153, 황중하 시집, 『아직 나는 당신을 처리 중입니다』|작성자 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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