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사건사고 #20190113 반려견 흰둥이의 장례식 in Wat Krathum Suea Pla

in #kr6 years ago (edited)

우리 커뮤니티 회원 중 한분의 소중한 가족 강아지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 행복하고, 동안으로 살다가 12일 오후 떠났습니다. 태국은 강아지들의 화장과 제사제도가 잘 이루어져 있어서 반려동물의 주인들이 마지막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불교국가인 태국의 조문 태도는 함께 침통한 방식이 아니라, 죽음이란 주제의 잔치이자 파티입니다. 조문객과 상주들은 웃는 얼굴로, 기쁜 마음으로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지켜줍니다. 실제로 풍악을 울리기도 합니다.

간소한 의례를 마치고 화장장에 불을 붙이고 나면 이제 한평생 살았던 길고도 짧은 시간동안의 미련과 후회 남은 이들과의 관계는 불길과 함께 태우고 또 태웁니다. 다 타서 한줌의 가루가 되어서 나올 때까지 약 한시간 정도의 시간을 옆에서서 지키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은 떠나는 이에게도, 남은 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별은 짧고 분명할 수록 서로에게 좋은 법입니다.

우리는 그 한 시간동안 절을 돌아보며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절 순례입니다.

Wat Krathum Suea Pla (วัดกระทุ่มเสือปลา)

는 몇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동남아산 통나무 기둥들로 떠받친 건물이 돋보입니다. 한 쪽에 사람을 위한 화장터와 반려동물을 위한 화장터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태국 절이지만 한쪽에는 힌두신들이, 또 한쪽에는 도교사원이 섞여 있고, 또 절 한가운데는 작은 마켓이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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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도교사원 간판을 붙여놓고 내부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왼쪽에 거대한 힌두출신 스깐다(Skandha) 위태천이, 오른쪽엔 삼국지에서 튀어나온 관운장이 붉은 얼굴과 긴 수염, 녹의를 입고 청룡언월도를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관운장은 무속인들께서 많이 모시는 인기있는 동양신이 되었죠. 중국도교사원+부처님+힌두신=종교의 광장입니다. 주제를 흐린다는 측면에선 정신없지만 나름 재미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향불명 나이불명 이름불문 신상이 그득합니다. 여기에 기도를 하면 누군가 한 분은 얻어 걸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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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비슈누로 보이는 신, 태국 오셨다 가신 분들은 수완나품 공항 출국장에 나가서 딱 마주치는 조형물 중 덩치는 크지 않아도 높은 위치에 있는 보라색 신을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세이돈만큼 유명한 인도신 비슈누입니다. 아 하도 섞어둬서 아리까리 하지만, 아무튼 이젠 태국에서 맥주의 상징이 된 사자신, 싱하를 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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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렇게 조성했겠지만, 몸에 비해 머리가 유달리 크고 아이처럼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트레이마크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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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달라는데 뭘 달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ㅋㅋ 또한 기둥에 한국말로 주차금지가 많이 붙어있군요. 혹시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 자꾸 주차해서 그렇게 한글로 붙여놓은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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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세 명은 붙어야 겨우 손이 닿을만큼 커다란 둘레의 나무기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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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경회루 같이 많은 원목기둥으로 받쳐진 멋진 누각입니다. 수리중인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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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절 처럼 기와불사를 합니다. 일정 금액을 내고 원하는 글을 기와에 써 두면 새로운 건물이나 혹은 재건축하는 사원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겠죠. 500년쯤 흐른 뒤에 저기서 한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 화학성 펜이 그 정도의 시간은 거뜬히 버텨줄라나요? 저기에 보시하는 이들의 성향을 보면 우리를 포함한 동양인들은 대개 가족의 이름을 쓰거나 대학입시, 진급, 건강 등을 주로 쓰며, 서구인들은 인류의 평화, 모든 이들의 행복을 주로 많이 쓴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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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부처님도 있군요. 우리는 왠만한 전문가지만, 저 부처님은 누군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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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당의 위용입니다 벽에서 용이 튀어나올것만 같군요.

주제없이 짬뽕된 너무 많은 신상들, 중국 유명사원처럼 뿜어지는 향연기, 쉴새없이 떠들어 대는 엠프소리... 조용한 절에서 사색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이 뒤섞인 절들은 건물 한두동만 남은 고즈넉한 오랜절들이 주지 못하는 일상의 소란이 있습니다. 로터리도 돌리고, 강가에서 가서 허벅지만한 물고기에게 밥도 주고, 기와에 글도 쓰고, 그 많은 향들 사이에 내 향도 하나 꽂고, 신상이 누구인가를 맞춰보기도 하고... 파파야도 사 마시고 로띠도 사먹고...

많은 이들이 불교를 종교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하지만, 불교는 어떤 측면에서는 종교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엄숙주의를 우리에게 강요하지만, 사실 누가 뭐래도 절은 보통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의 점유물이 아니죠.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놀이를 하고 벤취에 앉아서 뭔가를 까 먹고, 떠들고 놀고, 정해진 규칙없이 기도하고 그런 엄청난 소란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오히려 고요함을 찾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동안 뒤섞여서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을 반쯤은 망각했던 우리는 다시 이별의 공간으로 웃으며 걸어갑니다. 저 앞에서 화장 담당자가 급할 것도 없이 걸어와 우리에게 다 끝나서 이제 뼈를 부수어 가루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작고 예쁜 항아리에 담긴 유골함을 건네받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그렇게 비통하지는 않습니다. 당사자들은 물론 슬픔을 애써 감추려 했겠지만 말입니다. 이별의 주인공들은 와준 이들에게 고마워 하며 저녁과 맥주 한잔, 그리고 또 커피까지 대접합니다. 오후 1시쯤 출발했던 우리의 장례식은 밤 11시가 되어 24시간 문을 여는 스타벅스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많은 장례식에 참여해봤지만,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떠나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과 거의 구별하기 힘든 오늘의 행사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흰둥이가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서 이번생만큼 행복한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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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다녀 오셨군요.

여기 진짜 모든 동양의 신들이 다 모여 있는것 같아요~~(소원 열심히 빌어야 겠습니다 ㅋ)
YBC 소속 사원이었으면 하는 마음 한번 담아 봅니다.
그럼 더 멋찌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수 있다는 믿음아래~

흰둥이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남은 가족분들은 너무 슬퍼허지 마십시요. 오고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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