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in #kr6 years ago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에빙 마을에 사는 '밀드레드'
광고판을 대여해주는 '웰비'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그녀는 웰비를 찾아가 자신이 적은 문구로
광고판을 제작해 줄 것을 요구한다.

완성된 광고판에는 그녀의 딸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고
'윌러비' 경찰 서장의 실명까지 거론되어 있었다.

그 광고판이 세워진 이후부터 마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그린 영화가 '쓰리 빌보드'다.


분노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감정은 '분노'
밀드레드가 광고판을 세우게 된 이유도 분노이고,
죽은 '앤'이 끔찍한 일을 겪게 된 것도
자동차를 빌려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분노에서 어느 정도 기인한다.

영화는 분노의 대상이 계속 옮겨감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마치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에서
관객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가짜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이야기가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어왔던 것처럼
이 영화도 분노의 대상을 변화시킨다.

영화 초반에 밀드레드의 분노의 대상은
무능한 경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광고판이 마을에 알려지고, 뒤에 다루게 될
윌러비의 자살 이후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대상이 된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 커녕 자신을 위협하거나
윌러비를 죽게만든 살인자로 취급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밀드레드는 분노의 대상을 확장시킨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밀드레드에게 연민을 갖고
밀드레드와 마찬가지로
무능력한 경찰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윌러비의 자살과 사랑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윌러비의 자살은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준다.

광고가 게시된 이후 윌러비는 밀드레드를 찾아가
자신이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밀드레드의 머릿속에는 무능한 경찰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윌러비가 하는 말은 그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윌러비는 자리를 떠나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영화의 전개에서 윌러비 서장의 편지는
큰 역할을 수행한다.

먼저 윌러비는 아내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에서
'얼굴로 총알을 받는 용기'보다 자신의 약해진 몸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여줘야한다는 슬픔이 더 컸기때문에 그는
이런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고 설명한다.

약하고, 비극적인 모습의 자신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넘치는 모습의 자신을 마지막 모습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의 선택은 기독교에서 '자살을 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와 같은 성스러운 잣대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그는 자신이 오래 연명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그의 '사랑'을 비겁하다거나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이 밖에도 윌라비는 죽기전에 밀드레드와
자신의 부하 경찰인 '딕슨' 에게도 사랑을
강조하는 편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분노와 사랑이 공존하는 법

윌라비의 자살로 인해 많은 것이 변화된다.
감정이 없는 '철의 여인'인줄 알았던 밀드레드는
윌라비의 자살 소식과 그의 아내가 전해준
편지를 읽으며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윌라비가 자신이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로 광고판의 사용료를 지불하여 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노로 꽁꽁 얼어있던그녀의 마음에도
사랑이라는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윌라비의 죽음 이후 광고판 앞에 꽃을 심으며
분노를 유지하려 했던 그녀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고라니를 발견하고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동안 애써 씩씩한 척 해왔던 그녀는
자신의 딸을 연상시키는 고라니를 보고
슬픔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윌라비가 비춘 햇살이 그녀의 마음에 전해진 결과다.

서장의 죽음은 남겨진 경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불량경찰로 폭행과 인종차별을
일삼아오던 딕슨은 윌라비의 형사가 되는데 사랑이
꼭 필요하다는 윌라비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읽는 도중 분노한 밀드레드가 저지른
방화때문에 얼굴에 화상을 입게된 딕슨은
자신이 폭력을 가했던 웰비에게 도움을 받고
그에게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딕슨의 마음에도 사랑이 피어나는 장면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는 점차 사랑으로
변해가고 분노의 대상을 이리저리 옮겨가던
관객들도 결국은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윌라비의 사랑이 관객들에게도 미치는 효과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적인 문장은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는 것이다.

밀드레드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분노는
결국 경찰 뿐만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받게 만들었다.

딕슨의 분노는 밀드레드에게, 밀드레드의 분노는
딕슨에게 다시 영향을 주어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분노에 상처입었다.

윌라비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맹목적인 분노는 아무것도 가져오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분노라는 것을 윌라비의 편지는 보여준다.

딕슨과 밀드레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랑 하는 법을 배우게된다.

자신의 전 남편에게 애인을 잘 챙겨주라고
부탁하는 밀드레드는 그동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마지막 연민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전 남편에게 축복의 말을 건낼 수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윌러비 서장은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분노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한 여자의
인생을 자신의 죽음으로써 구해주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딕슨과 밀드레드는
살인을 하러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분노보다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쓰러져있는 딱정벌레를 일으켜주고,
윌라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딕슨의 화상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줄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오렌지 주스의 빨대에 감동하고
한 남자의 편지의 감동하는 사랑의 족속이다.

분노는 일시적이고, 사랑은 영원하다.

감독은 어설픈 해피엔딩을 추구하지 않았다.
밀드레드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많은 분노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녀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많고,
그녀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찾지 못한 것은
자신이 표출한 분노에 원인이 있음을
감독은 결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분노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노보다는 사랑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신이 존재하지 않고 세상이 텅 비어있으니,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겠지.
세상 어디에도 의미가 없으니,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의미가 되어야겠지."


사랑없는 세상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랑이 결핍된 사회에 교훈을 준다.

최근에 남,여 갈등, 세대 갈등 등
많은 분노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그들을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
밀드레드가 분노를 통해 얻은 것이
없듯, 우리의 사회도 윌라비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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