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Essay)> - 어항과 아버지

in #kr7 years ago

우리 집에는 물고기 몇 마리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수조가 있다.

'수조'라 하기엔 너무 작은 느낌이고, '어항'보다는 큰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저 묵묵히 헤엄을 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듯 우리 가족들 역시 이 물고기들의 존재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

우리 집에서 이 수조를 유일하게 관리하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이다.

그러나 아버지조차 수조를 잘 관리하지 않아 수조 속 물의 색깔은

작은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빛깔을희미하게 만들 정도로 누런색을 띨 때가 많다.

나는 여느 날처럼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그날따라 어항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흐린 물로 인해 잘 보이지도 않던 예쁜 빛깔을 가진 물고기 몇 마리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자신감 넘치게 어항 속을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우리 가족들에게서 잊혔던 물고기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역시 우리 아버지였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잠시 일을 쉬고 계신 우리 아버지는 부쩍 집에 있는 시간이 나셨다.

예전에는 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셨던

열악한 물고기들의 삶의 터전을 당신께서 보시고 어항을 청소하셨던 것이다.

나는 이 깨끗해진 어항을 보고 기쁘기는커녕 약간의 씁쓸함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당신이 아직 늙지 않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항을 청소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나타내 보이시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평소에는 일에 치여 옴짝달싹 못하시던 아버지께서 최근 여유시간이 생기셔서

나를 부산까지 차를 끌고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전형적인 경상도 부자지간인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어색함과 서먹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데려다준다고 하시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산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동안 피할 수 없는

어색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담이었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부산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니는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으면
네가 아빠한테 받은 애정보다
훨씬 많이 줘야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뜻밖이다는 말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항상 나에게 엄하고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실 줄 몰랐다.

아버지 세대에는 자식들이 여럿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고

그 때문에 당신도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신다는 것을 덧붙이셨다.

그러나 나의 세대에는 자식이 한두 명이고 시대가 변했으니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보다

더 많이 표현하고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당부였다.

그러나 나 역시 그저 "네"라고 대답할 뿐,

애정을 많이 표현하지 못하셨다는 아버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런 새로운 모습들을 보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짠하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성실하고, 듬직하신 아버지의 형상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그가 이렇듯 작아지고 여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앞으로 아버지를 더욱 따뜻하게 대해드려야겠다는 것을 다짐하게 되는 날들이었다.

이제 나에게, 수조 속 깨끗한 물에서
예쁜 물고기들이 힘차게 헤엄치는 것은
비극적인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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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나이를 먹고 아버지와 운전 연습을 하고 차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할 수도 있지만 어머니와는 다른 유대를 형성할 수 도 있지요.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며 팔로우 하고 갈게요 : )

저도 조금씩 아버지께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ㅎ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맞팔할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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