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봤던 공연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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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로 뮌헨에 갔다가 그저께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봤던 공연에 관해 짧게 메모.

바그너 ‹파르지팔› / 7월 31일.

  • 올해 뮌헨에서 봤던 공연 가운데, 연주의 기술적 완성도를 떠나 가장 감동적이었던 공연.
  • 내 인생에 다시 있을까 싶은 드림팀. 키릴 페트렌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르네 파페, 요나스 카우프만, 니나 스템메,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볼프강 코흐 등.
  • 암포르타스가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음. 구르네만츠와 맞짱 뜰 기세의 암포르타스. 저는 이제부터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팬입니다.
  • 바이로이트가 아닌 곳에서 연주하는 ‹파르지팔›은 음향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음. 연주가 아주 훌륭했는데도.
  • 가장 울컥했던 순간은 1막 소년들의 합창: "믿음이 이어지고 비둘기 날아올라 구세주 사랑 알리나니 / 너희에게 따라 놓은 포도주를 마시라 생명의 빵 먹으라!"
  • 내가 생각하는 1막의 클라이맥스는 "Wein und Brot des letzten Mahles"(최후의 만찬의 빵과 포도주를)부터 긴 호흡으로 쌓아올리는 크레셴도라 생각하는데, 키릴 페트렌코는 생각이 좀 달랐던 듯 크레셴도가 약해 아쉬웠음.
  • 3막 성배의식 전의 관현악은 내가 이제껏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도 고통스럽게 느껴졌음. 음악이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을 못 차릴 지경. 암포르타스! 디 분데!!
  • 공연 끝나고 키릴 페트렌코가 무대로 나왔을 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키릴 페트렌코를 향해 꽃송이들이 우박처럼 쏟아짐. 현장을 담은 영상:
    https://www.facebook.com/staatsorchester/videos/vb.156426344401851/2035093083201825/?type=2&theater

바그너 ‹지크프리트› / 7월 24일

  • 내가 이제껏 들어본 가장 탁월한 ‹지크프리트›.
  • ‹파르지팔›을 보기 전까지 최고라 생각했던 공연. 기술적 완성도는 ‹파르지팔›보다 훨씬 높았음.
  • 키릴 페트렌코의 ‹니벨룽의 반지›는 몇 년 전 바이로이트에서도 들었을 때도 대단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바이로이트에서는 막장 연출가 프랑크 카스토르프 때문에 '차 떼고 포 떼고' 지휘한 거였구나 싶었음.
  • 오케스트라 음색이 독특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공연 직후 악보를 확인하지 못해서 지금에 와서는 다 까먹었…; 하여간 키릴 페트렌코는 전통에 단단히 발을 디디면서도 곳곳에서 현대적인 음색을 살린 탁월한 해석을 보여줬음.
  • 니나 스템메 언냐 역시 대단함. 슈테판 핀케는 요 몇 년 사이 실력 많이 늘어서 이제는 제법 들어줄 만했음. 알베리히 역 욘 룬드그렌(존 룬트그렌)은 나이 먹고 기운 딸리는 볼프강 코흐(방랑자 역)를 때려눕힐 기세.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리사이틀 / 7월 23일

  • 오페라 보러 뮌헨 갔다가 리사이틀 보고 떡실신할 줄이야 덜덜덜…
  • 원래 테너 피오트르 베치아와 리사이틀이었다가 베치아와가 알라냐 대타로 바이로이트로 가면서 돌려막기한 공연
  • 의외로 완벽하게 느껴지는 프랑스어 딕션에 깜놀. 게르하허가 스위스 사람인가 싶어서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냥 독일 사람.
  • 탁월한 딕션이 ‹파르지팔› 때에도 돋보였지만, 오페라의 극적 흐름에 녹아들던 것과는 또 다른 압도적으로 정교한 표현력으로 공연 내내 관객을 휘어잡음

바그너 ‹신들의 황혼› / 7월 27일

  • 키릴 페트렌코 찬양. 공연 끝나고 니나 스템메 인사할 때 상당수 관객이 기립하더니, 키릴 페트렌코 나오니 전원 기립.
  • 하겐 역 한스 페터 쾨니히 옹… 세월이 무상합니다요…
  • 이른바 '구원(Liebeserlösung)' 모티프에 붙는 이름은 영어로 "Redemption"이라고도 하고, 관점에 따라 '브륀힐데 신격화' 모티프라고도 하는데, 쇼펜하우어스러운 맥락에서 "Liebeserlösung"이라는 이름이 알맞고 다른 건 오해를 부른다는 생각을 음악을 들으며 하게 됐음. 또는 ‹발퀴레›에서 이 모티프가 처음 나올 때 가사인 "Herhstes Wunder"(가장 위대한 기적)도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 이때의 맥락은 희열과 감동 속에서 쇼펜하우어의 '본질적 세계'를 살짝 엿본 것. 신들의 황혼에서 이 모티프가 관현악으로 나올 때가 진짜 열반의 순간. 참고로 바그너는 대본 마지막에 음악과 별개로 텍스트로만 된 브륀힐데의 독백을 따로 붙였는데, 쇼펜하우어를 알아야 이해 가능한 내용.

바그너 ‹라인의 황금› / 7월 20일

  • 뮌헨에서 처음 봤던 공연. 뮌헨 국립 오페라 극장 음향에 조금 실망. 고음과 저음이 깎여 나가서 잘 안 들렸고, 소리가 전체적으로 내 기대치보다 조금 건조한 편. 그것만 빼면 그래도 소리 좋은 편이기는 했음. 우리나라에 이 정도 음향 발끝에라도 미치는 오페라 극장이 하나도 없어서…
  • 키릴 페트렌코 찬양.
  • ‹발퀴레›는 못 봄. 표 구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얘기 듣고, 이상기온으로 날씨도 더운데 싶어서 걍 숙소에서 안 나갔음. ㅡ,.ㅡㅋ

하이든 ‹오를란도 팔라디노› / 7월 25일

  • 프린츠레겐트 극장이 국립 극장 옆에 있는 줄 알았다가 차로 한참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우버(Uber) 택시 탔음. 택시 타기 직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가는 동안 무시무시한 폭우. 도착할 때쯤 보슬비로 바뀌는 운수 대통.
  • 극장 음향 훌륭했음.
  • 지휘자 아이버 볼튼 찬양.
  • 에우릴라 역 엘레나 산초 페레그 매력 터짐. 파스콸레 역 데이비드 포르틸로 역시 훌륭.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 / 7월 26일

  • 예매를 늦게 하는 바람에 '거의' 꼭대기층 맨 뒷자리. 예매할 때는 몰랐는데 입석이라서; 걍 바닥에 주저앉아서 음악만 들었음.
  • 좋은 자리와 큰 차이 없는 소리. 여기 생각보다 훨씬 좋은 극장이였어!!
  • 유럽 공연장에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라는 사람들, 꼭대기 층으로 가세요. 선남선녀들이 모여 있습니다. 노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높이까지 계단을 오를 체력이 있는 분들. 내 바로 앞에 샤랄라하게 차려 입은 언냐 둘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음.
  • 지휘자 오메르 메이르 벨버 훌륭함.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 7월 28일

  • 예매를 늦게 하는 바람에 꼭대기층. 원래 입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의자가 있는 입석. 자리에 앉으면 무대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냥 앉아서 음악만 들었음.
  • 역시 좋은 자리와 큰 차이 없는 소리. 완전 인형처럼 생긴 언냐 둘이 오른쪽에 있어서 힐끔거렸음.
  • 누가 나오는지 전혀 모르고 들었는데, 비올레타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저렇게 노래를 잘하나 했더니 디아나 담라우. 다른 출연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뮌헨인 점을 감안하면 그냥 평험했음. 지휘자 아셰르 피쉬는 무난.

야나체크 ‹죽음의 집에서› / 7월 30일

  • 오페라 자체를 처음 들어 봐서 이래 저래 신기. 시모네 영 지휘. 막장 연출가 프랑크 카스토르프 연출. 무대에서 쿵쾅거리지 않았던 걸로 연출은 대략 만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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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했으면 좋겠네요

반갑습니다.

야나체크와 베르디,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