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법부는 성역이 아니다] ‘독립성’의 병풍에 가려진 그들의 위선①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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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가 '사법개혁' 기획기사를 시작합니다. 첫번째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진영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풍조로 인해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도를 넘는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다.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박근혜 정부 사법권력의 수장이었던 양승태 대법원장이 작년 9월 퇴임사에서 한 말이다. 그가 언급한 헌법의 기본 원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저 말은 국민들에게 매우 위협적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성역’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된 권력은 곧 성역’이라고 누군가가 압축적으로 말했을 때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법 권력은 법적·제도적 무제약의 날개를 달고서 암묵적인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그것이 가능한 배경은 오늘날 대다수 문명사회가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건전성에 기여하는 불변의 원리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 ‘법치주의’ 근간이 바로 ‘사법 독립’이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인식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견고해지면서 국민들은 ‘사법부의 지배’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사법부의 지배’는 ‘법의 지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사법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따라 사법부가 부여받은 권력은 ‘법은 일정 수준의 일반성, 예견 가능성을 가져야 하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시켰을 때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은 부당한 특정 권력에 의해 무력화될 것이다.

이번 기획은 ‘과연 사법부가 성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사법부의 지배 또는 법관의 지배 실태를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최근의 판결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실제로 ‘법’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성역화’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논의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법적 규칙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교정적 정의’라는 것이 있다. 이는 법관들이 당사자들을 재판하는 것이 아닌 사건을 재판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이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원칙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재판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판사들이 이상할 정도로 치우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다룰 것은 재벌 또는 자본 권력에 대한 판사들의 편향적 판결에 관한 내용이다.

전·현직 판사를 비롯한 ‘법리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자본 권력에 대한 편향적 판결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부정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이 판결이라는 ‘결과’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판결문이든 재판기록이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자본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편향성은 ‘삼성’이라는 재벌 앞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근 있었던 몇 건의 삼성 관련 판결 또는 재판 과정을 면밀히 뜯어보면 삼성의 이익을 위해 판사가 창조해내는 다양한 논리들을 접할 수 있다.

작년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가 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효 청구 소송에서 함종식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문을 보자.

함 부장판사는 삼성의 합병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내고자 아래와 다양한 논리를 제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총수 일가의) 포괄적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 목적’이 있으므로 승계작업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설사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이라 하더라도 위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경영안전화 등의 효과가 삼성그룹과 각 계열사의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
“합병비율이 주주들에게 불리했다 하더라도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기업에 대한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정해놓고 판결문을 써내려가다 보니 논리적 비약이 곳곳에 눈에 띈다. 저런 논리를 따르면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 행위가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삼성그룹과 계열사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정당하고, 우리 사회에서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어떠한 수단도 용납된다.

당시 기자는 “이 민사재판 판결이 향후 있을 이 부회장의 수백억대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참작 요소를 제공할 것”이라는 취지로 썼는데, 이 부회장의 형사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이 판결문의 논리를 인용했는지와 무관하게 결과론적으로 이 분석은 맞아떨어졌다.

확실한 이분법적 판결을 내려야 하는 형사재판으로 들어가면 함 부장판사가 쓴 판결문 수준으로는 삼성에 면죄부를 주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이 부회장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정해버렸다. ‘승계작업’이라는 부정청탁의 배경이 제거돼야 제3자 뇌물 혐의가 무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형식 부장판사는 “현안들의 진행 과정에 따른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지, 이런 사정만 갖고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건넨 뇌물의 결과물로 ‘그룹 지배력 확보’라는 이 부회장의 현실적 이익이 있음을 명백히 인지하고도, 형식적인 법리로 이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 덕에 이 부회장은 핵심 혐의를 무죄로 인정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을 맡았던 김진동 부장판사는 ‘수동적 뇌물’이라는 신박한 논리를 제시했다. 이 역시 ‘최저형’이라는 결론을 내기 위한 ‘기술’에 해당한다.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한 것이다.”

이 부분은 김 부장판사가 핵심 감형 사유로 제시한 대목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처벌 기준이 가장 높은 것이 ‘50억 이상의 경우 징역 10년 이상’의 법정형 하한을 두고 있는 재산국외도피 혐의였다. 1심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빼돌린 것으로 인정된 액수는 특검이 공소 제기한 79억원 중 37억원이다. 국외로 빼돌린 돈이 50억원에 못 미치면 징역 5년 이상의 법정형 하한을 적용받을 수 있는데, 김 부장판사는 죄가 되는 국외도피액을 50억원 미만으로 조정해야 최저형을 선고할 수가 있다.

이런 재판의 경우 절차적인 부분에서도 판사의 편향성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이 부회장 사건 1심을 맡았던 형사합의33부의 이영훈 부장판사는 재판 초기 삼성 측 주장에 대한 특검의 반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태는 판사의 ‘재량권’ 행사의 측면에서 사건 당사자들에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이 부장판사는 자신의 장인과 최순실 일가의 인연을 이유로 이 재판을 더 이상 맡지 못하게 됐다.

김진동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 1심 선고 공판 TV 생중계 여부를 두고 “이재용 등 피고인의 선고 재판 촬영 중계로 실현될 수 있는 공공의 이익과 피고인들이 입게 될 회복하기 어려운 불이익 등 사익을 비교하면 중계를 허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분도 아주 흥미롭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입게 될 불이익이나 손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물론 없다.

재판 중계로 발생할 수 있는 이 부회장과 삼성의 불이익이나 손해, 즉 그들의 피해를 막아주는 것이 국민들이 재판을 볼 수 있는 공공의 이익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심지어 김 부장판사는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 사건’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정경유착 사건의 장본인이 재판 중계로 인해 보게 되는 피해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판사의 편향성은 이렇게 스스로를 논리적 모순에 빠뜨리기도 한다.

‘공범’ 가중처벌로 ‘재벌 비호’에 대한 도덕적 중압감을 덜어낼 수 있다

정형식 판사의 사례처럼 노골적인 판결도 있는 반면, 삼성에 굴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끔 핵심적인 ‘공범’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비열한 판결도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뇌물 및 직권남용 사건 1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김세윤 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최씨와 이 부회장이 주고받은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된 뇌물이 동일하기 때문에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려면 최씨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역시 무죄로 인정해야 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제3자 뇌물 혐의를 제외한 직접 뇌물수수 혐의 일부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중형이 합당한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최씨에게 중형을 선고함에 따라 ‘이재용의 삼성’에 면죄부를 준 부분이 자연스럽게 희석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판사는 초연하다. 왜냐하면 중형의 대상 역시 ‘범죄자’라는 점에서다.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판사로선 ‘재벌을 변호한다’는 데서 받을 수 있는 도덕적 중압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다.

최씨 입장에서는 “‘공범’인 이재용은 석방되는데, 왜 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혐의 대비 형량을 엄밀히 따져본다면 최씨로선 상당히 억울한 부분이다.

검찰이 적용한 뇌물액수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적어도 이 재판에서는 김 부장판사의 ‘방패막이’가 된 꼴이다. 롯데는 삼성보다 힘이 약하다.

이처럼 판사의 편향된 재량은 ‘양형’이라는 재판의 최종적인 결과에 있어 상당한 불평등을 낳기도 한다.

자본권력-노동자 분쟁을 바라보는 판사의 태도

임금이나 해고 문제와 같은 전형적인 자본권력-노동자 갈등을 바라보는 판사의 태도는 어떨까?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한번 살펴보자.

“쌍용차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이어서 무효로 볼 수 없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규모 등은 경영 판단의 몫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투자와 연구, 신차 개발 소홀로 경쟁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주력 차종의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쌍용차가 처했던 경영위기는 계속적, 구조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영진의 실책으로 인한 경영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재판부 판단이다. 이는 자본권력이 오랜 세월 동안 노동자를 일개 소모품으로 간주해온 인식과 일치한다.

작년 부산고법에서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반대 파업을 벌였던 노동자들이 사측에 90억원, 20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2004년 9월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공장의 사내하청 모두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2010년 대법원 역시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회사의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판결을 한 셈이다.

이런 판결을 할 때 판사는 분쟁 발생 과정을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소송이 제기된 ‘사건’만 갖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사건’의 원인인 자본권력의 불법 행위 자체를 별건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패소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걸 아는 자본권력은 이런 소송을 노동자 압박용으로 남발한다. 판사는 자본권력에 유리한 선례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양승태 시절’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통상임금 소송에서 제시한 ‘신의칙’이라는 논리는 매우 놀랍다.

갑을오토텍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상여금에 정기성, 고정성 등이 있다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사측이 통상임금을 지급해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는 경우라면 통상임금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줘야 할 돈을 ‘회사가 어려우면’ 안 줘도 된다는 말이다.

이런식으로 판사들은 “노동자를 유린하더라도 ‘경영상 어려움’을 증명하기만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자본권력에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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