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도 난민이 될 뻔한 사연
우선 ‘우리’가 누구인지 따져보자. 글 쓰는 이가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것은 그 글을 읽는 이가 자신과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 한글로 적히고 대중들이 읽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 글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현재 대한민국 영토 내에 사는 사람 100명 가운데 대략 4명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100명 가운데 대략 5명은 외국에서 살고 있고 그 두 배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들은 외국국적을 가졌지만 부모 또는 조부모가 한때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재외동포’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으나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글로 쓰인 이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 또는 대한민국 국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우리’에 포함되는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말 밖에 할 줄 모르지만 부모가 외국인 또는 무국적자라서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못한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질문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우리’를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난민’은 국적과 체류하고 있는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난민(難民)’을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또는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정의하는데, 한글을 쓰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적인 개념과 전혀 다르다. 대한민국의 ‘난민법’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따라 난민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
즉 ‘박해’를 받을 ‘공포’로 인해 자기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뜻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전적 정의에 따른 ‘전쟁’이나 ‘재난’, ‘가난’은 법에서 정하는 ‘난민’이 발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람이 난민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은 아니다. 선진적인 난민보호제도를 갖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을 피해 온 사람을 ‘전쟁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국제법이나 대한민국 난민법의 수준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전쟁이나 계엄선포 가운데 하나라도 벌어졌다면 우리도 피신할 수밖에
가짜 난민·거칠고 위험한 한국인이라고 쫓아낸다면…
하여간 현재의 법적 기준에 따르면 4천여 년 전 노예생활을 피해 갈라진 홍해 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도망쳐 나온 모세와 히브리인들, 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를 피해 유럽을 떠난 유대인·성소수자·사회주의자들, 과학자 아인슈타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한국전쟁 당시 종교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클로제 선수, 경기장이나 공연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위아더챔피언’이라는 노래를 부른 그룹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 유엔의 시민사회 연계를 담당하는 유엔 비정부연락사무소 위원으로 선출된 광주대 욤비 토나 교수가 모두 난민이다. 게다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독립운동을 위해 나라를 떠났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회부의장 신익희,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모두 중국,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정치적 망명 즉 난민의 시기를 보내고 돌아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었다. 난민들을 받아 주는 나라가 없어서 이들이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면 세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난민’에 관한 사연은 사실 먼 나라 또는 먼 과거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작년 한 해 한반도에서는 전쟁위기가 극도로 고조되고 있었다. 유엔의 경제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시험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은 ‘분노와 화염’과 같은 선제공격을 경고하였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걱정으로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일본은 한반도 전쟁발발과 대량난민 유입에 대한 대비책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아소 부총리는 ‘저편에서 일본에 난민이 몰려온다’, ‘10만 명 단위를 어디에 수용할 것인가’, ‘경찰이 대응해 불법입국으로 체포할지, 자위대가 방위출동 해 사살할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좋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게다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국군기무사령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무장병력 4800여명을 동원하고, 계엄 선포와 함께 서울 시내에 탱크 200여대, 장갑차 550여대 등을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에 대한 발포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방에 배치된 병력을 전국 각지로 옮겨 국민을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상상 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전쟁이나 계엄선포가 실제로 벌어졌다면? 물론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로 인해 침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사는 모든 곳이 방사능에 오염되고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나갔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아이들과 같이 잡혀가 고문당할 위기에 처했다면? 선택지는 그 일들을 그대로 겪다 죽거나, 일단 떠나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 밖에 없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가까운 나라로 피신해 가 있어도 마냥 살기 좋지 많은 않을게다. 그 나라 국민들 가운데 이른바 ‘혐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거칠고 위험한 한국인’, ‘시끄럽고 매너 없는 한국인’, ‘잠재적 성범죄자 한국인 남성’ 등의 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다. 같이 떠나오지 못한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이것저것 가릴 겨를도 없이 저가항공을 타고 도착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이니 추방해야 한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당장 거처도 마련하기 어려워 일자리도 구해야 하는데, 막상 도착한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이 나를 쫓아낼 구실만 찾고 있다면, 그 와중에 미국이나 캐나다, 노르웨이나 핀란드가 난민들에게 좀 더 관대하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비행기 표 구하는 대로 다시 떠나려고 하지 않을까?
공포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또 다른 공포 안기기
말레이시아에서 머물다가 지금 제주도에 와 있는 예멘출신 난민들 가운데는 가족이 무참히 성폭행 당하고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직도 매일 밤 그런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장마철 빗소리를 매일 밤 겁에 질리게 하던 총소리로 착각하고 놀래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안전한 나라,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참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나라, 게다가 박해를 피해 피난 온 탈북인이나 난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에 도착했다는 믿음에 안도하고 있을까?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 이렇게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기여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믿고 왔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테러주의자’, ‘성범죄자’로 몰아세우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박해의 공포를 피해 피난해 온 곳에서 또 다른 종류의 공포를 겪게 된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공포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 호의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려고 한다. 하지만 공포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또 다른 공포와 절망을 안긴다면 그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수단이든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유럽의 경우를 잘 따져 보면 지난 70여 년 간 대부분의 나라들이 꾸준히 난민을 받아왔지만,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나라에서만 난민으로 인한 ‘문제’가 특별히 보도되었다. 공포를 피하고 피난처를 구하기 위해 온 낯선 사람들에게 그 사회가 환대와 호의를 제공했는지 아니면 공포와 절망만 더해 주었는지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우리’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때가 왔다.
- 기사 :김철효 전북대 강사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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