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으로 맞서지 말고 지대개혁으로 연대해야 한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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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의 경제칼럼입니다.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힘들어진다고 하는데요, 정말 문제는 임대료 즉 '월세'가 아닐까요. 민중의소리 스팀지기가 정말 소개해 드리고 싶었던 기사입니다. 전문 그대로 올립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예쁜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상인들은 이 예쁜 마을을 사랑했다. 이 마을 식당 주인들은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을 개발했고, 카페 주인들은 아름다운 음악 공연을 열었다.

입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침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예쁜 마을을 찾았다. 마을을 사랑했던 상인들은 뿌듯했다. 마침내 자신들이 아꼈던 마을 상권을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주인이 찾아와 월세를 갑절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이들에게는 단번에 오른 월세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노력 끝에 마을만의 문화를 만들어 장사가 잘 되려는 판에,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은 쓸쓸히 그 마을을 떠나야 했다.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그 마을에는 월세를 감당할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로 가득 채워졌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됐던 옛 도심이 번성해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되레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형성했던 상인들의 노력이 결국 상인들을 내쫓는 결과를 야기한 젠트리피케이션은 홍대입구와 가로수길 등 전국 곳곳에서 지금 진행 중이다.

유시민 작가는 인류 역사상 그걸 막는 방법은 없었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시화된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에 대한 전망은 영세상공인과 노동자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을 유발했다. 300년 동안 유지됐던 자본주의가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할통치, 즉 민중들을 둘로 갈라놓고 피터지게 싸우도록 하는 그 모습이 재연된 것이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도 지당하고, “갑자기 최저임금을 올리면 모두 망하라는 이야기냐?”라는 영세상공인들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면 정녕 이 싸움은 노동자나 영세상공인들 중 누구 한 쪽이 죽어야 해결될까? 아니면 양자의 연대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월세 vs 최저임금

2010년 시간당 411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8년 뒤인 2018년 7530원으로 올랐다. 인상률은 83% 정도다. 이 수치를 기억하고 2016년 3월 <머니투데이>가 보도한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기사 제목은 200만원 월세가 2년 새 400만원…잔인한 임대료 풍선이었다.

우리나라는 일정 기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월세도 일정 수준(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란 게 있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가면 이 법은 각종 편법에 밀려 제 기능을 못한다. <머니투데이>가 기사에서 밝혔듯이 2년 만에 갑절로 오른 임대료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4~2016년 3년 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된 마포구 상수동 일대 상가 평균 임대료 상승률은 42.8%나 됐다. 같은 홍대의 임대료 상승률도 30%를 넘었다(31.3%).

다른 수치를 보자. 이 수치는 <경향신문>이 취재해 보도한 ‘최저임금 갈등의 진실, 불로소득엔 관대하고 노동소득엔 인색한 사회’에 나온 것이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자영업자 세 곳의 지출 구조는 이렇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매월 1670만 원을 지출한다. 이 중 인건비 비중은 26.9%(450만 원)이고 월세 비중은 19.9%(330만 원)이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의 경우 월 지출액은 2630만 원인데 이 가운데 인건비 비중은 8%(210만 원)에 불과했고 월세 비중은 15.2%(400만 원)이나 됐다. 월세 비중이 되레 높았다.

세 번째 케이스 편의점은 인건비 비중이 12.7%(500만 원)로 월세 비중 2.1%(80만 원)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 편의점은 본사에 내는 로열티와 카드수수료 비중이 7.7%(302만 원)나 됐다.

숫자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 숫자들을 종합해보면 자영업자를 극한으로 내모는 범인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모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또 다른 범인인 월세는 짓고 있는 죄에 비해 너무나 비판을 덜 받는다.

본질적인 문제는 연대의 철학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할 수치가 있다. 최저임금과 임대료는 자영업자 입장에는 모두 비용이다. 그런데 지출한 비용이 다시 자영업자의 매출로 돌아올 확률을 따지면 어느 쪽이 진정한 부담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처가 발표한 ‘소득계층별 소비성향 분석’이라는 자료를 보자. 이 자료에는 소득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이라는 약간 생소한 숫자가 나온다. 통계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평균소비성향은 112%였고, 중산층은 76.2%, 고소득층은 62.8%로 나타났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만약 누군가에게 100만 원의 새로운 소득이 생긴다면 저소득층은 이 중 무려 112만 원을 쓴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생긴 돈은 100만 원인데 쓰는 돈이 더 늘어난다. 반면 고소득층으로 넘어가면 이 수치는 62만 원으로 뚝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들은 당장 써야할 돈이 급히 필요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로 이어진다. 당장 써야 할 돈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월세와 임금은 자영업자 입장에서 모두 비용이지만 그 돈을 지출하면 돌아오는 회수율이 다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당연히 저소득층이다. 이들에게 100만 원을 쥐어주면 112만 원을 쓴다. 이 돈은 당연히 자영업자들의 매출로 이어진다.

월세를 걷어가는 건물주는 한국에서 조물주보다 높으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당연히 고소득층으로 분류될 텐데 이들에게 월세로 100만 원을 쥐어주면 돌아오는 돈은 62만 원 뿐이다. 그 차이가 갑절에 이른다. 이 차이를 안다면 자영업자가 줄여야 할 비용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월세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계산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을’들인 노동자와 영세상공인이 최저임금 문제로 다투면 우리는 영원히 지배자들의 분할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네 가게에서 대형 쇼핑몰까지 임대료를 걷어가는 이들이 갑이다.

만약 최저임금 인상에 격렬히 반대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늦춘다고 가정해보자. 그게 얼마나 늦춰지겠나? 지난 대선 때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홍준표 후보조차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맞추겠다고 공약했다.

건전보수를 표방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나 극중주의를 주장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어도 마찬가지다. 이 둘의 공약은 문재인 후보와 다를 바 없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결국 온다. 아무리 그 시기를 늦춰봐야 벌 수 있는 시간은 1년에서 2년이다. 재벌들이 골목상권을 점령한 헬조선에서 고작 1, 2년 안에 영세상공인들이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장담하는데 을들끼리 치고받는 한 1, 2년의 유예기간 동안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모두 살 길이 있다. 을들끼리 연대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으로 치고받지 말고, 고소득층만 살찌우는 지대를 개혁하는 것이다. 노동자와 영세상공인 모두 지대개혁에 팔을 걷어 부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해야 한다. 이러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올라도 노동자도 살고 자영업자도 사는 길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지대개혁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지대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국민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의 끊임없는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주장은 매우 옳다. 지금은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려는 목소리에 솔깃할 때가 아니다. 노동자와 영세상공인의 굳건한 연대로 지대의 모순을 함께 극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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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들끼리 옥신각신 할 때가 아니라 부당하게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의 수익을 나눠야 합니다.

없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이 이상한? 세태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네요.

^^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죠 ㅎㅎ

지대에서 얻는 불로소득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의 꿈마저 건물주라니 말 다했지 뭡니까. 지대로 얻는 이익을 세금으로 많이 걷어서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사람들이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지대개혁'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회적 토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임차인과 탐욕스러운 임대인의 대결구도로 프레이밍하는게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임대인이 월세소득이 유일한 은퇴한 노인일수도 있고, 임차인이 편의점 몇개를 거느리는 대형 사업자일수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계급 전체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계량경제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탑클래스 경제학자들의 연구결과 중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수요를 감소시켜 총효용을 낮춘다는 것들도 많습니다
부동산 투자로 불로소득 얻는게 주식투자나 코인투자로 불로소득 얻는것과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고 특히 주거권을 침해하지 않는 상업용 부동산은 더욱 그렇죠. 월세가 부담된다면 융자받아서 매입한 상가에서 경영하면 되고, 그게 감당이 안된다면 애초에 그런 규모의 경영을 하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자의 수익을 정치논리로 사후적으로 제약하는건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나라는 경쟁 자체를 보는해야 하지, 경쟁자 자체를 보호해서는 총효용을 감소시킬 뿐이지 않나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여러 논점이 있네요. 일단 개별 사례로 들어가는 문제는 모든 정책 문제에 걸립니다. 그 어떤 정책에서도 '피해자'가 나올 수 있고 '악용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의 사각지대를 구제하는 방안은 언제나 필요하고 세밀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계급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대로 논쟁지점이 있는 분야입니다. 그 논쟁과는 별개로 한국은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가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 인상 자체가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수요를 감소시키느냐의 문제도 역시 논쟁지점입니다. 오바마 시절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올린 뒤 그에 대한 영향을 놓고 아직도 미국 경제학자들이 논쟁 중입니다.

부동산을 포함한 투자수익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에서 부동산을 포함한 '지대'를 통한 부의 집중이 과연 올바른가 혹은 노동소득 분배율을 낮추고 나아가 투자와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또한 논쟁지점입니다.

마침 오늘 한겨레에 괜찮은 칼럼이 나와서 소개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9914.html?_fr=mt5

여러 의견들이 토론되고 합의되면서 사회는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i enjoy your post! thanks

Good post. Really informative

헌법 제121조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저 조항이 만들어졌을 때의 산업 상황을 생각해보면, 상업과 상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군요. 늘 관심과 댓글 감사합니다. :)

저도 항상 비슷한 생각을 했던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임대료의 많은 퍼센테이지가 세금으로 들어가니 막상 이자와 재산세 관리비 등등 을 계산하면 음
아 세금을 정말... 잘써주셨으면 좋겠다 라는결론이 나왔어요 (정말 잘모르는 저만의생각입니다)

^^; 임대료가 세금으로 많이 들어간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고 그 반대의 의견도 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관련 논쟁도 소개해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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