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물주가 꿈이 되어버린 시대, 폭력이 폭력을 불렀다

in #kr6 years ago

지난 6월 7일 일명 서촌이라 불리는 종로구 체부동에 위치한 궁중족발 임차상인이 건물주를 찾아가 폭행했다. 임차상인은 발부된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져 구치소에 수감됐다. 분쟁상황에서, 더군다나 건물주와의 권력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임차상인이 폭행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궁중족발 임차상인은 왜 건물주를 폭행했을까?

일상에서 마주했던 폭력

궁중족발은 2009년부터 현 위치에서 장사를 시작해 햇수로 10년 째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치열하고 고단하지만 평범했던 일상에 균열이 찾아온 것은 2016년 건물주가 바뀌면서부터였다. 바뀐 건물주는 기존 300만원이었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나가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2017년 10월부터 용역깡패를 동원한 강제집행이 시작됐다. 분쟁소식이 알려지고 건물주의 악행에 분노한 사람들이 궁중족발에 모이기 시작했다. 강제집행 소식에 달려와 집행을 함께 막았고 궁중족발 내부에서 잠을 청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2017년 11월 9일 3차 강제집행이 있던 날 가게 앞 도로 위엔 혈흔이 선명했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건물주가 고용한 용역이 궁중족발 임차상인을 끌어내던 중 임차상인의 손가락 4개가 반 절단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잔인한 폭력이었다. 하지만 당시 임차상인에게 가해진, 건물주가 용역을 고용하는 것을 법원이 허가하고 집행과정에서 폭력을 경찰이 방관한, 구조적인 폭력에 대한 책임은 집행관에게 내려진 징계와 과태료가 전부였다.

뿐만 아니다. 12번의 강제집행을 겪으면서 임차상인과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해 함께 했던 사람들은 건물주로부터의 모욕과 협박, 용역으로부터의 물리적 폭력을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했다.

2018년 6월 4일 새벽 3시경, 12번째 강제집행이 강행됐다. 건물주는 지게차를 동원해 궁중족발 건물외벽을 부쉈다. 건물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폭력이었다. 집행이 완료되고 가게 위 걸려있던 간판이 떼어졌다. 임차상인은 10년 장사해 온 내 가게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됐다. 궁중족발 임차상인의 삶이 송두리째 철거된 것이다.

집행 다음날, 궁중족발 임차상인은 건물주 소유의 다른 건물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던 중 건물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건물주는 ‘자살 쇼 하지마라’, ‘넌 진작 감옥 갔어야 돼’라는 폭언을 내뱉었고 궁중족발에 함께하는 특정인을 지목하며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건물주의 비아냥거림과 폭언은 처음이 아니었다. 분쟁이 시작된 후 가을, 겨울, 봄, 여름, 사계절에 걸쳐 계속돼 왔다. 임차상인과 궁중족발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소‧고발 역시 끊임없이 자행돼 왔다. 통화가 끝난 후 궁중족발 임차상인이 건물주를 찾아갔고 발생되지 않았어도 될 폭행이 발생됐다.

조물주 위 ‘갓’물주와 상가임대차보호법

사태가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임차상인들의 생존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기 때문이다.

현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상인들의 장사할 권리를 5년까지만 보호한다. 장사를 시작 하고 5년이 지난 임차상인들에게 계속 장사 할 권리는 없다. 건물주는 궁중족발 임차상인에게 4배의 임대료를 요구했다. 현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상한률을 9%(올 초 5%로 개정)로 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5년까지만 적용하고 있다. 2009년부터 장사를 시작한 궁중족발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법원에서 산출한 궁중족발의 적정 임대료는 기존 임대료 300만원과 얼마 차이 없는 304만원 이었지만 건물주가 1,200만원을 달라면 줘야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5년 이후 임대료를 9%올리던 900%올리던 건물주 편의에 임차상인들의 생존권이 좌우되는 상황에 궁중족발이 놓였던 것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5년이라는 기간 외에도 환산보증금,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 이상일 경우 기간과 상관없이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대 국회에만 23개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올라가있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동네가 뜨니 폭탄임대료를 제시해 기존 임차상인들을 쫓아내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은 궁중족발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차상인이 5년 이상 장사하기 위해서 착한 건물주를 만나는 행운을 바래야 하는 우리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임대차분쟁현장을 비롯한 수많은 개발현장에서 법은 힘없는 사람 곁에 서지 않는다. 재개발의 경우 조합과 개발사 편에 그리고 임대차분쟁의 경우 건물주 편에 서는 것이 현실이다. 법이 편들어 주는 힘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재빨리 쫓아내야 하는 힘없는 사람들과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이고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합법적으로 구입한 폭력을 이용해 사람의 삶을 강제로 철거한다. 조물주 위의 ‘갓’물주, 초등학생의 꿈이 건물주가 되어버린, 잘못되었지만 바로잡지 않고 방치되어 온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벼랑 끝으로 내모는 비극을 멈추어야 한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이미 땅이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구입한다. 소위 수저론 상위계층인 ‘금 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난 아이는 학령기를 마치기도 전에 몇 십 채의 집과 건물을 소유하게 된다. 투기꾼들의 탐욕이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보호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이다.

그 결과 쌀값이 50배 오르는 동안 땅값은 3,000배가 올랐고 투기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게 됐다.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적어도 개발지역 세입자들이나 임차상인들은 아닐 것이다. 잘못 된 법을 방치해 온 입법기관과 행정기관 그리고 집행을 허가해 온 사법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잘못 된 법을 악용하며 폭력을 동원해 사람의 삶을 무너뜨린 건물주 역시 공범이다.

궁중족발의 또 다른 임차상인(아내)은 사태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름만 임대차보호법이지 전혀 저희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벼랑 끝으로 모는 법’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저희는 궁중족발로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궁중족발의 비극을 멈추는 방법은 명확하다. 방치되어 온 구조적인 폭력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전면금지하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임차상인들의 맘 편히 장사할 권리를 중심으로 조속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 리스팀과 보팅으로 이 글을 응원해주세요
  • 민중의소리 스팀잇 공식 계정 (@vop-news)을 팔로우 해주세요
  • 여러분의 응원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
Sort:  


정말 끔찍합니다. 경찰은 사인간의 사안이라 손 놓고 있고 ..

웬일입니까이게..............참나
미쳤네 정말

이 나라 법률이 기득권층만 보호할 줄 알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약자는 보호할 줄 모르니

기사 읽는데 화가나네요.
임차인분 몸과 마음 전부 망가졌겠네요. 얼른 치유되시길 빕니다.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손가락 잘라놓고 벌금형? 미친...
용역 동원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3811.50
ETH 2617.28
USDT 1.00
SBD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