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저임금 삭감’에 절망한 특성화고 졸업생의 항변

in #kr7 years ago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지역의 한 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학선(20)씨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강행한 국회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다시 그날을 지났다. 구의역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이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죽은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19살. 벅찬 청춘의 페이지를 채 펴보기도 전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도 못한 채 죽어간 지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또, 꽃다운 청춘, 수많은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콜수를 다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끝끝내 전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자가 죽었다. 생일을 닷새 앞두고 살벌한 프레스 기계에 끼어 열여덟 살 제주 현장실습생 노동자가 죽었다. 이마트의 무빙워크에서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노동자가 죽었다. 불거지지 않아서 제 몫의 이름을 갖지 못한 죽음들까지 잇따랐다.

나는 국가에 대해 배운 적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배웠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 헌법 제32조 1항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국가가 모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그 최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참만에 전년 대비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리가 되었다. 16.4%가 올랐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색해졌다. 집권여당은 '적폐정당'과 손잡고 '최저임금 개악안'을 처리해버렸다. 160명이나 되는 똑똑한 어른들이 제멋대로 최저시급을 낮췄다. 아니, 최저시급을 낮춘 게 아니라 '최저시급이 최고임금'인 600만 노동자들의 삶을 추락시켰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고스란히 노출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목을 졸랐다.

결국 국회는 우리 노동자의 '목숨 값'을 계산기에 넣어 두드리며 헌법 정신을 마음대로 짓밟았다. 또다시, 힘 있는 자본가의 편에 서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라는 당연하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앗아갔다.

사실 기대했었다.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최저임금이지만 나는 그나마라도, 조금이나마 오른 것에 기뻐했다. 이제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꿈을 꿀 여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똑똑한 어른들이 내가 먹고 자고 일 하는데 꼭 필요한 식대, 교통비, 기숙사비 등 모든 후생비와 내가 두배, 세배 땀흘려 가며 번 상여금까지도 최저시급에 포함할거라고 정했다. 나는 원한적도 없는데. 더군다나 앞으로도 내가 바라지 않는 변경이 가능하도록 정했다.

그들이 손쉽게 박아 넣은 몇글자 때문에 최저시급이 올라도 내 월급은 오르지 않을 노릇이다. 되려 내려갈지를 걱정해야한다. 그야말로 겨우 밥만 먹고, 숨만 쉬면서 '연명'하라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은 또다시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다. 어쩌면 '인간다운 삶'이란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서글프게도 '최저임금법 개악안'이 통과된 날은 구의역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이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죽은 날이었다. 벅찬 청춘의 페이지를 채 펴보기도 전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도 못한 채 차갑게 식어간 날이었다.

나는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우선인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떠올린다. 내 또래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청춘에 죽음을 부추긴 그 탐욕과 이기심을 떠올려본다.

여전히 국회는 온갖 지식과 논리들을 들이밀면서 변명한다. 불가피하다고, 중소기업이 망할 것이라고, 소상공인이 늪에 빠질 거라고.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대기업의 단가 만행을 모른 채 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힘들게 하는 건물주의 월세 만행과 가맹점 본점의 갑질 만행에도 손을 놓고 있다.

그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에, 그 논리에 편승해 힘없고 돈 없는 을들의 싸움만을 부추기고 있다. 꼭 서로 뜯고 할퀴며 제풀에 지쳐 죽어가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나는 세상에 나서면서부터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배신감을 느꼈다. 두려움을 느꼈다.

비로소 깨닫는다. 아, 나는 거짓을 배웠구나.

다시 그날을 지났다. 구의역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이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죽은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19살. 벅찬 청춘의 페이지를 채 펴보기도 전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도 못한 채 죽어간 지도 2년이 지났다.

노동자의 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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