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국적 사회적경제의 ‘투쟁’을 위해-[포획된 저항]에서 말잇기: 첫번째

in #kr7 years ago (edited)

한국적 사회적경제의 ‘투쟁’을 위해-[포획된 저항]에서 말잇기: 첫번째

1. 책에 대해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서 사회적 경제

<포획된 저항>은 그동안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을 실증적인 증거로 증명한다. 우선 사회적 경제라고 불리는 것이 저항의 언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를 보완하고 나아가 이를 연장시키는 헤게모니 전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가져 오지만 푸코의 분석이 가진 특유의 불가능성을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으로 좀 더 역동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낸다(55). 이 부분은 아마도 논의의 불가피성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운동적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읽힌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방법론은 어휘분석이다. 최근 빅데이터 분석방법론으로 등장한 어휘분석은 단어의 빈도와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미관계망을 통해서 특정 담론이 가지고 있는 가치적 연관성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서 의미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성과 새로운 주체성의 탄생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급격한 불평등의 증가와 이에 따른 실업률의 증가는 통치 재생산에 위협이 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자리 정책이 핵심인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통치성의 정당성 위기를 드러내는 단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비판적 영역 혹은 독립적 영역을 자처했던 시민사회가 새로운 기업가적 주체성으로 무장해 등장한다. 그것이 사회적 경제의 주체인 셈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과거 사회변혁 운동에 복무했던 운동권들이 새로운 기업가적 주체성으로 무장해 나타났다.

애초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시장의 영역을 확대시킴으로서, 자본 축적을 위한 ‘위상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대추구 역시, 도시 공간을 비틀어냄으로서 만들어낸 위상의 낙차에 다름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산된 축적은 당연히 잔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사회 다수를 비경제적 주체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경제적 영역으로 재활성화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이고,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회적 경제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재영토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1부에서 다루는 내용).

정부가 주도한 사회적 경제

<포획된 저항>은 한국의 사회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국가 주도로 제도화된데다 직접 취약 계층을 위한 유급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활동 자체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차이”(19)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의 경우 1997년 경제 위기에 대응하면서 “사회적 기업은 무엇보다 실업자와 근로 빈곤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출발”(65)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주요한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가 기존의 자활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특징이다. 게다가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2010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한 자본시장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사회적 기업의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은 한국 사회 공동체 구축에 절대적인 역할은 물론, 한국자본주의 존립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다”(81 재인용)라는 주장은 시민사회 영역의 적극적인 요구와는 별개로 이를 수용하게된 정부의 논리가 ‘통치의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라는 필자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증명한다.

이렇게 정부의 주도성과 시민사회의 적극적 수용에 따라 “한국의 사회적 기업 운동은 빈곤에 대응한 영미식 자유주의의 문제 틀과 사회적 배제에 대응한 유럽식 사회적 연대의 문제 틀의 혼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199) 이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윤리를 내면화함으로서 사회적 ‘기업’으로 변이되고, 각종 경영 관리 지식체계나 경영 기법들이 사회적 기업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220). 그러면, 정부가 통치성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사회적 경제 혹은 사회적 기업이 어째서 정부의 수행성이라는 차원에서 구성되지 않고 기업의 효율성이라는 차원에서 구성되었을까. 즉, 사회적 기업의 ‘기업화’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도였을까 아니면 사회적 경제 주체의 적극적인 기업화 전략에 따른 것일까?

여성성의 포획은 자연스러운가

<포획된 저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면, 방법론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2부의 담론 분석이다. 세부적인 사항은 책에 소개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통상적으로 한국의 사회적 경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때 제기될 만한 특징들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하나 하나 소개하진 않는다. 다만 전반적인 구성이 사회적 기업의 ‘기업화’라는 맥락을 증명하면서 이를 바로 젠더의 문제설정으로 연결시키고 다시 사회적 경제 주체의 ‘경영 윤리’ 내면화로 이어가는 것과 관련해 의문이 드는 부분은 있다.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을 막론하고 성공이라는 시장 경제의 논리로 사회적 기업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시장경제의 윤리가 사회적 기업에 내면화된다. 그런데 사회적 기업을 규정하는 담론이 소위 ‘돌봄의 언어’와 연결되는 점과 관련하여 젠더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은 논쟁적이다. 실제로 많은 사회적 경제의 언어가 그동안 지배적으로 여성성을 대표하는 언어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첫째 여성이 자아 존중감을 고취한다는 점 둘째,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점, 셋째, 사회적 기업은 여성 노동 사회화의 일환이라서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133)이 강조된다. 이 과정에서 진보세력 조차 기존 시장경제의 성별 위계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억압되어온 여성적 가치를 복원한다는 적극적인 의미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비의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다시 하위 시장의 주체로 포섭하는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된다.

문제는 젠더라는 필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약자들의 재주체화하는 경로가 필수적인가라는 점이다. 즉 한국적 현상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사회적 경제의 재포섭 프로젝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인가 하는 점이다. 왜 이 부분이 쟁점이 될 수 있냐면 결국 저항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해서 한국의 일각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페미니즘 경제학(윌리엄-깁슨 류의)의 의미를 판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포섭 전략의 부분으로 여성성을 매개로 한다는 주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보편적인 저항의 방식, 즉 탈젠더화된 저항의 방식이 좀 더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의도치 않게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수동적인 지위에 놓게 될 수도 있다.(좀 더 직접적인 비유로 포주의 언어가 여성성의 언어라면 이를 여성성의 발현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것으로, 주체의 포섭과는 다른 맥락에서 해석할 여지는 없는가라는 점이다. 약자는 저항할 수 없는 주체인가라는 차이를 위한 질문을 던져본다)

대항 헤게모니 전략

그러면 <포획된저항>의 대안은 뭘까. “진보적 시민운동 진영이 사회적 기업을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기고 의도하지 않게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오류에 빠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를 시장을 통해 일체의 비시장 영역을 억압하고 침식하는 체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283 라는 평가에서 시작해보자.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재영토화의 과정이라면 당연히 시장경제의 영역과 사회적 경제의 영역 간에 치열한 영토 전쟁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전쟁은 가시적인 영토의 점령이 아니라(과거의 식민지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경제의 영역과 사회적경제의 영역 간에 비가시적인 권력의 위계를 만듦으로서 재영토화 한다(제국의 전략으로). 따라서 독립 전쟁이 아니라 반제국 전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협치 같은 상상계의 언어가 아니라 힘들 사이의 투쟁과 경합, 적대 같은 실재의 언어가 필요”(286)하고 “대항 헤게모니 전략”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가 바라는 사회적 경제의 실천에서 의도적으로 어긋나고 이를 통해 국가의 관리 권한에 도전하는 형태를 가져본다. 필자는 이를 사회적 경제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방안이지만, 사회적 경제의 정치를 좀 더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니, 그런 예시가 필요하다. 가시적인 전략이 보이지 않으면, 어렵게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소수의 주체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고사시키지 않기 위해 사회적 경제 영역을 포괄하는 ‘사회 영역’ 전반의 지지/연대 전략도 필요할 것이다. 어떤 것들을 이런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의 대항 헤게모니 전략을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글은 두번째 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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