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ribe and dried fish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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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부로 출근을 시작했다. 직원은 나까지 다섯 명. 그중 직원 셋의 나이는 55, 61, 64세로, 제일 나이가 많은 출판부장은 내년이 정년이었다. 그는 출판 업무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교직원이었고 정년이 임박해 한직(?)으로 밀려난 거라고 약간 침울해했지만, 출판 업무에 흥미를 보이며 1년이라도 재밌게 일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했다.

편집 업무를 도맡고 있던 나의 상사, 과장은 61세였고 제작과 영업, 경리 업무를 도맡은 주임은 55세로 가장 젊었다. 부장을 제외하면 그 둘이 기존에 대학 출판부에서 일하던 실무 인력의 전부였다. 거기에 편집자로 새로 뽑힌 나, 그리고 제작, 영업자로 새로 뽑힌 나의 남자 동료가 하나 있어 총 네 명이 실무진이 되었다. 공익근무 남자아이 한 명과 아르바이트 여학생 한 명도 있긴 했다.

편집 과장은 첫출근한 내 손에 활자와 동자 등을 꼭 쥐어주며, 지금은 다 컴퓨터로 일하지만 편집자라면 이런 유물은 기념으로라도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했다. 컴퓨터 조판이 보편화된 그때도 그는 여전히 글씨 크기의 단위로 ‘포인트’가 아닌 ‘급’ 혹은 ‘급수’라는 단위를 고집했다.

점심시간에는 625전쟁 경험담이 꽃을 피웠다. '왜정' 때 얘기는 안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매일 점심은 모두가 봉고차를 타고 나가 함께 먹었고, 점심값은 인쇄소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출판부는 세 군데 인쇄소를 정해두고 돌아가며 책을 찍었는데, 나랑 같이 들어온, 다른 출판사에서 제작을 하던 젊은 직원은 말도 안 되는 단가라고 궁시렁거렸다. 왠지 나의 예전 출판사 제작부장의 얼굴도 떠올랐다. 어쨌든 우리는 반강제로 매일 푸짐한 점심을 공짜로 먹는 수밖에 없었다.

명절이 되자 백화점에서 꽤 비쌀 것 같은 선물 세트들이 집주소로 배달되었다. 출근해서 상사에게 따지자, 군말 말고 조용히 받아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낚시광이자 바둑광이자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귀여운 할아버지였던 상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ㅇㅇ인쇄소 김상무는 건어물 세트를 돌렸지? 내가 우리집이 건어물 상가를 한다는 말을 미처 안 했나보더라고.”

그랬다. 그는 단칸 셋방 신랑으로 이 출판부에 입사해, 삼십여 년 근속한 현재, 부인은 유치원을 차려 원장을 하고, 자신은 부업으로 남대문 시장 건어물 상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겼다. 교직원들은 주인 없는 학교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곧, 주인 없는 돈, 주인없는 등록금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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