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대기업 신문 스크랩 알바

in #kr4 years ago (edited)

벌써 네 번째 직장 이야기까지 썼다. 이제 다섯, 여섯, 일곱 번째 직장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쓸 엄두가 잘 안 난다.

앞의 네 직장들 이야기를 쓰는 것도 꽤 힘들었다. 더구나 뒤의 세 직장들은… 십년 이상 세월이 흐른 기억임에도, 아직까지도 그때를 떠올리면 당시 감정들이 생생하게 추체험되는 것 같아서 괴롭다. 그걸 기록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으름이 생긴다.

분명 즐거움을 주기도 했던 곳들인데, 즐거웠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왜 괴로운 기억만 주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까?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떨까 싶다. 아예 20대 초반으로 돌아가서, part time으로 돈을 벌던 시절을 떠올려 보려 한다.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 고교 때까지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에 올라가서야 부모로부터, 앞으로 네 용돈은 네가 벌어 쓰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 역시 어려울 게 없었던 게, 90년대에 비교적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과외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과외를 시작했을 때나 갑자기 과외를 잘리거나 했을 때는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부모 소개나 과사무실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다른 블로그에 썼다. (https://blog.naver.com/uchatn/221650461885)

과외 말고 다른 방식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았던 최초의 경험은, 어느 여름방학 때 대학교 구직 센터에서 소개 받은 대기업 알바였다. 그때 한창 시작된 영화 붐에 편승해, 어느 영화 단체의 단편 영화 제작 워크숍에 등록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상당히 큰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과외는 저녁과 주말에만 할 수 있으니 평일 낮 시간이 비었다.

을지로에 있는 대기업 사옥으로 갔다. 가전 제품 회사의 자료실 담당자가 남색 치마 유니폼을 입고 나와 또래 여자애 하나를 알바생으로 맞이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회사의 제품에 대한 기사가 실린 신문 스크랩이었다. 수개월치의 수십종 신문이 정리가 안 된 채 쌓여 있었다. 일본 신문도 몇 종 있었는데, 우리 담당자가 일본어 전공자라서, 그녀가 해당 기사를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으면 우리가 오려 내어 스크랩 북에 붙였고, 한국어로 된 신문들은 우리가 직접 기사를 찾아냈다.

봉급은 2주의 알바 기간이 끝나면 주기로 했지만, 매일매일 교통비와 점심값은 따로 넉넉히 챙겨줬다. 꽤 배려심 있는 고용자였던 것이다. 일이야 두 손이 있고 한글만 알면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사무실 한 켠에 따로 마련된, 먼지 가득한 좁은 자료실에 아침 일곱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건 좀 괴로웠다. 그 회사가 생산성을 높이고 퇴근 후 자기개발을 독려한다며 7-4 근무 시간제를 채택하고 있던 시기였다.

난생 처음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일곱시에 허겁지겁 도착해보면, 기둥과 책상이 죽 늘어선 거대한 사무실에 모든 사원이 양복, 혹은 여사원용 남색 유니폼을 입고 꼼짝 않고 앉아서 천장 쪽에 매달린 모니터로 아침 조회를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고, 거기 발맞춰 혁신 경영을 선도하는 회사였다. 교장님 훈화 말씀을 직접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게 ‘혁신’이라면 말이다.

처음 며칠은 동료 알바생과 수다도 떨며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녀 역시 좋은 대학을 다니는 긴머리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점심시간에 가장 싼, 간이 김밥집만 계속 가겠다고 했다. 2-3일이 지나도 같은 가게만 고수하자, 나는 슬슬 질려하며, 그럼 따로 먹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왠지 분위기가 냉랭해져, 근무 시간에도 그녀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이가 돼버렸다. 나는 점심마다 근처 명동의 신기한 음식점들을 기웃거리며, 넉넉한 식대를 펑펑 써댔고 때로는 내 돈까지 보탰다. 그래봤자 새로 생겨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가끔 우리 고용자가 자료실에 들어와서 일본 신문 기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말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그녀가 소개팅 나갔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자기가 가죽 잠바를 입고 나갔더니 상대 남자가 황당해 했다며 입을 비죽댔다. 근무 시간에 유니폼까지 입는 보수적인 회사의 여직원이 가죽잠바를 입고 퇴근한다니.. 하며 나도 좀 놀랐는데, 그녀는 “그게 어때서?”라며 자신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의 (아직) 젊은이임을 알려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런 반면, 그녀는 자신의 회사를 보수적인(?) 입장에서 옹호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던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 게 기억 난다. “뭐가 어때서? 잘못된 게 아니야!”라는 논조로 말이다. 경제적 논리였는지 그냥 애사심의 발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는 다시 그런 꿀알바 자리를 구한 적이 없다. 이후 내 인생의 알바는 그저 열정 페이 아니면 헐값의 외주 작업으로 채워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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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전쯤 찍은 듯한 어느 사무실 풍경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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