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백기와 염파 (장평대전: 전국시대의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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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 백기와 염파 (장평대전: 전국시대의 마감)

백기

공손기(公孫起). 전국 시대 말기 진(秦)나라 미현 사람. 용병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진소왕(秦昭王)에게 등용되어 13년 좌서장으로 군대를 이끌고 한나라를 공격했다. 다음 해 좌경이 되어한나라와 위나라의 연합군을 이궐에서 격파하고 24만 여명을 죽인 다음 국위로 승진했다. 15년 대량조에 올랐다. 위나라, 조(趙)나라 등 싸우는 대로 대승을 거두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 조나라,초(楚)나라 등의 70여 개 성을 탈취했다.

29년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무안군에 봉해졌다. 장평(長平) 전투에서 조나라군대에 대승을 거둔 다음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을 하룻밤 사이에 구덩이에 묻어 죽여 천하를 경악시켰다.

상국(相國) 범수도 그를 꺼리게 되었다. 50년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했다가 실패했는데, 원래 이 전투에 찬성하지 않아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오(士伍)로 강등되고, 재상 범수와틈이 벌어져 자결하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기 [白起]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염파

조(趙)나라의 백전 노장이자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용장 겸 의인. 신묘한 책략과 지혜, 달변으로정승 지위에 오른 인상여(藺相如)를 처음에는 미워하다가 인상여의 깊은 도량을 알고는 감복하여문경지교(刎頸之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배반하지 않을 깊은 우정.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우정)를맺게 되었음.

B.C.260년에 진(秦)나라 대군이 조(趙)나라를 총공격했을 때 용의주도하고 신중한 방어책을 세워대처하면서 원정을 나온 진나라 군사가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지구전을 구사했으나 진의 승상 범수의 이간책과 이를 그대로 믿은 조나라 효성왕 및 조정 신하들에 의해 파직되었음.

그 후임으로 조괄(趙括)이 부임하여 성급하고 무모한 공격을 펼쳤고, 이로 인해 조나라는 장평(長平) 대전에서 대패했을 뿐 아니라 45만이나 되는 군사들이 하룻밤 만에 몰살당하는 대참극을 당하게 됨.

[네이버 지식백과] 염파 [廉頗] (열국지사전, 2001. 6. 15., 솔출판사)

효성왕 7년, 진과 조나라의 군대가 장평(長平)을 두고 대치했다. 이때 조사는 이미 죽었고, 인상여는 병이 중했다. 조나라는 염파를 장수로 삼아 진나라를 치게 했다. 진나라가 몇 차례 조나라의 군대를 격파했지만 조나라 군은 보루를 단단히 쌓고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가 계속 도전했지만 염파는 응하지 않았다. 조왕이 진나라의 첩자 말을 듣게 되었다. 진나라의 첩자는 “진나라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에 조왕은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게 하려고 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 명성만으로 조괄을 쓰려고 하시는데 이는 아교로 거문고 발을 붙이고 거문고를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그 아버지가 전한 책만 읽었을 뿐 임기응변을 모릅니다.” 조왕은듣지 않고 기어이 그를 장수로 삼았다.

조괄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군대의 일을 말하자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조사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전쟁은 사람이 죽는 곳이오. 그러나 괄은 너무쉽게 말을 하오. 조가 괄을 장수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기어이 그를 장수로 삼겠다면조나라의 군대를 무너지게 할 자는 틀림없이 조괄일 것이오.”라고 했다. 조괄이 장수가 되어 출정하려 하자 그 어머니는 왕에게 글을 올려 “조괄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왕이 “어째서 그렇소?”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당초 첩이 그 아비를 모실 때 그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이고 마시게 하며 대접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었고, 친구는 수백 명이었습니다. 대왕과 종실에서 내리는 상은 모두 군리와 사대부에게 나눠주었고, 명령을 받은 날에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괄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자 동쪽을 향해 조회를 받는데 군리들이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왕께서 내리신 돈이며 옷감은 집에다 쌓아 놓고, 날마다 살 만한 싸고 좋은 땅과집이 없는지 보고는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그 아비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비와 아들의 마음이 이렇게 다르니 왕께서는 제발 보내지 마십시오!”

왕은 “모친은 그만두시오. 내가 이미 결정했소이다.”라고 했다. 조괄의 어머니는 이에 “왕께서기어이 그 애를 보내시겠다면, 그 애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더라도 첩을 연루시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왕이 허락했다.

조괄이 염파를 대신하자 규정을 모두 바꾸고 군리들까지 교체했다. 진나라의 장수 백기가 이를 듣고는 기병(奇兵)을 풀어 패하여 달아나는 척하게 했다. 그러면서 조나라 군대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여 조나라 군대를 둘로 나눔으로써 군사들의 마음을 조괄로부터 떠나게 했다. 40일 넘어 지나자 조나라의 군대는 굶주리기 시작했다. 조괄은 정예 부대를 내세워 직접 전투에 나섰으나 진나라의 군사가 조괄을 쏘아 죽였다. 조괄의 군대는 패하여 수십 만이 드디어 진나라에 항복했고, 진나라는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사와 조괄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전국 칠웅시대 말기 진나라와 조나라가 경쟁을 했습니다. 진나라에는 백기라는 명장이 있었고 진나라에는 염파와 조사가 있었습니다.

진나라에는 범수라는 명재상이 그리고 조나라에는 인상여라는 명재상이 있었지만 진나라의 왕들이 더 뛰어났나 봅니다.

백기는 명장인 염파를 피하고 조괄과 싸워 승리를 하지만 조나라 군사 45만명을 죽입니다. 백기는 민심을 잃습니다.

백기는 승리는 하였지만 민심을 잃고 재상 범수에게도 버림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백기는 자결인가 사약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왕이 없어진 조나라의 염파도 음모를 당해 다른 나라도 망명을 하게 됩니다.

장평대전에서 45만 군사를 잃은 조나라는 다시는 힘을 찾지 못하고 진나라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장군이 있어도 왕이 별볼일 없으면 끝이 안좋습니다. 장평대전으로 진나라가 통일을 바로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발판을 만들게 됩니다.

백기의 유언과 역사의 반복

장평대전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기는 장평전투 직후 바로 한단을 공격하자는 백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것과 자신의 측근이 바로 항복해버린것 때문에 범수에게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었고 결국 범수에게모함을 받아, 그 때문에 소양왕의 눈밖에 나서 승산이 없는 전쟁에 출전하라는 억지 명령을 거부하다가 끝내 두우에서 자결했다. 이때 백기는 유언으로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참회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잠시 생각한 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에서 항복한 조나라 젊은이 40만 명을 갱살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50여 년 뒤 진나라 병사 20만은 일단 항복했지만 결국 신안(新安)에서 초나라의 무장인 항우에 의해 불시에 습격을 받아 태반이 죽고 살아 남은 자들도 모조리 갱살을 당한다.

이를 두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당시 학살된 진나라 항졸들은 대다수가 강제노역이나 수감생활을 하다 병졸로 징발된 이들이라 타지인들도 많았기에 민심을잃게되었고, 결국 항우의 몰락에 한 축을 맡게 된다.

즉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이후의 병졸이기에 분명 진나라 병사는 맞지만, 그 출신지를 따지면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셈이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셈이다. 이후 항우는 두고두고 이 때의 일로 까이게 되고, 민심도 떠나간다.

또 다른 여담으로, 이 때 진나라는 조나라에 인질로 태자 안국군의 아들인 영이인을 보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영이인은 태자의 아들이더라도 이복형제들에 비해 끝발이 한참 딸렸고, 거기다 인질을 보낸것도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게 아니라,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기만작전이었다. 즉 아예 희생양으로 쓰기 위해서 죽건 말건 상관없는 떨거지 왕족 하나 골라 보낸셈이다.

그래서 조나라측도 '저런 떨거지 왕족 죽여서 뭐하나' 하며 위해를 가하지 않아 무사히 진나라로 돌아갈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버림 받았던 떨거지 왕족 영이인은 여불위의 도움을 받아 결국 진나라 왕위에 올랐고, 그의 아들도 진나라의 왕이 되니 바로 진시황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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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참 잔인한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죽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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