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역사: 디케의 저울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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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 디케의 저울

정의의 여인상

정의의 여신상이라고 하면 천으로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서 있는 여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형상은 하나가 아니다. 눈가리개 없이 두 눈을 뜨고 있거나 서지 않고 앉아 있는 여신도 있고, 칼만 들고 있거나 반대로 저울만 들고 있는 여신도 있다.

정의의 여신 원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다. 제우스는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사이에 세 여신을 낳았다. 그들이 각각 디케(정의의 여신), 에우노미아(질서의 여신), 에이레네(평화의 여신)이다. 디케가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바뀌었다. 유스티티아가 영어 ‘Justice(정의)’의 어원이된다.

초기 디케 상은 저울 없이 긴 칼만 들고 있었다. 디케는 정의를 훼손하는 무리에게 재앙을 내렸는데 긴 칼이 바로 그 응징의 상징이다. 그러다 유스티티아의 상에 이르면 칼과 함께 저울도 들게 된다. 그 이후에는 아예 칼 없이 저울만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이 아닌 법전을 들고 있다.

칼에서 저울로

정의의 여신상 소품을 보면 정의의 핵심이 칼에서 저울로 이동해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통용되는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도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로서 칼보다 저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저울은 형평을 따지는 일을 상징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평이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법질서 사이에서,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정의의 핵심이 응징에서 형평으로 이동한 지 오래됐음에도 여전히 정의를 저울이 아니라 칼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정의의 핵심을 칼이라고 보게 되면 ‘정의’의 개념을 ‘불의’의 반대말로만 이해하고, ‘불의’의 편에 선 사람을 칼로 베는 것만 중시하게 된다.

이 경우 저울질은 불필요해지고 결국 우리 편은 ‘정의’,남의 편은 ‘불의’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울 없는 칼질은 폭력일 뿐이다. 저울을 사용하더라도 기울어진 저울로 자의적·형식적으로 저울질하는 것은 정의를 사칭한 불의일 뿐이다. 저울에 올려놓기도 전에 칼부터 끄집어내 벨작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눈을 가리다.

펌) 정재민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판사, 舊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눈을 가리는 이유

눈을 가리면 잘 볼 수 없을 텐데 안보고 듣기만 하겠다는 것인지. 보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인지!

그만큼 법을 집행하는 것이나 그 다음에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과거에는 처벌 우선이었겠지만 지금은 형평이 먼저인가 봅니다.

그런데 비싼 변호사를 이용하게 되면 형량이 적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고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전직 판사가 국회의원이 되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이렇게 엉터리로 만들어지는 법을 신처럼 믿었던 자신의 과거가 창피하다고 말하는 것을 언론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권력의 입맛에 따라서 움직이고 똑 같은 상황이라도 시대에 따라서 다른 방향으로 흐르니 법도 인간사에 따라서 시대정신에 따라서 변하게 됩니다.

눈을 가리고 정의를 판단하는 디케의 저울.

칼에서 법전으로 다음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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