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제환공과 관중 (인연)
사마천의 사기: 제환공과 관중 (인연)
환공(桓公, ? ~ 기원전 643년, 재위:기원전 685년)은 춘추시대의 제나라의 제16대 군주다. 성은 강(姜), 휘는 소백(小白), 시호는 환공(桓公). 춘추 시대의 패자이다. 포숙아의 활약에 의해 공자 규와의 공위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중국 동주 왕실을 대신해 회맹을 거행했다.
즉위 전 상황
아버지는 이공, 형은 양공이다. 양공은 비정상인 성격으로, 친누이동생 문강과 내연의 관계에 있어, 문강이 노나라의 환공에게 시집갔지만, 장공을 낳은 후도 관계가 계속 되고 있었다. 화난 노의 환공이 문강을 꾸짖으면, 문강은 양공에 밀고해, 양공은 일족 공자 팽생이라고 하는 남자에게 명령하고 환공을 죽이게 했다. 노나라에 소문이 돌자, 팽생을 죽여 변명을 하였다. 그 이외에서도, 양공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차례차례로 죽였기 때문에 제나라는 혼란했다.
소백은 거(莒)에, 형 공자 규는 노나라에 망명했다. 양공은 그 후, 사촌형제인 공손 무지에게 암살되었다. 양공이 죽은 후에, 공손 무지가 제공에 즉위 했다고 칭하고 국정을 관리하지만, 공손 무지도 또 곧바로 암살되었다. 공손 무지 사후, 소백과 같이 노에 망명한, 노의 후원자를 얻고 있던 형 공자 규와의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생겼다.
이 때, 공자 규의 심복인 관중이 소백을 매복해 암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관중은 활을 쏘아 맞혔다. 화살은 소백 배에 맞아, 소백은 쓰어졌다. 관중은 기뻐하고, 공자 규에게 소백을 죽였다고 보고했다. 경쟁 상대가 사라진 공자 규는 노의 군사를 뒤로 천천히 제나라에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나, 소백이 벌써 제나라에 들어와 제나라 공이 되어 있었다. 공자 규는 기다리고 있던 소백에 공격을 받고 노나라로 도망쳤다. 실은 관중의 화살은 배에 명중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허리띠의 쇠고리에 꽃쳤다.
관중의 활약
제나라 공의 자리에 오른 소백 환공은 관중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실에 화를 내어 관중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공의 심복이며,관포지교라는 말의 뿌리가 될 만큼 관중의 좋은 친구이기도 한 포숙아의 설득으로 환공은 관중을 살려주었으며 재상으로 임명했다.
환공의 생각은 현명했다. 재상이 된 관중은 개혁을 추진해, 국력, 군사력, 문화 향상에 성공했다. 벌써 주왕실은 쇠퇴하고 있어, 제후 사이의 대립을 억제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중의 개혁을 받아 들인 제의 환공은 주변 국가에 그 명성이 전해져, 주변 제후는 주나라 대신해 제후 사이의 문제를 환공에게 묻게 되었다. 장강 유역의 현재의 호북성을 중심으로 한 지대를 지반으로 해 남방에서 세력을 늘려, 주왕실이나 제후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던 초나라를 환공은 제후를 인솔하고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651년 환공은 회맹을 거행해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환공은 자만심이 생겨 봉선의 의식을 실시하려고 했다. 봉선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의식이라서, 봉선을 하는 것은 주나라를 무시하고 자신이 천자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관중은 환공의 무리한 생각을 필사적으로 충고해 멈추게 했다.
관중의 사후
기원전 645년, 재상인 관중이 죽으면서, 국정을 돌아보지 않게 되어 방탕하게 되었다. 관중이 죽을 때에 등용을 하지마라고 한 간신들도 등용해, 국정은 흐트러졌다. 환공이 병이 들자, 공자들의 후계자 싸움에서 숨을 거두어, 67일간 그 사체는 방치된 채로 있어, 그의 관이 구더기가 솟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나라는 이후에도 가끔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 패권은 진(晋)나라, 초나라로 옮겨졌다.
관중이 죽을 때 제환공이 역아,수초,개방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관중에 대답은
- 역아 : 제환공에게 자기 자식을 삶아 먹임
- 수초 : 자기 몸보다 제환공을 우선시 함
- 개방 : 위나라 태자를 버리고 관중을 따라 옴.
관중이 이들 세사람을 모두 가까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이야기 하는 이유는 제가 뚝이 되어 그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고 나면 멀리 하셔야 됩니다.”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활로 제환공을 쏘아 줄일 뻔 했던 관이오를 포숙아가 거듭 천거하여 제환공이 그를 재상에 임명하였다. 소년시절부터 평생토록 변함이 없었던 포숙아와의 극진한 우정은「관포지교」로 유명하다.
제환공은 조정 신하들에게 선포하여 관이오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하고 字인 관중이라 부르게 하였을 뿐 아니라, 관중을 중부(仲父: 작은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히 존경하고 의지하였다.
당시 제나라에는 제환공의 총애를 받는 미동 초와 역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아는 환공에게 자기 어린 자식을 삶아 음식으로 바쳐 신망을 얻고 총애를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안팎으로 손발이 맞아 시간만 나면 관중을 비난했다.
환공에게 아뢴다.
「임금이 영을 내리면 신하는 영을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공께서는 모든 일을 중부에게만 맏기시니 이는 우리나라에 임금이 없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제환공이 웃고 대답한다.
「중부는 과인의 팔다리나 다름없다. 팔다리가 있어야 완전한 몸이 되듯이 중부가 있어야 과인도 임금이 될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희들 소인배가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
이렇듯 환공은 관중을 신임하고 정사를 맡겨 제환공이 춘추 첫번 째 패자가 되는 위업을 이룩했다.
후세인이 이를 보고 시를 지어 찬탄했다.
疑人莫用用勿疑
仲父當年獨制齊
都似桓公能信任
貂巫百口亦何爲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지니
당시 중부가 혼자 제나라를 다스렸도다
그러나 제환공이 그를 신임했기에
소인들의 모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연
제환공과 관중의 처음 만남은 경쟁자의 관계였지만 제환공을 춘추 패자로 만들어 준 인연이였지만 간신들과의 처음 만남은 즐거음, 고마움이였지만 제환공을 죽음으로 안내 한 악연이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를 알수는 없지만 너무 잘해준다거나 너무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한다거나 하면 한번쯤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환공에서 충성을 다하던 간신들은 제환공의 권력이 없어지자 제환공을 궁에 가두고 굶어죽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만남의 소중함은 만남자체는 아닙니다. 악연일지 인연일지…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같은 글이 두번 올라 갔습니다. 아침에 스팀잇이 불안해서 죄송.
delete 도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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