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안경 낀 에이스의 전설-#4 마지막 이야기
어느덧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네요.
안경 낀 에이스에 대한 마지막 찬사는 야구장 바깥에서의 면모에 대해서입니다.
최동원의 경이로움은 마운드 위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슈퍼스타였던 최동원과 달리 당시의 야구계는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특히 신진급 선수들에 대한 처우가 몹시 좋지 못했죠. 높은 연봉을 받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던 스타선수들과는 달리, 말단 선수들은 정말로 힘들게 선수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해 최동원은 선수협회를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선수들을 위한 노동조합 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이가 자신보다 힘든 이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단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나서서 해낸 일입니다.
사실 한국의 프로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니 모든 단체가 지속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일이었죠. 바로 약한 구성원을 끌어안는 일 말입니다. 이 일로 구단의 미움을 받은 최동원은 삼성의 김시진과 트레이드 되고, 인생을 바친 구단인 롯데가 아닌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정말 개탄을 금치 못할 구단의 처사였죠.
은퇴 이후에도 최동원의 삶은 평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팬들에게 꾸준히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족오락관 등 예능방송에 나오기도 했고. 세상을 바꿔보고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최동원은 김영삼이 제의한 여당 후보 자리를 고사하고 민주당 후보로 나왔죠. (부산에서 여당으로 출마하면 사실상 당선 확정이던 시절).
그는 자신을 버린 바로 그 팀, 롯데에서 감독을 하는 것이 그의 말년까지 바램이었습니다. 하지만 롯데라는 구단은 결국 그의 꿈을 이뤄주지 않았습니다. 최동원은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중 2011년 대장암으로 별세합니다.
꽃이 지고야 봄이었던 걸 안다고 했던가요. 구단은 그때서야 부랴부랴 반성하며 최동원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사직구장에 그의 업적을 기립니다. 2014년부터는 최동원 상도 제정되어 국내투수들에게 수상을 하고 있죠.
사직구장의 옆에는 시민들이 세운 무쇠팔 최동원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는 나오지 않을 불세출의, 마운드 위와 마운드 아래의 영웅.
혹자는 92년의 염종석이 그 계보를 이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박세웅이 그와 꼭 닮은 후계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최동원은 그 누구로도 대체되지 않을 선수죠.
그를 이어야 할 것은 누구 한 사람,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그의 유산인, 리그에서 뛰는 모두일 것입니다.
아 좋은 포스팅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름 열정적으로 연재했네요
여기서 최동원을 다시 보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정말 한국야구 역사의 한획을 그으신 분인데...너무 이른 나이에 가셔서 참 안타까웠었죠....
저는 야구는 진짜 문외한이여서 모르지만.
최동원님은 여기저기서 접한적있어요.
이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