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라이너스 어워드에 대한 서문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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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나의 모든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아깝고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여느 해와 같이 여름 방학이 하나 슬그머니 끝나고 난 후였다.
그 무렵 영화광이었던 나는 주로 영화를 보는데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곤 했었는데, 그래서 나는 노트를 펼쳐 특정 기간 동안 보았던 영화들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지나간 시간들을 무언가로 채우고 정의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나를 즐겁게 하고 감동케 한 그 훌륭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든 남길 수 있었다. 한 번의 방학이 끝날 때마다 그 시기 동안 보았던 수십 편의 영화 들 중 가장 좋았던 작품뿐만 아니라 시작으로 가장 좋았던 배우와 감독, 음악, 씬 등을 선정했다. 결국 그것은 혼자만의 영화제 같은 성격을 띄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데이터는 쌓여갔고 나의 영화제는 내 서랍의 노트에서 SNS로 무대를 옮겼다. (시기상 당연히 싸이월드였다) 노트보다 정리하기 편하고 나의 세상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 이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정리로 시작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의 호응 따위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주변인들은 흥미롭게 그 과정을 지켜봐 주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의 정리는 구색을 갖춰갔고 나름의 형식과 규칙들이 생겨갔다. 실명을 붙인 ‘XXX 어워드’라는 명칭은 전역 후에 명명되었다. 분야도 변했다. 영화로 시작했지만 곧 그것은 나의 인생 동안 고마웠던 모든 것에 대한 정리로 번졌고 이제는 일곱 개의 항목을 매년 시상한다. [영화], [책], [TV], [웹툰], [음악], [가게], [인물]. 주기는 세상과 단절되어있던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매년 연말을 기점으로 한다. 싸이월드의 몰락과 함께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옮겨왔다. 주변인들만 아는 이 작은 축제에 대해 누군가는 결과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연말의 기분을 가지기도 하며, 누군가는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어워드를 만들기도 한다.

스티밋에서도 ‘라이너스 어워드’라는 이름으로 나의 작은, 그리고 몹시 개인적인 정리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아무런 보상도 없고 아무런 권위도 없는 어워드지만 내 인생에 뛰어들어 날 감동시킨 그것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기억하고 싶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각자의 시상식을 가지는 것을 희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좋은 것들이 우리 인생에서 흘러가 버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연재할 요량으로 써뒀던 글입니다.
이전까진 매년 연말 페이스북에 쓰곤 했는데 스티밋을 알게되었으니 올해부터는 스티밋에 남겨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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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너무 좋네요! 저도 저만의 시상식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연재 기대해보겠습니다^^

라이너스님
저도 그런짓 하나 하고있답니다.
내 맘대로 내 자신의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SI어워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답니다.
제가 뽑아준 그 한분만 기뻐해 주신다면 말이죠 ^^

다 내 맘입니다.
괘념치 마시고 이곳에서도 주~욱 밀고 나아가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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