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코인과 초기 가치 형성 문제 (Initial Valuation Problem)
비트 코인은 분산기술과 인센티브 시스템을 절묘하게 조합해 '신뢰할 수 있는 제 3자 (trusted third party)'의 비효율성을 해결한 희대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건 개발 초기 실물 경제와의 접점이다. 일단 비트 코인이 현금 가치를 갖게 되고 나면 ( 지금은 이미 그렇게 되었지만 ) 큰 영향력을 가질 거라는 걸 기술이 가진 잠재력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최초의 가치'가 이전되는 순간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까지 완벽히 수긍할 만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그럴싸한 설명은 '투기' 뿐이다. 해시 파워를 제공하고 받는 인센티브인 '코인'의 가치가 후에 상승할 것이라는 근거없고 막연한 기대감을 기반으로 현금을 투자하게 되고, 이것이 코인과 실물 경제의 유일한 접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것이 매우 취약하다고 생각하며 코인의 가격이 매일 수%를 출렁이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유사 코인들이 제각각의 가치를 내걸고 하루가 멀다하고 양산되고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소비 가능한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들은 STEEM, VTR, BAT, GAME 등과 같이 온라인 디지털 자산에 미약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들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미 가치가 형성되어 버렸다'라는 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트 코인은 실물 가치를 가지기 시작했고, 현물과 거래가 가능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일어나 버렸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의 문턱을 왠지는 모르지만 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반응이 일어나는 일만 남았다.
얼마 전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언급한 인지 혁명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것은 존재하게 된다.'
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실물 기반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가치 있다'라고 믿게 만드는 일만이 필요한 것일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