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에 대하여) 서울행 버스
“친구가 100원 짜리 비트코인을 사서 2천원에 팔았다고 하더라”
K의 아버지는 K를 기다리는 나에게 혼잣말 하듯 코인 얘기를 건넸다. 맞은편에서 K가 편의점에서 늦게 나왔다면 아마 이야기는 길어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터미널 기둥에 걸린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스 화면에 나오는 B자가 새겨진 금화 이미지를 비트코인으로 아셨는지 저거 하나에 2천만원이냐며 중얼거리셨다.
“가자 차들어 왔다”
“아버지 저희 갈게요 들어 가세요”
아버지는 들어줄 짐을 뺒긴 심정으로 승차장 입구까지 쫒아오다 버스에 오르는 우리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돌아섰다. K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고 꿈 많은 대학 신입생 때 그의 아버지는 IMF로 모든 걸 잃었다. 그때 K는 너무도 어렸다. 아버지 역시 어렸다. 둘 다 처음 살아내야만 하는 세상 앞에 어른스럽게 의엿한 태도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거친 숨들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태성아 너 돈 좀 있냐. 아니다 됐다 니가 뭔 돈이 있겠냐.”
“갑자기 왜. 나보다 돈도 잘버는 놈이 왜.”
한동안 버스에서 말이 없던 K가 겨우 뱉은 말이 돈 빌려달라는 말이었다.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지금껏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투자같은 걸로 돈을 굴려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증권회사 다니는 동기 중 한명이 K에게 차이나 펀드와 브라질 채권을 권유했을 때 그는 밤새 이렇게 외쳐댔다.
“우리 위대하신 아바이께서는 그러니까 우리 아부지는 모든걸 말아 드셨다. 싹싹 긁어 아주 싸그리. 너 임마 나 왜 취준생때 씨바 면접 안보고 애들 과외하러 다니고 알바했는지 아냐. 신용불량자가 무슨 대기업 면접을 보냐. 우리 아바이가 내 신용도 이 막걸리 말아먹듯 말아드셨단 말이지.”
그의 경제 관념은 금융권 모든 친구들을 적폐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영화과를 나와 남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으로 겨우 입에 풀칠한다는 이유로 그의 따뜻한 술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어쨌든 그의 술이 좋았다.
K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 후 3년만에 생긴 딸 아이가 운동 선수가 되려는지 집에서 그렇게 뛰어 다닌다며 핸드폰 동영상을 보여줬다. 윗집 아랫집이 빈집이 아니라면 난리가 안 날 수없는 현장 촬영 영상이었다. 그래서 K는 금융권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대출 이자 갚는데 와이프와 온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K는 무섭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 많이 늙으셨지”
“그래도 건강해 보이시잖아”
“아까 우리 아버지 비트코인 뉴스에 휘둥그레 하시지 않든”
“야 뉴스에서 그렇게 떠드니까 그러시지. 너 좀 과민하게 굴지 말아라”
“나 우리 아버지처럼 살까봐 항상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근데 이게 잘 못 산거 아닌가 싶어.”
“잘못 살긴 임마 내가 증인이야. 그거 내가 보증선다 내가”
“서울에서 조그만 집 하나 사니까 대출이자 갚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애들 말 들어보니까 코스닥이랑 바이오주 날라 간다고 추천해 주더라”
“바이오주?”
“응 ... 아니다. 니가 뭘 알겠냐. 그냥 아버지가 내 맘이었을까”
“...... “
“아버지도 그때 뭔가를 하셔야만 하는 상황이었겠지. 나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알겠냐”
“나도 알아 임마”
“뭘 아는데”
“바. 이. 오.”
“ㅎㅎ”